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우리가 글을 쓰던 플랫폼에서 본 레일라는 누구보다 반듯한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반듯한'이라는 표현이 좀 생뚱맞아 보인다고 할 수도 있겠다. 형식의 벽을 넘나들며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이고, 파리에서 지낸 세월을 글로 묶어낸 예술가에게 '반듯한'이라는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왠지, '자유로운 영혼' 같은 표현이 나와야 할 것 같다.
레일라는 내가 본 누구보다도 규칙적으로, 치열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꽤 오랜 세월 꾸준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배우고, 읽는 사람, 성장하려고 애쓰는 사람이었다. 본업인 음악에 있어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녀가 매일 올리던 일상의 기록을 통해 얼마나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려고 애썼는지 엿볼 수 있었다. 낭만적인 파리에서의 삶이란, 제멋대로고 유유자적할 것 같지만 레일라의 삶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진짜 자유롭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악기를 자유롭게 다루기 위해서는 역설적이지만, 규칙적인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레일라는 이런 이치를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누구보다 자유롭게 노래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자유롭게 생각하기 위해서, 매일 반듯한 일상을 보냈다. 예술가 특유의 똘끼가 느껴지지 않는 점이 오히려 다른 예술가와 그녀를 구별 짓는 것 같다. 재능을 발산만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잠잠히 실력을 키우고 쉴 새 없이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지내는 그녀의 삶이 멋져 보였다. 그 어떤 똘끼 충만한 예술가보다도.
이런 그녀의 모습을 책에서도 발견할 수 있어 반가웠다.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 내 일상의 서사는 '쌓임'이었다. 연습의 쌓임, 기록의 쌓임 그리고 그리움의 쌓임. 72p
-이 크고 넓은 세상을 애써 잘 살아 내고 있다고 믿으며 또 하나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곧 겨울이 올 테고, 누군가는 변화를 시도하고 또 희망을 모색할 것이다. 나는 이번에 그 두 가지를 다 해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푸른 여름에 얻었던 기운을 씨앗 삼아 거름을 잘 주다 보면, 겨울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나무로 자라리라 믿는다. 74p -레일라, <어젯밤, 파리에서> _'책 읽는 도시' 중에서
그녀는 기본적으로, 쌓아가고, 심고, 거름을 주는, 그런 세계관을 가졌다. 공으로 거저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파리의 공원을 걷듯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지만 멈추거나 머무르지 않는다. 어쩌면 그녀가 두려운 건, 정체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해왔던 모습을 보면 '튼튼한 나무'로 자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2 레일라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이 책은 질문과 질문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파리에서의 에세이라고 해서 말랑한 일상의 기록으로 가득할 거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이 책은 수많은 질문과,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보냈던 시간에 대한 기록들이다.
-나와 연결되었던 관계 속, 그들에게 나란 존재는 어떠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을까. 대체될 수 없었던 것일까? 52p
-어떻게 하면 글로써 나를 표현하는 욕구를 즐겁게 행할 수 있을까. 84p
-질문을 멈추면 호기심이 사라진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질문하는 습관이 사라지기 때문에 늘 성찰과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88p
-내 정서란 무엇인지, 음악에 녹아있는 나의 아이덴티티를 대중이란 매체 사이에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121p
-어떻게 하면 나의 사유와 고찰이 잘 어우러진 음악을 아우르고 연주할 수 있을까. 126p 그녀의 질문 사랑을 살펴보며, 내겐 어떤 질문이 남았나를 생각해보았다. 이제 답만 남은 건 아닐까. 더 이상의 호기심은 사라지고, 모든 답을 다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건 아닌지. 질문을 가진 사람은 '겸허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태도에서 하나를 배운다. 다 아는 사람 말고, 여전히 질문하는 사람으로 남자고.
3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글 선생으로의 그녀의 모습은 인상적이고 내게 자극을 주기까지 했다.
-학생들과 수업 중 잠시 흐름을 끊으며 여기서 할 수 있는 질문을 생각할 시간을 준다. 88p
-지도하는 학생들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더 발견하고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90p
-그들은 내가 전달하는 모든 단어와 톤, 그들에게 비추는 태도를 한 톨도 남기지 않고 흡수하며 그들 자신의 마음속에 저장한다. 92p
가르치는 일을 한지 꽤 시간이 흘렀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에게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의식하는 일이 점점 흐려져 온 것 같다. 나의 태도를 아이들이 남기지 않고 흡수할 거라는 레일라의 문장을 보며, 잠시 등골에 찌릿 전기가 흘렀다. 어른들에겐 어떻게 보일지 끊임없이 자기 검열하는 내가, 가르치는 대상이 아이들이라고 해서 너무 편한 태도를 보이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그들에게 저장되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이들은 어떤 영향을 받아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을 것이다. 그들을 좀 더 큰 존재로 여기고 의식해야 할 것이다.
하루 만에 책을 다 읽었지만 결코 가벼운 책은 아니다. 생각할 거리와 여운을 준다. 개인적으론 글동무인 레일라라는 한 사람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서 기뻤다. 앞으로도 그녀의 성장과 반듯한 분투를 지켜보고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