독서 토론하기 좋은 책, <책, 이게 뭐라고>

읽고 쓰는 사람 장강명이 던지는, 책을 둘러싼 화두

by 송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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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의 신작 에세이, <책, 이게 뭐라고>를 읽었다. 동명의 팟캐스트를 즐겨 듣던 나 같은 사람에겐 선물 같은 책이다. 진행자였던 장강명 작가의 입을 통해 방송의 뒷얘기를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프롤로그를 읽고서, "아 역시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사정없이 내 집중을 흡입해버리는군."하고 생각했다.


내용이 좋고 훌륭한 정보를 담고 있어도 문장이 별로라면, 읽을 맛이 나지 않는다. 소고기 스테이크를 휴지에 싸서 뜯어먹는 기분이다. 그런 스테이크는 고기의 질과 영양분이 제아무리 훌륭해도 먹는 즐거움을 느끼기는 어렵다. 그래서 정제된 문장이 중요하다. 내 경우, 읽는 맛을 느끼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내용이 담긴 책이라도 끝까지 읽기 힘들다.


장강명 작가의 문장은 에세이에서도, 소설에서도 깔끔하다. 반짝반짝 빛나는 흰 접시 같다. 뭘 올려놔도 식욕을 부르는. 오랜 기자 생활을 통해 다듬어진 감각일 것이다. 문장만 깔끔한 게 아니다. 사실을 다루는 방식, 자신의 견해를 전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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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듣는데 서툰 '읽고-쓰기'형 인간 장강명은, 팟캐스트의 MC를 맡으면서 말하고-듣기를 천천히 배운 경험을 말한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끄집어낸 '말하고 듣는 사람'과 '읽고 쓰는 사람'의 특성과 둘의 차이는, 이 책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화두다.


현대 사회는 '말하고-듣는' 타입의 사람을 붙잡으려는 시도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SNS들은 이미지, 이모티콘, 짧은 글, 카드 뉴스, 요약된 말들로 가득 차고 있다. 이들은 글자로 표시되지만, 실은 말하고 듣는 행위에 가깝다. '말하고 듣는' 타입의 사람들은 느낌을 중시하지만, '읽고 쓰는' 타입의 사람들은 의미를 중시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왜'라는 물음에, '그냥' '재밌으니까'라고 대답하는 이들을 선호한다. '왜'라는 물음에 긴 말을 늘어놓는 사람들(읽고 쓰는 인간)을 진지충으로 놀린다.


책의 전반부를 관통하는, '말하고 듣는 인간'과 '읽고 쓰는 인간'의 차이에 관한 성찰은, sns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오늘날엔 '말하고 듣는' 곳에 사람들이 몰린다. 인스타 같은 곳이다.


몇 달 전, 책을 내고서, 홍보에 도움이 되려면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계정을 파고 감각적인 '느낌'을 전할 수 있는 말과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사람을 얻고 싶었다. 팔로워를 늘리고 싶었다. 셀럽이나 인플루 엔서의 책만 홍보해주는 더러운 세상에서 홀로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서, 타노스 같은 힘으로 내 책을 알리고 싶었다. 원대한 포부가 무색하게, 그 시도는 2주 만에 막을 내렸다. 글귀와 감성 돋는 생각을 카드 뉴스 형태로 만들어 올리는 일이 문득,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내가 쓰고 싶은 건 이런 게 아닌데, 하는 깊은 자각이 밀려왔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이걸, 나 하나 보탠다고 누구한테 도움이 될까.


<책, 이게 뭐라고>를 보면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난 팬덤이 주도하기 시작한 출판계의 현실을 깨닫고 현대 자본주의의 입맛에 맞는 매체로 편입하고자 했으나, 그마저도 이내 의지가 꺾여버린 것이다. 셀럽이 되거나 팬덤을 얻는 일은 요원하지만, 내 앞에 떨어진 글감을 부지런히 주워 담으면서 나가면, 쓰는 걸 멈추진 않겠지. 팬덤을 모으고 관리하는 에너지로, 그저 쓰자고 다짐했다. 전략 따위는 개나 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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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에세이면서 인문 서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경계에 있는 그런 글로 가득하다. 알맹이가 있다는 점에서, 일상만 유려하게 말하는 에세이와 구별된다.


어떤 독서 모임에서 다음 책 선정을 고민한다면, 너무 어려운 책을 선정하다 보니 점점 흥미를 잃고 있다면, 반대로 너무 말랑말랑한 책들만 선정하다 보니 두뇌가 말랑카우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면, <책, 이게 뭐라고>는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이 책엔 독서 모임에 참여할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화두로 가득 차 있다.


-현재 출판업의 흐름과 안타까운 지점은 무엇인지

-읽고 쓰는 타입의 사람과 듣고 말하는 타입의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지

-쓰는 인간이 사라져 가는 이유와 현대 자본주의의 영향은 무엇인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지

-독서 토론이 좋은 이유는 무엇인지

-읽고 쓰는 행위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등등


작가 스스로가, '당대를 굉장히 못마땅해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라고 밝히는 만큼 책에서 온갖 불만들을 쏟아낸다. 매우 점잖고 논리적이며 우아한 방식으로. 심지어 그 불만을 성찰의 재료로 삼는다. 그는 자신이 제기한 거의 모든 쟁점에 대해 답을 유보하지 않고, 견해를 밝힌다.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한 태도로. 그의 불만과 성찰과 견해들은, 생각의 마중물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건 사족이지만, 난 그가 외유내강형의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들유들해 보이는 겉모습에 속아 한 번 파 들어 가볼까, 했다가는 얼마 가지 않아서 단단한 암석에 부딪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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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이 책을 주로 새벽에 읽었다. 아이를 재우며 이른 밤에 곯아떨어졌다가, 2시 반쯤 좀비처럼 일어나서 한 5시까지 펴 들고 읽었던 것 같다. 한 3일은 그렇게 읽었다. 그중 하루는 가족여행을 가서 산장 콘셉트의 호텔에 묵을 때였는데, 스탠드나 별도의 조명이 없어서 화장실 옆 벽면에 비치된 비상 손전등을 북 램프 삼아 읽었다. (기념으로 사진을 첨부한다.)

책, 이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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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게뭐라고 #장강명 #아르떼 #읽고쓰는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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