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부터 졸업까지의 대학생활 연대기
대학생활에 대한 회고적 글을 쓰기에 앞서, 나는 어떤 대학생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나는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가, 한국 20대 대학생과 대학문화를 담담히 늘어놓는 관찰자로써의 나는 어떠한 요건(?)을 갖춘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자신을 돌아보면서 입학부터 졸업까지 나의 대학생활을 연대기 순으로 되짚어보기로 했다. 많은 대학생들이 그렇겠지만 4년+@의 시기에서 몇 번의 터닝포인트가 찾아온다. 특히 남자들은 군대가 대표적인 터닝포인트일 것이고, 나 또한 나만의 변곡점이 있었다. 그 지점들을 기점삼아 몇 개의 시기로 자연스럽게 나뉘게 된다. 그렇게 몇 가지 시기들로 묶어서 설명하는 것은 마치 음악사를 바로크, 고전, 낭만 등으로 분류하는 것 처럼 자연스럽고 편리한 현상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쓸 글이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거나, 생소한 내용이 많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대학생활을 매우매우 특이하게 했기 때문이다. 아마 나처럼 대학생활을 보낸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흔히들 몇학년엔 무얼 하고 이 시기엔 무엇을 하고 어떤 테크를 타고 하는 보편적인 패턴이 나에게는 단 한개도 없다. 그래서 앞으로 쓸 글의 맥락 이해를 위해서도 이런 연대기적 서술은 필요해보인다.
나의 대학생 시기는 크게 4파트로 분류가 가능하다. 2012년, 2013~2014년, 2015~2016년, 그리고 2017년이다.
2012년
검은뿔테 안경을 쓴 빼빼마른 흔남이었던 나는 12학번 새내기(12학번도 한때는 무려 새내기였다..)로 대학에 입학했다.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들이 캠퍼스의 낭만을 돋구어줄 무렵 나는 새내기 라이프를 누리려고 노력했지만, 재수할 때 많이 악화되었던 몸상태가 발목을 잡았었다. 그래서 여느 대학 1학년들 처럼 풋풋하고 낭만적인 캠퍼스 라이프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갓 스무살된 청춘의 풋풋한 연애는 커녕, 알바를 시작해 스스로의 힘으로 돈 모아 여행 가는 흔한 일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몸과 마음이 망가져있었다. 결국 강의실을 걸어다닐 수 없을만큼 몸이 나빠져 휴학을 하게 되었고 반수와 재활을 병행하게 되었다. '대학에 가면 내가 하고싶었던것들을 다 할수있을거야!'라는 기대감을 품고 재수까지 하며 열심히 달려왔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런 억눌린 욕구의 해소가 아닌, 더 억압적인 몸과 마음의 고통이었다.
2013~2014년
짧았던 반수가 끝나고, 거동을 할 수 있을 만큼 몸상태도 개선되었다. 이 지옥같았던 시기를 지난 뒤 "미래의 불확실한 가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말자"는 결심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다. 불확실한 미래는 나에게 투자대비 성과를 주지 못했을 뿐더러 현재마저 살기 힘들정도의 고통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하고싶은게 있으면 무조건 지금 하자는 생각으로 대학교에서 가장 하고싶었던 음악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비록 동아리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동네 친구들과 크루를 결성해 버스킹을 하고, 직접 공연을 기획하곤 했다. 그리고 '내 마음은 왜 이렇게 됐을까?'에 대한 답을 찾고싶어 책, 특리 심리학 서적을 많이 읽었다. 심리학 수업도 많이 수강하였다. 이 얘기는 바로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해볼 예정이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서 과 활동을 열심히 함은 물론 소개팅도 자주 받고, 연합동아리를 하면서 인간관계를 넓히기도 했다. 하지만 대상포진보다 더 큰 통증을 매일매일 앓고있는 상황이라 그런건지는 몰라도, 자잘한 실패를 참 많이 겪었다. 인간관계도 삽질과 실수의 연속이었고, 연애도 잘 안풀렸다. 음악 역시, 동아리방같은 공간이 없다보니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이 시기는 그야말로 오답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증거는 이 시기에 대해 적은 분량이 다른시기보다 많다는 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래도 치열한 노력 끝에 14년 말에 가서야 처음으로 길게 연애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열심히 살다보니 편입에 대한 아주아주 갇한 동기부여를 얻게 되었고, 편입준비를 하게 되었다. 아참, 몸이 좋지 않아 여느 남자들처럼 1~2학년 마치고 군대에 가지 못했다.
