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작가의 신작 에세이 <부지런한 사랑>은 글쓰기 교사로서의 일상을 담은 책이다. 글방을 통해 글쓰기를 배워왔던 작가는 스물세 살부터 글방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여러 곳에서 진행했던 글방의 풍경과 아이들이 쓴 글을 통해 얻은 단상들이 실려있다. 이 책에 실린 글 중 절반쯤은 이슬아 작가가 연재하고 있는 경향신문 <직설>이라는 칼럼에서 읽은 것들이다. 담담한 문체로 전하는 글방 아이들과의 에피소드들이 잔잔한 즐거움을 주었었다. 이슬아 작가가 아이들에게 내줬던 글감 중 재미난 것은 내가 가르치는 반 아이들에게도 내주곤 했다. 칼럼에서 받은 좋은 인상은 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슬아 작가는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에세이스트 중 한 명이다. 그의 글과 문장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책에 실린 글 중 작가가 유나라는 아이에게 쓴 편지엔, 내가 이슬아의 글을 보며 느꼈던 감상과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유나의 글은 아주 아름다운 한 문장이나 엄청나게 참신한 표현 같은 게 눈에 띈다기보다는, 문단 단위로 빛이 나. 평범해 보이는 문장들이 적절한 배열로 배치되었을 때 얼마나 특별한 한 문단이 되는지를 유나 글에서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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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약'은 에세이의 양념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무늬 없는 일상도, '무늬 없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이 삶을 구한다는 식으로 비약하면 그럴듯한 글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비약'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나는 듯이 높이 뛰어오름'이라는 의미도 있다. 비약은, 보잘것없어 보이던 일상의 어떤 사건이나 일을,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일로 바꾸어 놓는다. 과한 양념은 음식을 버려놓듯이, 지나친 비약, 근거 없이 도약하는 글은 삼가야 한다. 그런 글은 읽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이다.
작가의 역량은, 일상과 생의 의미 사이에, 얼마나 논리적이고 아름다운 발판을 놓느냐에 달린 게 아닐까 싶다. 상상력과 탄탄한 사유와 아름다운 문장으로 메워진 비약의 골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이슬아 글도 곳곳에 비약이 묻어난다.
"여러 편을 쓰는 사이 우리에게는 체력이 붙었다. 부지런히 쓸 체력과 부지런히 사랑할 체력. 이 부드러운 체력이 우리들 자신뿐 아니라 세계를 수호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중에서
이 구절에선, '쓰는 일'이 결국 '세계를 수호하는 일'이라는 도약이 일어난다. 그 사이에 '부지런히 쓸 체력'과 '부지런히 사랑할 체력'이라는 발판이 있다. 우린 그 발판을 힘차게 굴러 세계를 굽어보는 창공으로 뛰어오른다. 이런 구절을 읽으며, 우린 과연 그럴까? 하면서도 위로받는다. 좋은 비약은 위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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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해보겠다.
내 삶에 많은 선생님들이 있었지만, 만나지 못했던 선생님이 있다. 바로 글 선생이다. 누구에게 글을 배워본 적이 없다. 그저 쓰라고 숙제를 내준 분들은 있었지만 글을 쓰면 얻을 수 있는 세계에 대해 알려준 이는 없었다. 아마 글쓰기를 즐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교 시절, 본능에 이끌려서 시처럼 보이는 글을 끄적였고, 야간 자율학습 때 문제집 옆에 연습장을 엄폐하고 짧은 소설을 쓰기도 했다. 뭐가 어떻게 될지, 평생 글쓰기를 끌어안고 뒹굴면서 살게 될지 알지도 못한 채 썼던 것 같다.
스무 살이 넘어서, 지금은 사라진 <다음 칼럼>이라는 글쓰기 플랫폼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서 어떤 글은 '아름답다'라고 표현할 수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러다 지금은 잊힌 작가 신경숙의 <외딴방>을 읽으며 낱낱의 문장들이 이렇게 좋을 수 있구나,를 감각했고,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읽으면서 사람의 내면을, 차갑고 빛나는 유리처럼 드러내는 글도 있구나, 하는 걸 실감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감각을 주는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이슬아 작가에게 '어딘'이라는 글 선생이 있었듯, 내 어린 날에 글쓰기 선생이 있었다면 내 삶은 조금 달라졌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글 선생은 아이들의 글쓰기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하는 기술자가 아니다. 오히려 마음을 표현하는 통로 하나가 가까이에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안내자에 가깝다. 계속 쓸 수 있게 옆에서 용기를 북돋워주는 사람. 그런 의미에서, 어린 시절 이슬아 같은 글 선생을 만나서 꾸준히 쓰는 기회를 얻은 아이들은 분명 행운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내 어린 시절, 그런 글 선생이 있었다면 말이다. 상상을 주체할 수 없었던 한 아이는 그 상상을 공책에 지층처럼 쌓는 일을 일찍 배웠을 것이고, 그렇게 지층처럼 쌓인 이야기들은 거대한 대륙이 되어 더욱 단단하게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 역시 그냥 교사를 넘어서 아이들의 글 선생이 되고 싶다. 아이들 속에 있는 촛불에 글쓰기의 작은 불씨를 옮기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글쓰기의 불씨를 옮기는 사람들, 글 선생의 얘기에 난 늘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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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쓴 글을 살피고 그 글에서 심쿵한 지점을 발견할 때 내가 느끼곤 하던 설렘을, 이슬아는 꽤 오래 느껴왔고 이 책은 그 설렘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세세한 글쓰기 지도법을 기대하고 책을 본다면 약간 당황할 수도 있다. 이 책은 작법서나 글쓰기 지도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슬아의 글방에서 이루어지는 지도의 과정은, '글감 안내-글쓰기(간식을 먹으며)-합평'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단선적이다. 이 책이 말하는 바는, 일방향적인 가르침의 방법론이 아니라, 가르치고 배우는 대상이 서로 공명할 때 일어나는 성찰과 풍경이다.
"(글쓰기는) 시간과 마음을 들여 반복하면 거의 무조건 나아지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중에서
작가의 말처럼, 글쓰기는 수영이나 자전거 타기처럼, 연습과 반복으로 확실한 성과를 낼 수 있다. 선생이든, 부모든, 아이에게 '글 선생'이 되어주고 싶은 이들은 이 책을 읽고 잔잔하지만 단단한 소망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난 좋은 글 선생이 되고 싶어서, 이 책뿐만 아니라 글 선생의 마음이나 조언이 담긴 책들은 앞으로도 내 장바구니에 꾸준히 담을 것이다.
언제까지고, 내 마음에 글쓰기의 촛불이 꺼지지 않고 은은하게 유지되길 바란다. 그리고 불씨를 잘 옮기는 글 선생이 되길 바란다. 어떤 아이들의 마음에 옮겨진 작은 불씨는 내 예상보다 더 높게, 오래 타오를 것이다. 이슬아의 글 선생에게 이슬아가 그런 장면을 보여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