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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출간을 꿈꾸는 친구에게

by 송광용

나의 책 출간 소식을 들은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잘 그렸던 고교 동창이다. 친구도 책 출간에 대한 바람을 늘 마음 밑바닥에 깔아두고 살아왔다고 했다. 그는 그림에세이를 쓰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하루하루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고 했다. 일련의 대화 과정을 대담 형식으로 정리해봤다.


친구 : 본격적으로 시도하지 못한 건, 생업 때문에 여유가 없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내가 쓰는 그림과 글이 당장에 책이 될 정도의 수준이 못 된다는 거야. 써봐야 시간만 낭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지.


나 : 처음부터 책을 생각하지 말고, 우선 뭐라도 쓰겠다고 마음먹어. 사금을 캐려고 할 때, 단번에 금만 잡겠다고 기대하지 않지. 우선 모래를 한 움큼 쥐어야 하지. 거기엔 금만 있는 게 아니고 모래와 흙과 오물이 뒤섞여 있어. 글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쓰는 글 중엔 반짝이는 금도 있지만, 모래와 흙도 있어. 그 많은 글 중에 금처럼 빛나는 글을 뽑아서 책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쉬워. 처음부터 금을 쥐겠다고 생각하면 아무 시도도 못해.


친구 : 난 사실 책을 쓴다는 걸, 경제적인 수익과 연결해서 생각하곤 해. 책이 잘 안 팔려도 나의 브랜드 가치가 올라갈 테니, 그게 경제적인 수익으로 어떻게든 연결 되지 않을까. 그냥 책을 냈다는 자부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그걸 생각으로 책을 내고 싶다고 하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해.


나 : 돈을 벌려고 책을 쓴다는 건 따지고 보면 너무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야. 쓴 글들이 다 책이 된다는 보장도 없어. 난 글쓰기의 효용을 좀 다른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글을 꾸준히 쓰는 사람은 하나의 다른 세계를 갖고 있는 거야. 그 세계에서 하나하나 글이 쌓일 때마다, 난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거야. 그런 감각은 삶의 질고를 이겨내는데 도움이 돼. 직접적으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나의 자존감이 높아지고, 나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되는 일은 결국, 내가 생업을 위해 하는 일에도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해. 경제적 가치는 보장할 수 없지만, 삶의 가치는 확실히 높여주지. 글을 꾸준히 쓰려고 한다면 시각을 좀 달리하면 좋을 것 같아.


친구 : 백 권 넘게 책을 썼다는 유명한 책 쓰기 코치의 강좌를 들어볼까도 생각했어. 아마 서울에 살았으면 당장 수강했을 거야.


나 : 결국 책 쓰기 코치라는 사람들은, 책을 쓸 때 필요한 전반적인 정보를 모아서 알려주고, 책을 쓰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류의 동기부여를 해주겠지. 너처럼 글 한편 쓰는데도 여러 생각에 휩싸여 의지를 다잡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강제성을 부과해서라도 글을 모을 수 있도록 유도하겠지. 근데 이런 코칭들은 이미 다 답이 나와 있는 거야. 전혀 새로운 게 아니지. 우선은 두세 줄의 글이라도 쓰는 게 시작이야. 그걸 듣겠다고 수십만 원을 쓸 필요가 있을까. 중요한 건 당장 시작하려는 결심이고,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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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 글을 쓸 때 난 내 이야기를 못 쓰겠어. 어차피 내 이야기에 누가 관심을 두겠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얘기를 써야 읽히고 팔리는 글이 되지 않겠어?


나 : 글을 쓰는 첫 단계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들여다보는 거라 생각해. 네가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 말이야. 순서가 틀린 거야. 다른 사람이 관심을 가지거나, 팔릴 만한 얘기를 찾는 건 내가 쓴 이야기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야. 사람들은 누군가의 은밀한 이야기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지. 모두 예측 가능하고 아는 이야기라면 흥미롭지 않을 거야. 지극히 사적인 지점에서 시작해서 보편적인 가치와 공감으로 나아가는 게 글쓰기라고 생각해.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봐. 그리고 네가 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도. 남편으로, 아빠로, 중년에 접어든 남자로, 직업인으로, 다양한 입장에서 생각하면 여러 가지 소재가 나올 거야.


친구 : 넌 어디다 글을 써?


나 : 시간이 지나면서 좀 바뀌었어. 이번 책의 출간 제의를 받은 곳은, 예전에 글을 쓰던 블록체인 기반의 블로그였어. 좀 폐쇄적인 블로그였는데, 출판사의 대표님이 내 글을 보셨고, 직원을 통해 연락을 주신 거지. 블로그에 쌓인 글들이 책의 뿌리가 되었어.


지금은 주로 브런치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혼자 일기처럼 글을 쓸 수도 있지만, 글을 올릴 플랫폼을 정해서 쓰면 여러모로 도움이 돼. 플랫폼에 글을 쓰면 내 글을 읽을 독자를 의식하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더 글을 정제하게 돼. 그리고 글에 대한 피드백도 즉각적으로 받을 수 있어. 그러면서 글쓰기 역량이 성장하는 거야. 처음부터 금인 게 아니야. 처음엔 모래나 흙, 오물도 쏟아내지.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친구 : 당장 시작해야겠어.


나 : 그러게, 이 눔아, 전에 그 블로그에서 같이 쓰자고 했을 때 좀 꾸준히 쓸 일이지. 그때 일주일에 한 번만 썼어도 책 분량은 나왔겠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알량한 책 한 권 내놓고 코치나 된 것처럼 말했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친구가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코치가 되어줄 것이다. 결국 책 출간의 의의는 여기에 있다. 현실의 삶에, 관계에 좋은 자양분이 되는 것 말이다.


책 출간이 그간 소원했던 사람들과 나 사이에 다시금 강한 결속력을 가지게끔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20대 시절 친했던 한 동생은, 서점에서 내 책을 사서 들고 있는 사진을 찍어 보낸다. 대학 후배 하나는 내 책을 좋은 책이라 소개하며 그 옛날 대학생 시절의 내 모습을 묘사하기도 한다. 과분할 정도의 선의다. 지금 받은 복을 다 갚을 수 있길 바란다. 그들 중 누군가가 내가 전한 뻔한 조언을 듣고, 그들의 삶을 책으로 엮는다면 빚을 조금 갚았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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