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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May 26. 2022

나만 늙었더라.

어쩌다 마주친 그대로 현실을 만났다네.

근 몇 년을 연애하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사람도 없었고,

호감을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했고,

그에 비슷할 시기에 사람들한테 뒤통수를 세게

맞아 사람이 싫어 그렇게 집으로 스며들었다.


23살 이후로 매년 해외에 나갔었다.

사주에도 역마살을 가장 먼저 언급할 정도로

원 없이 돌아다니다,

나이를 먹으며 한 곳에서 2-3개월

살다 옮기는 삶을 살며 한량처럼 살았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로 쭉 한국에 잘 살고 있다.


은퇴했다가 코로나로 우울증이 심한 환자들이 많아, 정부에서 다시 일을 해 달라는 요청에

복귀했다고 좋아하는 심리학자인 호주 학생은

내 일상이 은퇴한 자신의 친구와 같다고.


그러고 보면 내 삶이 그랬다.

최소한으로 학생을 가르쳤고

나머지 시간을 그냥 보냈다.


심심하지 않냐.

은둔형 외톨이 되는 게 아니냐.


그러기엔 시장, 도서관에 일주일에 2번은 갔고,

저녁에 날씨가 좋을 때는 산책도 했다.

외톨이라고 하기엔 전화로 연락을 꾸준히 했기에,

집에 뿌리 낸 일상이 생각보다 바빴다.


소개팅은 당연 안 했고,

집에만 있으니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도 없었다.

지인들이 밥 먹는 자리에 불러도 나가지 않았다.


이전에 지인과 그의 회사 동료들하고

술 마시는 자리에서, 지인 동료들한테

그렇게 나태하게 살면 나중에 후회한다.

지금 '시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꽤 정중한 조언에 

'이런 시간을 즐기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는 대답으로 대화를 끝낸 적이 있었다.



어제였다.

요즘 자주 만나는 언니하고 식당에 갔다가,

처음으로 눈에 확~ 들어오는 남자를 봤다.

식당에 들어갔는데, 영업시간이 끝났다고

안내하는 남자 얼굴을 보고,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직원이니 친절은 기본 옵션이겠지만

말투 하고 표정이 너무 좋았다.


밖에서 주차하던 언니한테 영업시간 끝났다고

주차하지 말라는 전화를 할 때,

언니 남편이 좋아한다고 포장이 되면 싸오라고.


포장되나요?라는 질문에

원래는 안되는데.. 해드리겠다고 웃으며

주방으로 뛰어가서 이야기하는

뒷모습에 조금 멍했다.


그리고 창 밖에서 차를 뺀 채 기다리는 언니하고

창문에 겹쳐 보이는 내 얼빠진 얼굴에

당황스러웠다.


남자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하러 왔고,

난 계산 먼저 해달라고 했다.

계산을 하면서 힐끗거리며 조금 자세히 봤다.


카드를 받고,

식당에 서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식당을 구경하는 척하며

남자의 동선을 봤다.


포장된 음식을 받고 인사하고 나왔다.

언니 차에 올라타면서 남자한테 두 손으로

정중하게 받았던 포장된 음식이 쏟아지지

않게 대충 뒷좌석에 올려두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뭔가가 치밀러 올랐다.


"아씨!!! 눈에 확 들어왔는데.. 너무 어려"


너무 어렸다.

나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 사람이

순간 확! 들어와서 영화 속 짝사랑 상대를

몰래 달 뜬 표정으로 쳐다보는 연기자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무례하고 싶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시선이 자꾸 갔다.

이러면 안 돼..

라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눈은 바쁘게 움직였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왜 숨길 거냐고 말하며,


몇 년 동안 연애는 인연과 타이밍이라 말하던

내 입에서 '눈에 확 들어왔다'라는

표현이 반가웠는지 나보다 언니가 더 신나 했다.


그 식당은 오픈한 지 얼마 안돼서 출입문에

구인한다는 글이 있다며 일하면서

정드는 건 어떠냐 제안을 했다.


지하철로 왕복 4시간에,

식당일이라고는 태국, 일본 친구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바쁠 때 설거지나

주인장 친구라서 경험이 없지만 일손을 거드는

좋은 친구로서 어설프게 서빙해 본 경험이 다 였다.


그리고 나이가 훨씬 많은 내가

딱 봐도 어린 남자 직원에게 사심을 갖고

일을 시작하는 것도 정말 소름 끼쳤다.


나이 차가 많이 난 상대와 결혼할 때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이 더 능력 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분위기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그 숫자가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경험과 생각이 달라지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시간의 발자취가 남기 때문에

무시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에는 내 이상형, 성향, 관심사와는

상관없이 나이, 얼굴 중심으로

주선된 소개팅 자리에 나갔었다.

나이만 어릴 뿐 얼굴은 그들 취향이 아니었는지

불쾌한 기억뿐이라 20대 후반부터

소개팅을 절대 안 한다.


첫눈에 호감을 가질 얼굴이 아니었다.

만나다 보면,

말하다 보면

괜찮아지는 부류였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호주에 갔을 때,

나이 어린 동양 여자와 결혼한

호주 늙은이들의 환상 때문인지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아저씨들의 추파에 엄청 불쾌해서

대놓고 인상을 썼었다.


친하게 지내던 뉴질랜드에서 왔던 아줌마가

나를 좋게 본 남자가 있다고 한 번 만나보라고.

우연히 본 그 남자는 나보다 25살이 많았다.


딱 봐도 조금 있으면 치매가 올 듯한 외모,

색기가 좔좔 흐르는 표정에

한국 쌍욕이 저절로 나왔지만

나이를 신경 안 쓰는 서양 문화인가

싶어서 돌려 말했다.

나이 차이가 너무 난다고.

그랬더니 너무 괜찮은 사람이라 놓치지 말란다.


나와 동갑이었던 아줌마 딸 역시 싱글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괜찮으면 당신 딸을 만나게 하는 건 어때?"

라고 말하자 경멸의 시선으로 봤다.


그러니까.. 동양에서 온 나는 괜찮고.

지 딸은 안된다.

그때 알았다.

우리만큼은 아니지만 서양도 나이를 본다.

몇 살 차이는 신경 안 쓰지만, 신경을 쓰긴 쓴다.


그다음 날, 호주 아저씨가 다가와서

나이가 전부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아저씨하고 비슷하게 나 역시 연하를 좋아한다.

그게 전부다"

라는 말하자. 납득이 된다며 굿럭을 말하고 사라졌다.


그때부터 난 5살 이상 차이나는 연상을 안 좋아한다.

오빠를 좋아했던 내가 몇 번의 소개팅과

영양제처럼 회춘을 위한 대상으로 여자를 찾는,

돈과 양심을 바꾼 채 자신의 욕망 그대로를 내보이는

정직한 속물들로 이상형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 어제 만난,

내 동공에 지진이 났던

상대를 보고 나 자신한테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나만 나이를 먹었더라.

  마음에 들어 온 상대는

여전히 나이를 먹지 않고

젊음을, 싱그럽다는 클리셰 풀풀 풍기는

표현이 딱 맞는 그런 미소를 가진 채

살고 있더라.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


당분간 우리 모임은 그 식당에서 하자는

언니 말에, 그 남자 입장에서는

내 호감이 굉장히 불쾌할 수 있다고

그르지 맙시다....


그렇게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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