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대하는 나의 자세
글쓰기에 한계를 느낄 때
평소엔 나의 한계를 자각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이것이 내 한계가 아닐까 하고 자문하는 순간이 온다. 그때 내 앞엔 매트릭스의 알약 같은 두 개의 선택지가 놓인다.
"그래, 이게 내 한계지. 더 이상은 시간 낭비야. 접자, 포기하자."라고 나직이 속삭이는 목소리와 "한계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내겠어. 다시 해보자." 하는 불끈대는 목소리. 지금까지 사안에 따라서 각각의 목소리에 화답해왔다.
첫 번째 대학의 전공이었던 컴퓨터 공학 공부를 할 때, 난 첫 번째 목소리에 화답하여 복무를 마치고 학교를 때려치웠다. 꾸역꾸역 열심을 하려고도 했지만, 즐기며 프로그램을 짜고 공부하는 동기들을 보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계를 인정하게 된 동인은, 못하는 건 둘째치고 내가 그 공부에 흥미가 없다는 게 가장 컸다.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공부를 위해 다시 수능을 쳤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관련 학과를 목표로 잡았지만, 공부하는 동안 어떤 계기로 교대로 입학했다.(아, 김용택 선생님..) 심화과정은 당연히 국어교육과였다. 결과적으로 교대에 가서 글을 쓰겠다는 내 목표는 오히려 희미해졌다.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배울 게 많았다. 체계적으로 글을 쓰는 법을 배우지도 못했고 싸이월드에 글을 끄적이는 게 거의 전부인 생활이었다.
지금은 어찌어찌해서 가르치고, 쓰는 사람이 되었다. 탁월하게 가르치지도 탁월하게 쓰지도 못하지만 무늬는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다. 그때, 다시 수능을 보고 애초에 바랐던 대로 글 쓰는 전공을 선택했더라면, 긴 시간 돌아오지 않고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하고 가끔 생각한다.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지금처럼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르치는 일을 삶의 기반으로 삼고, 거기에 생활의 소산을 기대고 묵묵히 나아가는 게 나로선 더 나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글을 쓸 때 자주 내 한계를 자각한다. 어김없이 두 개의 목소리는 내 앞에 울린다. 내 선택은 늘 같다.
"한계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내겠어. 다시 해보자."
내가 잘하고 싶은 일에서 한계를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내 한계를 조금씩 더 위로 밀어 올리는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머물러도 좋을, 애초에 그 정도로 구획된 한계선이 묵묵한 상방의 압력으로 위치를 바꾸는 것이다.
오늘도 차를 운전해 오다가 문득, 한계를 떠올렸고, 한계가 아니란 걸 증명해내겠다고 다짐했다. 글을 쓰는 일의 희열과 흥미를 잃기 전까진, 그런 다짐은 계속될 것이고 내 앞에 묵직하게 버티고 선 한계선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그건 쉽게 끝나지 않을 전투, 행복한 시위, 희망에 방점이 찍힌 희망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