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슬주 Jul 21. 2022

8. 무에타이로 알게 된 태국

낯가림 심한 여자의 태국 생존기

2011년부터 2019년까지 거의 매해 겨울에는 태국에서 무에타이를 한다고 하고,

맛있는 음식 먹으며 푹 쉬었다.


누군가 내 블로그에


"그래서 싸움 잘해요?"


라는 질문에


"전혀요. 못합니다"


라는 답변을 달았다.


30대가 되고 지금까지

누군가와 치고받고 싸운 적이 없다.

무에타이를 본격적으로 30대 초반부터 배웠고,

사회 나와서 말싸움은 가끔 해도

몸으로 주먹질하면서 싸울 일이 없었다.


그리고 겨울에 태국에서 쉬려면

봄, 여름, 가을에는 정말 일만 해야 됐다.

당시 자유를 누린 대가로 난 경력을 말아먹어서

나이가 마흔이 넘고 나서는

내가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기 어렵게 되었지만,

10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내 결정은 같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태국에서 시간이 즐거웠다.


추위를 끔찍하게 싫어했고,

우연하게 오게 된 태국 겨울 날씨가 좋아서 겨울에는 어떻게든 오려고 노력했다.


누군가는 태국을 마사지, 음식, 저렴한 물가 등

다양한 이유를 대며 좋아하지만,

난 사람이었다.

남부인 푸켓은 관광지라서 정(情)이라 부를 것도 없이

내가 걸어 다니는 ATM 기계였던 반면,

북부 사람들은 무해했다.

미소의 나라라는 말이 있듯,

속 뜻이 어떻든 간에 그들의 미소는 환했고,

감정 전이가 심한 나는 더 영향을 받았는지 모른다.


자주 오면서 사람들 역시 내가 무해하다고 느꼈는지,

곁을 내주었다.

그러면서 그들을 알게 되었다.


내가 푸켓에서 매춘하는 여자들로 잠을 설치기도 했고,

가끔은 외국 남자 친구들 옆에 있는 내가 경쟁 상대라도

되는 듯 대놓고 못되게 구는 경우가 있었기에,

나 역시 그들이 너무 싫었다.


그런데 내가 알게 된 태국 친구의 여동생 혹은 누나가

집이 너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유흥 쪽으로

빠질 수밖에 없게 된 이야기를 들었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싫어했던 그들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다는 걸 생각 못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여자아이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 뒤로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태국에서 외국인이라 그럴 수 있지만

남녀차별을 당한 적이 없다.

마초 성향을 가진 트레이너들도 있지만,

그건 세계 어디를 가도 있으니까.

남녀차별이 있구나 느꼈던 건

호주 선수인 브룩이 자신의 페북에

선수가 링에 오를 때,

남자는 로프 위로 오를 수 있지만

여자는 절대 로프 위가 아닌 아래로

기어올라야 한다는 글이었다.


패드를 링 위에서 쳤기 때문에

난 로프 2-3번째 사이로 들어가서

그런 개념이 없었는데,

시합에서는 암묵적인 룰이란다.


일부 여자 선수들이 이건 명백한 남녀차별이라고 제기했고,

의견이 분분했다.

여자 선수가 로프 위로 올라간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만,

트레이너들이 많이 난처해한다고 한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이 옳고 그름을 떠나 언제인지 모르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그들의 전통을 무시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브룩은 부당하다고 해도,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트레이너를 위해

바꾸거나 거부할 의사가 없다고 말한 반면,

 어떤 선수는 그런 태도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전통이 당연시되면서 여지까지 암묵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했다.


나라면?

나 역시 브룩 하고 의견이 같았다.


꾸준히는 아니지만, 태국에 머무는 동안 무에타이를 수련하면서 트레이너들 입에서 시합 소리가 나왔다.

당시 내 나이 30대 중후반.

이 나이에 무슨 시합이냐고 말도 못 꺼내게 했다.


태국에서 무에타이를 시작했던 그 시간부터

시합해보라는 소리는 많이 들었다.

태권도를 짧은 기간이라도 합숙 훈련하면서 받았고,

무에타이도 했던지라 킥이 좋아서 그런가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여러 체육관을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은,

링에서 버틸 힘만 있으면 무조건 시합을 붙이려고 했다.


태국 관광지를 가면 '무에타이' 시합 팸플릿을 보게 된다.

그때 우리나라 국기를 단 선수가 나온다면

확실히 호기심이 생긴다.

티켓값도 1-3만 원 사이라 가격도 있고,

 외국인 눈에 비슷한 태국 선수들끼리

시합하는 것보다는 외국인과 태국 선수의 시합이

확실히 인기가 좋았다.

