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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Mar 27. 2020

재택 영어 선생님

드디어 남은 인생 할 일이 생겼다.

2년 6개월의 판매직 경험으로 대인기피증이

올 정도로 사람에 대한 혐오가 대단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일이

무엇이 있나 고민을 했다.

여러 직업이 있었지만 나하고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꾸준히 할 듯하지 않았다.


인생이 잘 풀리지 않고, 통장의 잔고마저 내 인생에서 학창 시절을 제외하고 가장 적은 금액이

찍힌 숫자를 보고 이젠 내 다양한 배움의 욕구를 채우는 일을 그만둬야겠다 결심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잘하는 일을 할 시간이었고,

어찌 보면 내 인생에서 터닝포인트인 시기였다.

지금 내 길을 찾지 못하면 정말 찌질한 인생과

자기 연민에 빠져 과거의 내 경험과 경력들을

라떼(나 때는 말이야..)를 찾으며

그렇게 살 듯했다.


이상하게 30살 이후부터 어디를 가도

내 직업을 선생님으로 봤다.

말투가 딱 떨어지고,

탈모가 시작된 이후로 No 염색 No 파마로

단정한 단발머리와 대충 깔끔하게 입는 옷차림 때문인듯했다.

그럼에도 관련 일은 생각도 안 했던 게

난 선생이라는 존재를 정말 싫어했다.


체벌이 가능했던 학창 시절과

1년 내내 담임이었음에도 복도에서

'너네 반에 가지 않고 뭐해!"

라는 말을 하는 덜 떨어진 선생을 여러 번 둔

내 불운이 작용하기도 했다.


거기에 성인이 돼서 영어를 대학 부설 어학원에서 공부할 때 반 절반 이상이 초등학교 교사들이었다.

나보다 언니들이었지만, 몇 번 어울리면서 이들이 교사라기보다 그냥 학교에서 일하는 직장인이구나

라는 생각에 어릴 적 무언에 강요가 있던 선생에 대한 존경심이 완전 사기였음을 알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방학이 없었으면 자신은 절대 선생을 하지 않았단다.

그리고 공부 못하는 아이와 케어 못하는 부모를 무능하다고 흉을 봤던 대화였다.


15년 전 당시에 이슈였던 일이 학원 선생님이었던 지인이 분개했었다.

부모가 일을 해서 바빠 아이를 한글을 못 가르치고 학교를 보냈단다.

학교 선생은 그 부모한테 전화해서 자신은 한글을 이 아이만을 위해 못 가르치니,

학원을 보내서라도 한글을 깨치게 하라고 했다고 한다.

공교육에서 학원을 보내라고 한다고 분개했던

일을 당시 초등학교 교사 언니들한테 말했더니

당연하단다.

반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글뿐만 아니라 영어도 하는 판에 어떻게 그 아이한테만 한글을 알려줄 수 있냐고!

담임이 무슨 죄냐고 했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좋은 선생님들도 많지만,

난 너무 운이 안 좋았다.

내 개인적으로 불운했던 경험 때문에

인식이 안 좋았다.


요즘 우리 때와는 선생님에 대한 이미지는

많이 달라졌다.

교권이 많이 떨어졌다 느끼는 게 학부모들의

갑질 때문에 그만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부터였다.


내 지인의 새 언니는 성질이 정말 대단했다.

지인의 조카가 심하게 활발했는데,

교사가 여러 번 교실 자리에 앉혔음에도 복도로 나와 계속 미쳐 날 뛰니까

나중에는 복도에 무릎을 꿇리고 앉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지인 새언니는 학교 와서

그 교사를 만나 난리를 치고,

교장실까지 쳐들어가 난동을

피웠다고 한다.

나중에는 그 교사가 학생들이 보고 있음에도 조카가 꿇었던 복도 그 자리에서 새언니한테

 무릎을 꿇고 끝났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정말 후덜덜 떨렸다.


그래서 난 선생이 되는 것에 관심도 없었고,

사실 아이들도 학부모도 무서웠다.



