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의 청사포와 마성의 조개 구이

by 송광용

포털 사이트에 ‘청사포’를 검색하면 ‘다릿돌 전망대’, ‘조개 구이’, ‘철길’ 같은 단어가 연관 검색어로 나온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오로지 조개 구이를 먹기 위해서 십수 년 전부터 이곳을 드나들었다.


청사포가 있는 해운대는 울산에서 고속도로를 타면 30분이면 도착한다. 청사포로 진입하는 길에 이르면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청사포를 지나쳐 그대로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해운대 달맞이 언덕으로 통한다. 달맞이 언덕은 봄에 벚꽃 길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기다란 달맞이 언덕길을 따라 가면, 그 유명세에 걸맞게 카페와 갖가지 디저트를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소문난 맛집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광경을 종종 보곤 했다. 그러면 대체 무엇을 파는 가게인지 궁금증이 생겨 기웃거리곤 했지만, 감히 줄을 설 용기는 내지 못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그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내가 여자 친구였던 시절, 한 8-9년 정도 전이었을 거다. 두 번 정도 봄 벚꽃을 보러 달맞이 언덕을 찾았었다. 달맞이 언덕 중간에 꽤 넓은 광장이 있는데, 그곳에선 벚꽃 시즌 내내 플리마켓이 열렸다. 처음 갔을 때, 젊은 예술가가 손바닥만 한 캔버스에 인쇄해서 파는 그림을 하나 보았다. 작은 집 옥상에 알록달록한 빨래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꽤 마음에 들었지만 사진 않았다. 근데 봄이 지나도 어떤 잔상처럼 그 그림이 생각나곤 했다. 다음에 그 그림을 본다면 꼭 구입해야겠다는 다짐을 그 해에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이듬해, 다시 봄이 왔고 벚꽃 비가 내렸다. 우린 다시 달맞이 언덕을 올랐다. 내 목적은 하나였다. 플리마켓이 한창이었다. 전년도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스 사이를 거닐며, 그 그림을 찾았다. 수시로 떠오른 잔상 그대로, 그 그림이 거기에 있었다. 옥상에 널린 빨래 그림이 왜 그렇게 와 닿았는 진 모르겠다. 잃어버린지도 모르고 지낸 감성의 한 형태를 거기서 발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청사포와 이어지는 달맞이 고개는 그런 싱거운 개인사를 간직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한 세 번 정도 가봤을 뿐이다. 하지만 청사포는 열 번은 넘게 갔다. 오로지 조개 구이를 먹기 위해서. 울산에서도 조개 구이를 먹어봤지만, 청사포만 한 곳은 찾기 어려웠다. 청사포 조개 구이의 특징은, 은박 그릇에 버터와 양파, 고추, 팽이버섯을 넣어 불판 위에 올려준다는 점이다. 버터가 녹으면서 걸쭉하고 고소한 소스가 된다. 조개가 익으면 집게로 들어 은박 그릇 위에서 가위로 조갯살을 툭 건드린다. 그러면 익기 전엔 단단히 붙어 있던 조갯살이 순순히 버터 속으로 빠진다. 소스에 버무려진 조갯살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양파가 아삭아삭 씹히면서 그 고소한 맛을 보좌한다. 조갯살로 온전히 배를 채울 수 없다. 금전적인 이유도 있지만, 포만감을 위한 마무리 코스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라면이다. 큼직한 새우를 넣어 국물을 우려낸 라면엔 바다 냄새가 난다. 버터에 버무려진 조개가 고소함을 넘어 느끼해질 즈음, 해물 라면이 국면을 완전히 전환시킨다. 다른 가게에서 라면만 따로 사 먹으려면 오천 원은 족히 넘는데, 조개 구이를 먹고 시키면 이천 원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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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포 조개 구이를 먹으러 여러 번 갔는데, 딱 한 곳만 드나들었다. ‘하진이네’라는 가게다. 십수 년 전, 처음 그곳에 갈 때 인터넷을 검색하니, 그곳엔 동사서독처럼 쌍벽을 이루는 두 조개구이 맛 집이 있었다. 아이의 이름을 딴 듯한, ‘수민이네’와 ‘하진이네’다. 그 두 가게 중에 왜 ‘하진이네’로 정했는지 또렷이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도 고르라면 ‘하진이네’를 고를 것 같다. 수민이보다 하진이가 내가 선호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왜 다른 가게를 가지 않았냐 하면, 평소 자주 갈 수 없는 가게를 가는데, 내가 기대했던 그 맛이 아니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자주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이 가게도 가보고, 저 가게도 가 볼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지극히 안전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새로 간 가게에서 내 준 소스가 버터가 아니거나, 아삭아삭 씹히는 양파가 들어있지 않다면, 난 잔뜩 기대했던 데이트를 망친 기분으로 30분을 달려 돌아와야 할 텐데, 그럴 자신이 도무지 없다.


지금 ‘청사포’를 검색해보면, ‘하진이네’보다 ‘수민이네’가 연관 검색어의 더 높은 곳에 위치한다. 그 옛날 팽팽했던 명성이 한쪽으로 약간 기운 것 같기도 하지만, 난 앞으로도 변함없이 ‘하진이네’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청사포에서 굳이 모험을 할 필요는 없다.


