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슬주 Mar 28. 2020

선생님 되는 공부

이제 잘 가르치는 공부만 하자!

끈질기게 한 가지보다 다양하게

여러 가지 공부를 했다.

언어만 해도, 영어를 비롯해서

중국에서 근무할 때는 중국어

베트남에서 근무할 때는 베트남어

태국에서 창업했을 때는 태국어

태국 거주할 때 비자 문제가 될 거 같아

한국어 교원 과정까지 공부했다.


한식조리기능사, 피부미용 관리사는

기술이 남는 거라는 소리에 공부해서

국가 자격증 취득까지 하고

자유롭게 내 일 하고 싶어 창업 관련 교육을 경기여성인력개발센터를 비롯해서

옥션, 11번가, 이베이 셀러 교육까지

정말 열심히 쫓아다니며 공부했고

사업자 등록증까지 냈다.


가장 어이없었던 공부는

태국에서 영적인 것과 몸과 마음에 관심이 생겨

태국 마사지 과정과 아로마 마사지,

그리고 레이키 공부까지 했었다.


누구 말대로 배우다 객사하겠다고

난 정말 끊임없이 배우러 다녔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 정말 할 수 있는

투자와 방법은 다 시도했다.


지금 남은 건 바닥이 보이는 잔고뿐이었고,

나이 들면서 체력이 방전되고

배워도 실전에 사용 못한 배움은

정말 시간 낭비, 돈 지랄이었음을 깨달았다.


어느새 미혼임에도 아줌마라고 부르면

뒤돌아 보는 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집에서 일하는 영어 화상 수업 선생님이 되었다.

10일 정도 본사 교육은 의무 참석이었다.

이전에 강남역에 있는 수출 에이젼시

회사에 입사했을 때

출근길 지하선 2호선을 보고

출근 이틀 만에 그만뒀다.

왠지 그 지하철 안에 들어가면 죽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거 같다.


그래서 지금 다니는 회사 교육시간을 봤을 때

10시 출근인 것을 확인하고 이력서를 넣었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게 만드는 그 지하철 안 상황이 너무 싫었다.

먹고사는데 뭐 어쩔 수 없는 일인지만

난 피하고 싶었다.


10시부터 5시까지 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굉장히 타이트하게 이뤄졌고,

유명한 회사라서 그런지

기자재하고 복지가 괜찮았다.

복지라는 게 대단한 게 아니라

점심 잘 나오고,

교육장 좋았고,

수업장 입구에는 항상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던 거.


10일 교육을 받고 나를 담당해 줄

매니저님이 정해졌다.

교육을 각 지부에 매니저님들한테

받기 때문에 내가 저분 들 중에

한 분 소속으로 들어갈 것을 수업 전에 교육매니저를 통해 들었다.


그분 중에 한 분 말씀하는데

유독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분 소속으로 일하게 해 달라고

미리 교육 매니저한테 부탁했다.


다들 서프라이즈로 교육 마지막 날에

매니저님이 정해졌지만

난 부탁했던 대로 그분이 내 담당으로

지금도 난 그분을 통해 회사 일을 듣게 된다.

아이를 가르친 경험도 없고,

출산한 경험도 없으니 양육한 적도 없었다.

해외 다닐 때도 어울렸던 사람들이

20대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태국에서 운동 관련 창업을 했기 때문에

운동하는 어린 유럽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나한테 말 안 통하는 외국인보다 더 긴장되는 말 통하는 낯선 존재였다.


동기하고 한 명은 선생님,

다른 한 명은 학생으로 롤플레잉 해서

실습을 두 번하고 바로 학생과 만나

수업을 진행했다.


화상 수업이라서

얼굴을 마주 보는 것도 어색했지만,

관련 교재를 모니터에 회사에서

정해진 매뉴얼대로 띄워서

가르쳐야 해서 정신이 없었다.


모든 수업이 녹화가 되고,

나중에 모니터링하는 직원이 보고

코멘트를 남겼다.

그 코멘트가 반영돼서 급여가 조금씩 차이가 난다고 하는데 너무 긴장돼서 녹화고 뭐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도 남들이 못해 본 여러 경험을

사서 했던 경험에

매니저님 하고 동기들 눈에 보기에는

능숙하게 했듯 보였나 보다.

3일 정도 회사 교육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을 때,

내 수업이 끝나도 경험이 많은 동기 선생님들이 수업하는 것을 듣고 퇴근했었다.


경험이 많은 만큼 능숙했고, 잘 가르쳤다.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화상 교육에 필요한

모든 기자재가 집에 도착해 있었다.

회사에서는 모든 장비를 집 주소로 일괄 발송했다.

많은 교육생을 배출한 곳답게

수업 이틀 전에 모든 장비가 세팅되어 있었고,

화상 교육으로 어떻게 수업을 진행해야 할지 교육도 따로 해주셨다.


그렇게 집에서 가르치면서

처음에는 얼마나 긴장했던지

그 조그마한 아이들한테 외국 친구들하고

맥주 마시면서 밤새 이야기했던

영어를 가르치는 게 뭐라고.


10분 수업하고 화장실 가고,

다시 10분 수업하고 물 마시고 복식 호흡하고,

10분 수업하고 화장실 갔었다.


그러다 내가 아는 영어를 아이들한테 가르쳐 주면서 정말 놀라운 경험을 했다.


내가 계속 웃고 있었다.



아이들을 안 좋아하는데요


내가 평생 입에 달고 다녔던 말인데.

나이가 먹어서 내가 변한 건지

아니면 내가 나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발견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너무 너무 예뻤다.


귀엽고, 그 작은 입으로 내가 따라 말하라는 ABCD를 따라 말할 때는

정말 모니터에 손을 집어 넣어 아이 볼을

쓰다듬어 주고 싶기까지 했다.

녹화가 되지 않았다면

"아.... 미치겠네.."라는 말을 계속 할 정도로 아이들이 미치도록 귀여웠다.







작가의 이전글 재택 영어 선생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