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시나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by Journey

내 구글드라이브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스프레드시트가 있다.
현재 23명의 사람들이 이름과 전화번호로 담겨있다. 2014년에 만들고 1년에 한두번 업데이트하는데 대개 몇년 소통이 없으면 살짝 다른 칸으로 옮겨놓았다가 1년후에 삭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리스트를 만든 이래 한번도 만나거나 연결이 되지 않음에도 여전히 그 이름과 기억을 떠올리면 반짝반짝 나를 지켜보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 리스트 맨 상단에 있는 몇몇 사람들, 그 중에 한 분을 소개하고 싶다.
이 리스트를 만든 계기는 그해 여름, 돌아가신 대학시절 한 선배님때문이었다.

그 분은 대학 신입생때 알게 된 '어른'이었다.


별 일이 없어도 바쁜 신입생시절, 학교 근처 누구나 한번쯤 가보는 'OO사 계곡'에 가보고 싶었다. 그 곳은 일부러 맘먹어야 가볼 수 있는 곳이었는데 왕복 3시간 통학거리에, 끝나면 집에 가기 바쁜 나는 친구들이 하는 'OO사'얘기에 끼지 못했다. 어느날 무심코 'OO사'에 가보고 싶다고 한 말을 기억하고 선배님은 내 친구들 여럿과 함께 계곡에 놀러가자고 했다. 그냥 가벼운 산책인줄 알고 맨 몸으로 나갔는데 선배님은 고기, 버너, 불판에 상추와 야채까지 준비하고 나타났다. 동행한 내 친구들과 함께 고기를 구워 밥을 먹고, 계곡에서 물장구치고 놀았다. 그날 계곡 나무 사이로 빛나던 햇살이 기억난다.


그후 선배님과 가끔 만나 짝사랑 속앓이, 이해안되는 철학 얘기, 가까운 이들이 할퀸 상처, 가족, 진로 얘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선배님은 공학교육 전공이라 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학교 선생님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졸업 후 임용을 마다하고 수도원에 입회했다. 뜻밖이었지만 평소 성품으로 당연한 선택처럼 납득이 됐다.
그렇게 선배님의 수도회 입회식도 따라가고 수도원 '오픈하우스'도 갔다. 선배님이 신학교를 다니는 사이, 나도 수도원에 입회했다. 내가 입회하던 날, 선배님이 왔다. 가족을 제외한 유일한 동행이었다.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느라 눈도 마주치지 못할때, 우리는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내가 수도원에 있는 동안, 선배님을 만날 기회는 없었다. 선배님은 일본 신학교에 갔고 자주 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수도자는 고독과 직면해야 함을 잘 알았다.

3년만에 내가 수도원에서 돌아오고 처음 통화했을때, 깊은 한숨으로 내가 가볼껄... 그랬다.

선배님은 일본에서 수도회 신부님이 되었다. 그래도 난 신부님이라는 호칭 대신, 익숙하게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그후로 선배님의 해외파견으로 몇년씩 소식이 끊어졌지만, 돌아오면 언제나 먼저 연락이 왔다.

돌아가시기 얼마전 사회복지 일을 할때는 나와 하는 일도 비슷해서 일에 대한 얘기도 종종 나눴다.


그렇게 언제나 연결하려고만 하면 연결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날라든 연락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쿵하고 무언가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암 진단 후 짧은 투병생활을 보냈다고 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병실에서 뜨개질을 해 주변에 선물을 주었다는 얘기도.그분의 장례식장에 가서 여전히 웃는 얼굴의 영정사진을 마주해도 믿어지지 않았다.마지막 일하던 곳이 대학교여서 장례식장에는 청년들이 가득했다. 모두 일터에서 선배님과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장례식장은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 가득했다. 언뜻 잔치집같은 흥겨움과 평온함이 있었다. 선배님의 연로한 부모님은 덤덤한 표정으로 손님을 맞고, 인사를 나눴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다시 연결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했다. 그때 이 리스트를 만들었다.

리스트 맨 상단에 선배님의 이름을 적었다. 연락처에는 천국이라고 썼다.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요...'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를 바라보다 그 번호를 터치하고 잠깐 연결음을 들으며 상상하기.
카톡과 각종 메신저가 넘치지만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웃고, 밥 한끼를 나누고, 헤어질땐 몇 번이나 손을 흔들고, 다음에 또 만나자고 약속하는 그 일이 소중해졌다.
조금 가볍고 조금 얕아도 좋으니 똑똑 문 두드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 어때?" "어떻게 지내니?" "목소리 듣고싶어 연락했어...."
전화기 너머 가만히 목소리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