2015~2016년
불같은 신념을 발휘한 끝에 무려 편입을 합격하게 된다. 수능 재수 삼반수까지 해도 안되던 게 편입에서 터졌다. 군대를 제때 가지 않은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이었다. 편입 합격은 "신념이 있으면 저절로 행동하게 된다"는 교훈을 내게 주었다. 이 에피소드 또한 나중에 자세하게 풀어보겠다.
편입 합격 후 그동안 못 즐긴 캠퍼스 문화를 만끽하게 되었다. 이전 학교에서 누리지 못했던 동아리 학회 학교행사등에 열심히 참여하고, 지적대화가 가능한 깊이있는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학년의 숫자는 3이었으나 마음의 숫자는 1이었다. 새내기때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새 학교에서 제대로 즐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흔히 '사망년'이라고 묘사되는 시기가 3학년이지만, 여느 3학년들과는 달리 캠퍼스의 낭만을 적극적으로 누리고자 했다. 마치 버킷리스트를 한없이 써놓고 줄 찍찍 그으며 쾌감을 느끼는 사람같았달까.
이때가 인생에서 가장 잘 풀리던 시기였다. 새 학교 버프에, 더 많은 기회들을 놓치지않고 잡으며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음악 역시 본격적으로 밴드 동아리에 들어가며 폭풍성장하기 시작했다. 연애도 잘 풀리고 친구관계도 더욱 두터워졌다. 13~14년의 시행착오들이 바로 자양분이 되어 별다른 실패를 겪지 않고 잘 살던 시기였다. 자취를 시작한것도 이맘때쯤이고, 신촌의 많은 것들을 즐기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2017년
편입 버프가 끝나고 졸업학년이 되며 현실을 되돌아봐야할 시기가 왔다. '돌이켜보니 하고싶은게 있으면 해야지!'라고 외치던 어린시절의 패기는 사라졌었고 현실과 줄다리기하는 모습만 남아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군대를 가지 않은 상황에서 + 대학원을 준비하는 상황이라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다.
졸업 시기가 다가올수록 현실의 무게가 나를 더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현실과 줄다리기하는 그 줄마저 점점 썩어가는 느낌이었다. 여느 졸업생들 처럼 특정 테크를 타고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게 아니라, 계속해서 피터팬 컴플렉스에 빠진 아이마냥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욕심이 너무 많았던 시기였다. 경제적으로도 윤택하고 싶지만 지하철에 연신 나오는 광고처럼 내 꿈을 펼치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머리를 쥐어짜며 사고실험만 하다가 파도에 휩쓸리듯 졸업'당했'다. 덕분에 졸업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사실 휴식이 필요하기는 했다. 6년을 쉬지 않고 학교를 다녔으니, 지칠만도 하지 않은가
이렇게 나뉘어지는 시기들 속에서 몇가지 특이한 사항들이 나의 대학생활을 조금 독특하게 만들었다. 우선 몸이 좋지 않아 중간에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는 점. 그래서 예비군, 복학생, 곰신과 같은 이슈는 내가 다룰 수 있는 주제가 되지 못한다. 사실 이 점이 학년지날수록 남자들과 친구가 되기 어렵게 만든 요인 중 하나다 (군대 얘기에 낄 수가 없다). 둘째로 음악과 동아리에 영혼을 바쳤다. 2012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해 동안 음악을 했다. 기타, 퍼커션, 드럼, 작곡, 피아노, 보컬, 신디사이저, 일렉트로닉 등 동아리와 버스킹, 그리고 음악레슨에 쏟아부은 시간과 역량이 엄청나다. (그만큼 일관된 취미라고 볼 수 있다). 세번째로는 대학원에 초점을 두고 학교를 다녔다. 조금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진리추구(?)를 하면서 대학원을 다녔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니까 취업, 고시와 같은 실용적인 목적 보다는, 학문적인 목적 자체를 충족시키는 것을 우선시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는 당연히 대학원에 갈 줄 알았던 소년이었다.
학부 시절 교양수업으로 들은 문화인류학 수업에서, 교수님이 문화를 낯설게 보는것의 중요성을 말씀해주셨던 것이 기억난다. 서구문화의 사람들이 문명화되지 않은 원주민 문화에 들어가 직접 체험한 뒤, 다시 돌아와 자신이 원래 살고 있던 서구문화를 낯설게 보는 시간을 가진다. 이를 통해 우리가 공기처럼 별 생각없이 느끼고 있던 우리의 문화를 더욱 낯설게, 더욱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나는 같은 대학을 다니면서도 너무 다르게 살아왔기 때문에 동시대를 살아온 대학생과 대학문화를 낯설게 바라볼수 있는 입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써내려갈 글들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문화들을 끄집어 내는 기폭제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