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에서 만난 뜻밖의 거래자

by 송광용

짐정리를 하다가 안 쓰는 인터넷 공유기가 있어, 당근마켓에 내놨다. 미사용 제품인데 싸게 내놔서인지 채팅 연락이 바로 왔다. 3건이 1분 정도 시차를 두고 왔길래, 나중에 온 두 사람에겐 먼저 연락 온 분과 거래가 안 되면 연락 주겠다고 답했다. 두 사람 모두, 거래 불발되면 꼭 자기에게 연락 달라고 했다.

제일 먼저 연락이 온 사람과 거래 시간을 정하고 장소를 알려주는데, 대답이 다 단답형이었다. 이런 식이었다.
"주소"
"○○예요. 언제 거래 가능하실까요?"
"지금"
"대략 몇 시쯤 오실 수 있나요?"
"5시"

난 게임에 빠진 초등학생인가, 외국인인가, 하는 추측을 하며 거래 상대자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을 했다.

약속한 오후 5시가 넘어서 채팅이 왔다.
"10분"
10분 뒤에 도착한다는 거겠지 싶어. 시간 맞춰 약속 장소로 갔다. 약속 장소엔 없었다. 어디냐고 채팅을 보냈더니, "학교 앞"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거래 장소 주변엔 두 개의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둘 다 걸어서 5분은 가야 하는 곳이었다. 난 상대에 관한 두 개의 가설, 즉 아주 어린아이 또는 외국인이라 생각하고, 거기 있으라고, 내가 그쪽으로 가겠다고 했다. 내가 두 학교 중에서 한 학교의 이름을 대며, 이 학교가 맞냐고 했더니 맞단다.

난 집 앞이라 점퍼도 입지 않고 있었다. 슬리퍼와 얇은 복장으로 5분 거리의 길을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학교 근처에 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정문이냐고 보냈는데, 상대는 답이 없다가 뜬금없이 "시장 쪽 가고 있어요"라고 답을 보냈다. 시장은 내가 온 곳과 반대쪽에 위치한 곳이었다. 응? 뭐지?

난 내 두 개의 가설- 아주 어린아이 내지 외국인-이 아니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혹시, 상대를 골탕 먹이는 걸 즐기는 누군가가 아닐까. 내가 얇은 티셔츠를 걸치고 엉뚱한 장소에 가는 걸 보며 어디선가 웃음 짓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약속한 거래 장소를 찾아오셔야지,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거래 장소에 도착하면 연락주세요."
라고 보냈다. 상대는 한동안 답이 없었다. 난 간발의 차이로 대기 중인 나머지 두 매수 희망자를 떠올렸다. 이들이었다면 쿨 거래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잠시 후,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다시 그곳으로 갔다. 도착했다던 사람은 없었다. 1분이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한 사람이 날 향해 걸어왔다. 난 순간, 아- 하는 탄식을 내뱉었다. 내 짐작이 맞았기 때문이다. 그는 동남아시아 출신 외국인 청년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큰 눈을 껌뻑이며 순박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난 그에게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왜 외국인이냐고 물어보지 않았을까. 지금 있는 자리에 있으라고, 내가 찾아가겠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역시 난 더 성장해야 하구나... 난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길 찾느라 많이 힘들었죠?"
그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대답 대신,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지폐를 꺼내 내게 건넸다. 난 잘 쓰세요, 하며 물건을 건넸다.

그는 물건을 받아 들고, 돌아서서 걸어갔다. 이건 거래일뿐이라는 듯, 필요한 걸 주고받았으니 다 되었다는 듯, 세상 쿨하게. 그의 등을 보며 난 바랐다. 그가 받아 든 인터넷 공유기가 인터넷 신호를 잡아주듯, 소소한 친절을 잡아주는 친절 공유기가 늘 그의 곁에 있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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