다시 2020년으로 돌아와서,

파트타임으로 할 일을 찾다,

학원 강사 공고를 보게 되었다.

집에서 많이 가까웠고,

시간대도 오후에 5-7시간 정도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력서를 내자, 바로 연락이 와서 집에서

TV 보다 면접 보러 갔다.

원어민 강사가 연치를 냈다며 나이가 나보다 많은 여자분이 면접 질문지를 읽는데

자신을 강사라고 소개했던 분의 발음 치고는 조형기 아저씨의 Top of the world 노래

부르듯 질문했다.


유창하진 않지만 질문에 대해 영어로 설명을 하자, 마음에 들어하는 듯했다.

그리고 구인공고에서 봤던 조건과

다른 설명을 시작했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교사가 청소를 해야 하고, 옷차림도 검사를 한단다.

나이가 있으니, 아줌마처럼 입으면 안 되고 정장으로 깔끔하게 입어야 한다고 했다.

동네 학원에서 영어를 알려주는데 정장이라.

결정적으로 경험이 없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공고보다 급여를 깎으면서

다음 주부터 일을 같이 하자고 했다.


난 웃으면서 No!라고 대답하고 나왔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선 그 발음 이상한 아줌마를 먼저 정리해야 된다고 원장한테 말해주고 싶었다.


영어 학원 강사 공고를 보면 나이 제한이 많다.

제한보다는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그 커트라인에 죄다 걸렸다는 게 문제였다.

원장이 학부모의 니즈를 위해 어린 강사를 찾는 건 시장 논리에 아주 부합되는 일이다.


강사 하는 지인들을 만나고,

다른 곳 면접을 보고 느낀 건

학원은 대학을 졸업한 20대한테 적합하다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이 학습지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만큼 돈을 버는

구조이기는 했지만,

부당한 교사 대우에 조금 망설였었다.


통장 잔고의 금액 앞자리가 바뀌기도 했지만,

일을 안 하고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불안해졌다.


그래서 몇 군데 알아보다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곳이 있어 이력서를 넣었다.


영어 강사 구직에 해외영업 이력은 매력적인 듯했다.

이력서 내고 3시간 뒤에 연락이 와서 면접일이 정해졌다.


면접을 보러 갔는데,

몇 명을 채용할지 모르지만 20명의 사람이

한 강의실에 앉아서 화상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태블릿으로 보고 있었다.


낯선 풍경이었다.

모두 제각기 정장을 입고 와서 하얀 태블릿 PC를 잡고 심각한 표정으로 헤드셋을 낀 강사가 똑같이 헤드셋을 낀 아이한테 영어를 알려주는 모습을

말없이 보고 있었다.


20분 정도 그 화면을 보자,

교육 매니저가 나타나서 5명씩 면접을 본다고 했다.

난 두 번째로 면접을 보러 들어갔다.


남자 팀장과 여자 매니저가 앉아서 면접을 보는데,

티칭 경험이 없는 나한테 질문은 하나밖에 없었다.


"2016년에 어린이 영어 지도사 자격증 따고 왜 아이들 가르치지 않으셨죠?"


내 대답은 돈이 너무 적어서였다.

당시 회사 다닐 때 받던 내 월급의 3분에 1을 준다는 유치원에서 일을 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하려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오래 꾸준히 할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돈도 중요하지만, 내가 잘할 수 있을 생각했을 때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있었다고 대답했다.

재택근무이기도 하고,

오후 시간 근무라 매력 있다고 했다.


그 이후로 다른 사람들한테 쏟아지는 질문 속에서 난 면접관들의 관심 밖 대상이었다.

정말 그 뒤로 질문하나 받지 못했고,

마지막에는 영어 동화책의 일부 지문이 적힌 종이 한 장을 주고는 아이들한테 읽어주듯 읽으라고 했다


내가 가장 먼저 읽었다. 옆 사람이 읽고.

그렇게 면접이 끝났다.


인사과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면접관의 태도를 보고

난 떨어졌구나 싶었다.


집에 돌아오고 다음 날 합격 문자를 받고

교육을 받은 후

아이들을 집에서 가르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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