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외사촌 동생의 결혼식이 있어서 서울엘 간다. 외사촌 동생 중에 첫째이기도 하고, 우리 집이 외갓집과 활발히 교류하던 시기에 태어나서 아기 때부터 클 때까지 비교적 자주 봤던 아이라 애착이 있는 아이다. 두 해 전에 그 아이의 엄마(나의 이모)가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기에, 2년 후에 열리는 그 아이의 결혼식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줄 것 같다. 난 어머니를 모시고 비행기를 타고 오갈 예정이다.
사람의 친구 관계는 10년에 한 번 꼴로 큰 변화를 맞는다는 통계 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나이의 변화, 자신의 사회적 위치의 변화 등으로, 어울리고 교류하는 사람들도 바뀌고 변한다는 얘기였다. 난 친인척과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의 외조부님들이 살아계실 때와 그 이후에, 우리 집과 외갓집 사이의 교류는 현저하게 달라졌다. 어릴 적에 외갓집에 자주 갔지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차례로 돌아가신 고2 이후로 거의 외갓집에 간 적이 없다. 외갓집이라는 구심점이 사실상 사라져 버린 거다. 그러면서 결혼해서 새 가정을 꾸린 이모들과의 교류도 자연스레 끊어졌다. 위기를 맞아 뿔뿔이 흩어져서 살게 된 우리 집의 사정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 사이에 많은 외사촌 동생들이 태어났다. 내일 결혼하는 첫째 말고는 길에서 만나면 서로를 못 알아볼 정도의 존재들이 됐다. 어릴 적에 큰 다리로 연결됐다 생각했던 관계의 대륙 하나가 어느새 단절되어 버린 것이다. 어쩌면 이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수순이 아닌가 싶기도 하면서도, 사람 사이라는 게 가깝고도 멀 수도 있는 거구나 싶어 씁쓸하기도 하다.
내일 결혼식에 가면 얼굴을 외지 못한 외사촌 동생들과 또 처음 만나는 것처럼 인사를 나눌 것이다. 이 형제는 둘 다 서울대에 들어갔고, 얘는 지금 의대 본과 공부 중이고, 얘는 삼성에 취업했어, 같은 정보들만 듣고 끝끝내 그 아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른 채 다시 내려오게 될 것이다. 그러다 또 어떤 경조사가 생기면 만나서 지금은 어느 직장에서 근무한다느니, 어디서 산다느니 하는 말들을 듣고 길에서 만나도 알 수 없는 사이로 살아가게 되겠지.
핏줄이라는 게, 교류가 끊긴 상태에서는 그렇게 대단할 게 없다. 경조사에서나 한 번씩 인사하며, 와 벌써 스물이야? 서른이야? 하며 같이 늙어가는 걸 확인하는 존재가 될 뿐이다. 훗날 어머니와 이모들마저 세상을 뜨게 되면 그 자손들의 실낱같은 관계는 아예 사라져,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웃사촌'이라는 진부하고 오래된 표현 속에 이런 모종의 씁쓸함이 다 담겨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이미 핏줄로 이어진 관계의 허약함을 다 알고 느꼈을 테지. 결국 주변에서 만나고 교류하고 이어진 관계들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것인지, 역설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글쓰기 플랫폼이나 SNS에서 만난 분들도, 가깝다는 개념을 붙이는 게 가능할까 싶지만, 교류하는 이웃이니 소중한 관계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글은 피보다 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