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이 책의 정체성을 '시나리오 작가의 작업기'로 규정하고 있다. 괜찮은 작가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젊은 날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마음을 잡아끈다. '청춘소설'같은 이 에세이를 보면서,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가 떠올랐다.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필독서가 되어버린 그 책의 앞부분은, 3분의 1 정도의 분량을 차지하는 ‘이력서’라는 챕터가 있다. 난 스티븐 킹의 글쓰기 이력을 기록한 첫 부분부터 마음을 쏙 빼앗겼었다. 김호연의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 역시 그와 비슷한 결의 재미와 흡인력으로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작가가 처음 영화사에 들어가 협업하며 시나리오를 쓰고, 시나리오 작가로 습작기를 거치고, 출판사 편집자로 근무하다가 다시 전업 작가로의 길을 가는 일련의 과정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저자가 소설가라 그런지 문득문득 소설을 읽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책의 미덕은 술술 읽힌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냐면, 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은 건 야영장의 복층 케빈이었는데, 아래층에서 TV 소리가 크게 들렸고 두 아이가 뛰어다니는 소음이 고스란히 울리는 다락방에서도 내용을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과장 조금 섞어서) 육아와 독서를 병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책이라는.
책엔,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에 대한 고찰이 다음과 같이 나온다.
"상업영화는 더 많은 관객을 더 쉽게 이해시켜야 했고 공감이라는 교집합을 만들어 내는 데 엄청난 공정과 기술을 쏟아부어야 한다. 관객은 큰 노력 없이도 쉽게 이해와 공감이 되는 상업영화가 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만드는 쪽은 그 반대인 것이다."
-김호연,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 중에서
관객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만드는 쪽에서 '기술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업영화에 대한 얘기는, 글쓰기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독자에게 쉽게 가닿고, 흡인력을 가진 글은 결국 만드는 쪽(작가)에서 더 많은 공정과 기술을 적용해야 가능한 일이다. '고통스럽게 쓰되, 쉽게 읽혀야 한다'는 어느 작가의 글쓰기 경구와 같은 맥락인 것이다. 김호연 작가의 소설을 아직 읽진 못했지만, 최소한 이 책에선 상업영화와 같은 미덕이 드러난다.
2
야구 선수가 되고 싶거나, 야구를 미친 듯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야구 선수의 자서전’은 영감이 가득한 책일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야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 책은 직업・진로 서적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쓰기에 관심 없는 사람들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쓰는 삶’을 기록한 책에 대한 반응은, 확실한 온도차가 있을 것이다. 많은 작가들이 ‘쓰는 삶’에 대한 책을 쓰는 건, 어떤 전략이나 계산보다 본능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모든 작가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쓰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그렇게 수많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런 책을 언젠가 쓰고 싶지만, 그런 책을 쓰는 데는 일정이 자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자격엔, ‘분투’와 ‘실패’가 필수적이고, 그 분투와 실패는 일정한 시간을 통해 보증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김호연 작가는 이런 책을 쓸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삶과 글이 칡넝쿨처럼 분리할 수 없는 상태로 얽혀 있는 기록을 읽고 있노라면, ‘어찌 이렇게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생각엔, 측은함과 동경과 감탄 같은 서로 다른 감정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3
우리는 ‘성공기’를 통해 희망을 얻고, ‘실패담’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 이 책은 8할의 실패담과 2할의 성공기가 담겨 있다. 난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위안을 받을 수 있어 좋았다. 그가 한 얘기 중에 가장 큰 위안이 된 구절은 이것이다.
“오리지널 작품을 쓰는 자는 결국 자신과 만나게 된다. 이 작품은 내가 어떤 작가인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려 주고야 만다.”
-김호연,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 중에서
저마다 작품을 쓰는 동기가 다양할 것이다. 어떤 다양한 동기를 내세우더라도, 결국 우린 우리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 나의 위치를 알기 위해 쓰는 게 아닐까. 난 내 안에 어떤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는지 들여다보았다. 아직 두레박에 달린 줄이 짧아서, 내 마음의 우물에서 퍼 올리진 못했지만, 분명 찰랑거리는 이야기들이 있다. 하늘을 비추며, 떨어지는 낙엽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는 그런 이야기들이. 퍼 올리는 과정에서 절망하고 상처 입을지도 모르지만, 결국엔 희망과 위안이 되어줄 그런 이야기들이.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를 통해 치열한 길을 거쳐온 한 사람을 새로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쁘다. 18년 동안 만수산 드렁칡이 처럼 글과 함께 단단하게 얽힌 한 사람,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한 사람 말이다. 작가가 살아낼 책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며 지켜볼 것이다.
덧) 그의 네 번째 소설인 <파우스터>(위즈덤하우스)가 <스튜디오 드래곤>에서 드라마로 개발 중이라고 한다. 최근에 핫한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과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을 보며 눈에 익은 드라마 제작국인 <스튜디오 드래곤>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