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팟캐스트를 듣는데, 최진영 소설가가 이런 말을 했다. (나이가 들어도) 사랑을 비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나이가 들면 한때 대단한 에너지를 들이던 일들도, 밤새 울던 일들도, 잠 못 들며 고민하던 일들도 사소해져 버린다. 생의 고민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와 버린 후에 예전에 씨름하던 감정들은 까마득해진다. 어쩌면 내 어린 날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감정들을 비웃는 일이 생기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을 대하고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나이를 먹고, 고민의 모양이 바뀌더라도, 필사적으로 사랑을 비웃지 않는 사람으로 남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소설가와 교사와 정신분석 전문의는 비슷한 과업을 갖고 있다. 정신분석 전문의는 나이가 다양한 환자의 고통의 근원을 살피고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자신이 물리적으로 나이가 들어서도 함부로 타인의 감정을 유치하다고 치부하지 않으려면 그만큼 옛 감정들도 신선하게 보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를 쓴 김혜남 선생님은 60대 중반의 정신분석 전문의다. 지금은 병을 앓고 계시고, 이 책이 마지막 책이라고 천명하셨다고 한다. 이 책은 영화 속 인물과 상황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이 담겨 있는 에세이로, 선생님이 삼사십 대에 써서 모아둔 글을 엮은 거라고 한다. 프롤로그에선 이 글들을 다시 꺼내 지금 보아도 참 좋다고 하신다. 앞부분부터 관계에 대해, 사랑에 대해 정신분석학이라는 자신의 또 다른 시각을 갖다 대며 유려하게 이야기를 풀어가신다. 김혜남 선생님이야말로, 어린 날, 젊은 날의 감정을 신선하게 간직한, '사랑을 비웃지 않는' 어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분의 1 정도 읽은 시점에서, 인상 깊은 부분 중 하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가오나시에 대해 분석한 내용이다.
-전형적으로 귀엽지도 않고 화사하지도 않은 가오나시가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 이유는 바로 그 존재가 은유하는 외로움과 우울, 애정에 대한 간절한 갈망, 그리고 이것이 좌절되었을 때 나타나는 구강-가학적 분노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가오나시는 치히로의 내면을 나타내는 존재라고도 볼 수 있다. 10세의 어린 소녀에게 친숙했던 동네나 친구들과 이별해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는 일은 분명 버거운 것이었으리라. 온천장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맴도는 가오나시처럼, 치히로도 새로운 세상에서 이방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 그렇게 아무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어린 소녀가 느끼는 외로움과 분노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삼키고 먹어치우는 외로운 얼굴 없는 요괴의 모습으로 상징화된다.
_<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 중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몇 번이나 본지 모르겠다. 그렇게 많이 보면서도 가오나시를 치히로의 내면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이렇게 촘촘하고 적확한 분석이라니. 이 글을 읽고 모두는 아마, 자기 안에 있는 가오나시를 찾아보려고 할 것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이렇게 작가의 시선으로 짚어내는 여러 인물들의 어딘가엔 나 자신을 이해할 만한 단서들이 숨어있었다. 책을 읽는 사이, 나 자신이 또 다른 분석의 텍스트가 되어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호크룩스처럼 숨겨진 내 일부를 하나씩 찾는 심정으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려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