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쳤어. 해 질 무렵, 골프장에서 나오던 아주머니와 시장 좌판을 정리하고 돌아오던 아주머니가 말했다...
고교 시절에 우연히 어떤 시집을 뒤적이다가 봤던 시의 내용이다. 같은 말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와 맥락을 가질 때가 있다.
여자배구가 4위로 올림픽을 마무리했다. 높이뛰기의 우상혁, 다이빙의 우하람, 근대 5종 정진화 선수 앞에도 4라는 숫자가 붙었다. 메달 없이 돌아오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이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야구 앞에도 같은 4가 붙었지만, 사람들은 뒷목을 잡으며 고개를 흔든다. 야구 역시 열심히 했겠지만, 간절함의 차이, 주목받지 못하는 곳에서 이를 악물고 알을 깨고 모습을 드러낸 이야기와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4라는 숫자 그 너머에 써진 이야기에 주목한다. 아무리 높은 순위의 숫자라도 그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숫자는 금세 잊힐 것이다.
이건 우리네 삶에도 작은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잡으려고 달려가는 성과와 성취들, 때때로 우린 숫자나 직함으로 집약되는 그걸 붙잡기도 한다. 하지만 오래 남는 것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다. 좋은 이야기는 주인공의 가치관과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태도가 만든다.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많지만 모든 걸 얻을 순 없기에, 우린 무엇을 어떻게 얻을지 선택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선, 아이에게 주고 싶은 것이 많지만, 무엇을 어떻게 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그걸 왜 얻어야 하지? 왜 줘야 하지? 같은 물음에 답하는 게 그 사람의 가치관 내지 철학이 된다. 난 문득, 철학이 휘발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되는대로 얻으려고 하고, 좋다는 건 애들한테 다 주려고 하고. 방향도, 목적도 없이 그렇게.
앞으로 무엇을 성취할지 알 수 없지만,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려면 좋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건 안다. 올림픽의 마지막 날, 여자배구의 4위 소식은 올림픽에서 발견한 좋은 주인공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나의 이야기는 어떻게 적히고 있지? 하는 물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