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호기심이 왕성하던 고딩 시절, 내게 도서관은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종종 친구들과 시립도서관엘 가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서양 명화집을 뒤적거려 누드화를 보거나 의학 서적 코너에서 성과 관련된 책을 살피기도 했다. 어느 것 하나 호기심을 속시원히 채워주진 못했지만, 금기의 세계를 엿보려는 행동만으로도 긴장감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때 봤던 책 중에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야한 우스갯소리를 모아놓은 유머집이었다. 제일 처음 읽었던 이야기가 이십오륙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뇌리에 남아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떤 여자가 다른 남자랑 바람피우는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 남편이 집에 왔다. 여자는 놀라서 바람피우는 상대에게 외친다. "남편이 왔어요. 어서 도망가요!"
여자의 말은 잠꼬대로 재현된다. 그러자, 여자의 옆에서 잠을 자던 남편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더란다.
난 이 얘기를 읽으며, 예측하지 못했던 결말에 감탄을 하며 배를 잡았었다. 마흔 이후에 그 이야기가 떠오를 때마다 난, 그 이야기를 쓴 사람이 몹시 궁금했다. 그는 아마도 '사랑과 전쟁' 같은 스펙터클한 애정과 파탄의 풍문을 머릿속에 가득 재어놓은, 연륜 있는 작가일 테지. 그는 처음부터 그런 유머집을 쓰고 싶었던 걸까. 그가 쓴 콩트가 까까머리의 소년에게 읽히고 이십 수년간 기억될 거라 기대했을까.
또 마흔 이후에 새로 궁금해진 점. 아내의 잠꼬대를 듣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그 위기를 모면했을까. 아아, 세월은 감정이입의 초점을 옮겨놓는다. 젊은 시절에 소비했던 많은 이야기들이 그럴 것이다. 다시 읽으면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