그동안 여러 종류의 무리나 사람들과 그곳을 찾았었다. 맨 처음엔 교회 청년들과 왔었고, 그 후에는 여자 친구(들)와 왔었다. 지금 아내가 된 여자 친구도, 끝내 맺어지지 못한 추억 속 여자 친구와도 이곳에서 바다를 보며 조개를 구웠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다른 여자와 같은 곳에 갈 수 있어?라고 발끈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조개 구이를 먹고 싶은데, 그곳보다 나은 곳을 찾기 힘들었고,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가장 맛있는 걸 함께 먹고 싶은 게 당연한 게 아니냐는 항변 밖에는.


얼마 전, 난 이곳을 다시 찾았다. 이번엔 가족과 함께였다. 사실 오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 삼일절을 앞둔 일요일 오후에, 아내가 신학기를 기념해서 원피스를 사고 싶다며 동부산 아웃렛을 가자고 했다. 고속도로 사정이 심상치 않았다. 연휴의 화창한 오후에 겁도 없이 아웃렛을 가려고 했다니. 아웃렛이 있는 송정으로 진입하는 도로는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운 좋게 송정으로 들어간다 해도, 쇼핑을 시작할 때쯤엔 진이 다 빠져 쾡한 눈으로 좀비처럼 가게를 드나들지 모를 일이었다. 우린 급히 결정을 내렸다. 내가 ‘청사포’를 떠올렸고, 입 밖으로 내는 즉시, 아내는 반색을 하며 동의했다. 아내도 조개 구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꽉 막힌 차선을 벗어나 뻥 뚫린 도로를 달려서 청사포로 접어들었다.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자, 예전과 달라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골목을 구불구불 내려와 횟집 늘어선 해변에 당도했던 건, 옛날 일이 되어 있었다. 청사포의 진입로는 대로가 되어 있었다. 낡은 집을 몇 채나 쓰러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넓고 깔끔한 도로였다. 진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뀐 건 길 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새 역사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관광객을 끌기 위해서, 미포-송정-청사포를 잇는 해변 열차를 운행하고 있었다. 여전히 코로나 19 상황이었지만 역사 주변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 2-3년 만에 처음 이곳을 찾았다. 예전처럼 조용하고 한적한 포구 마을을 기대하고 왔는데, 청사포 전체가 공원화가 되어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아이들은 이제부터 새로 바뀐 풍경을 처음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청사포의 예전 풍경을 얘기한다면, 아이들은 대뜸, 아빠 무슨 소리하는 거예요? 거긴 처음부터 그랬다고요,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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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또 ‘하진이네’로 향했다. 그 가게만큼은 십 수 년째 거의 변화가 없었다. 늘어나는 손님을 위해 몇 년 전에 가게 뒤에 큰 주차장을 만든 것 말고는.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처럼 조개 구이에 열광했다. 후후 불어서 집어주는 대로 불평 없이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여전한 해물 라면까지 먹고서 우린 청사포를 둘러보았다. 붉은 등대까지 가서 하얀 등대가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고, 새우깡을 사서 갈매기가 무섭게 달려드는 ‘청사포 감성 버스 정류장’ 전망대에서 태어나서 가장 가까이서 갈매기 떼를 관찰했다. 히치콕의 ‘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아이들은 금세 덮칠 것 같은 새의 기세에 겁을 먹고서도 기어이 새우깡을 하늘로 던져, 공중에서 잽싸게 받아먹는 갈매기의 재주를 보았다.


우린 다릿돌 전망대 쪽으로 길을 되돌아가기로 했다. 해변 열차가 지나는 철길 옆으로 둘레길을 조성해 놓았다. 물론 예전엔 없던 길이었다. 바다 쪽으로 길게 뻗은 다릿돌 전망대는 오후 6시까지 개방되는데, 우리가 갔을 땐 10분 전에 통제가 시작된 상태였다. 바다 위로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우린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둘레길을 되돌아 나왔다. 내려오는 길엔 완전히 다른 색감의 바다가 그곳에 있었다. 올라올 땐 푸른빛이었는데, 이젠 귤빛 바다였다. 길과 대기 모두 레트로 필터를 씌운 것처럼 보였다. 주황빛이 시야에 잡히는 모든 곳을 물들이고 있었다. 난 내 손을 잡아끄는 5살 둘째 딸이 보채거나 말거나, 잠시 감상에 빠져들었다. 그래,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면 조금 변해도 괜찮다. 여전히 바다는 시시각각 색을 바꾸며 말하고 있었다. 육지의 일이라면 너희 마음대로지만, 결코 바꿀 수 없는 것도 있지, 이렇게. ‘하진이네’ 주차장까지 걷는 동안에도 바다와 거리의 색은 변했다. 조금 어둑해지자, 횟집이 늘어선 거리는 한산했다. 쓸쓸한 기운이 감돌았다. 역시 황혼은 잠시 잠깐이어서 가치 있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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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하진이네’에 돌아와서 긴 귀가 길을 대비해 아이들 소변을 뉘었다. 예상했던 대로 돌아오는 길은 급히 어둑해졌고, 아이들은 카시트에 파묻혀서 잠이 들었다. 청사포를 찾았던 많은 날들이 있었지만, 그 날은 손에 꼽을 정도로 특별한 날이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먹거리와 추억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이들도 특별한 사람들을 ‘청사포’로 데리고 와서 조개를 구울 지도 모른다. 그때 아이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익어가는 건 조개만이 아닐 거란 걸. 그 옛날 부모와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이 이제 노릇하게 익어서 조갯살처럼 그들의 그릇 위에 무심히 떨어질 것이고, 그것 또한 상에 둘러앉은 이와 함께 나누게 되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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