한국 국기하고 체육관 이름이 쓰여 있는 무에타이 바지를 입고 링에서 뛸 선수를 체육관은 원했고,

그 앞에서 알짱대던 나는 정말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시합을 뛰고 싶어도 주저하게 했던 이유는,

태국은 공공연하게 도박을 많이 한다.


무에타이 링 위에서 선수들이 경기할 때 그 옆에서

목에 핏대를 세우고 떠드는 한 무리의 태국 남자들은

체육관 관계자 아니면 도박꾼이라고 보면 된다.

돈을 걸었으니 무조건 이겨야 한다.

어찌 보면 선수들보다 더 절박하게 자기 선수의 승리를 염원할지도 모른다.

<이 분들은 그냥 구경하는 동네 주민임>


푸켓 시합에 본 그 광경은 정말 충격이었다.

돈을 들고 흔드는 성난 관중들.

그리고 그 옆에서 상대 엘보우에 맞아

두개골 일부가 함몰되었는데도,

자기한테 돈을 건 코치 때문에 기권도 못하고

눈치 보던 10대 후반의 어린 태국 선수 얼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레퍼리 역시 심각하게 봤지만,

관계자로 보이는 태국 남자의 항의에 주저하는 눈치였다.

상대 외국 선수가 다가와서 상태를 보고

글러브 낀 손으로 X를 했고, 링 주변에 앉아 있던

여자가 시합을 멈춰야 한다고 영어로 크게 외치면서

겨우 태국 어린 선수는 링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링에서 가장 가까운 좌석은 VIP석으로, 일반석보다 200-300밧 정도 더 받는다.

VIP석 뒤가 일반석. 그리고 링에서 옆으로 떨어져 태국 남자들로 시끄러운 곳이 도박 돈이 오고 가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VIP석은 많이 맞아 피를 뿌리면서 시합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피를 맞을 수 있어 추천하지 않는다)


안된다고 소리쳤던 여자는 VIP석에 앉아 있다 피를 흘리면서도

링에서 자의로 내려오지 못하는 소년이

안쓰러웠는지 소년을 쫓아가서 손에 돈을 쥐어 주었고,

합장하며 그 돈을 받고 소년은 사라졌다.

그 모습과 발걸음이 너무 서글퍼서 그날 울었다.


스포츠가 아니었다.


지금은 레퍼리 교육도 받고 자격증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듯하다.

(그 시합 이후로 그런 참혹한 시합은 본 적이 없어서 다행이다)

쌈캄팽에서 만난 체육관 대표하고 트레이너가

방콕에서  교육 이수하고 자격증 받았다는

사진 아래 축하한다는 글이 끝이 보이지 않게 남겨졌으니..


시합하면 체육관에서는 얼마의 돈을 받는지 모르겠다.

돈을 받지 않으면 저렇게 열성으로 학생들을

트레이닝시켜서 시합에 내보낼까 싶기도 하지만,

선수들은 파이트머니를 받는다.

치앙마이 시합에 뛰었던 캐나다 선수한테 물어보니

우리나라 돈 10~13만 원.(2018년 기준)


그래서 가끔 무에타이 시합에 가면,

운동선수보다는 집에서 자다가 알바 뛰러 온 사람처럼

정말 준비 안된 몸으로 무에타이 바지만 입고

올라온 태국 선수들이 있다.

근육질 몸에 잘 관리된 허세 쩐 외국 선수 앞에 선,

작은 키에 층층이 쌓인 지방이 걸음걸이마다

거센 바람에 출렁이는 파도처럼 움직이는 몸에,

살짝 겁이 질린 얼굴을 한 선수가 링에 오르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이런 시합은 베팅도 받지 않는다.

누가 봐도 외국선수가 이긴다는 확신에 도박판도

다음을 기다린다.


종이 울리면, 외국선수도 살짝 몸 푸는 식으로 깔짝댄다.

태국 선수도 과감하게 공격하고 익살스럽게 도망가는

동작으로 관중들의 웃음도 유도한다.


두 번째 종이 울리면, 외국 선수가 실력 발휘하려는 듯 공격하고,

몇 대 안 맞아서 태국 선수는 쓰러진다.

정타 맞지 않아서 계속 시합이 가능할 듯한데도,

일어나지 못하는 액션 연기를 보여주면서

레퍼리가 KO라고 외국 선수의 팔을 들어준다.


의기양양한 표정을 한 외국 선수의 친구들과 코치들이 사진 찍고,

그 선수는 그 사진을 들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무에타이 본국에서 태국 선수를 KO승으로

이겼다며 체육관 홍보를 한다.

태국에서 1달도 안된 기간 동안 운동보다는 유흥에

시간을 보내다가 어릴 적에 무에타이 했던

현직 툭툭 기사(알바 선수)를 이긴 후에

본국 가서는 정통을 언급하며 체육관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 태국 선수는 6분도 안 되는 시간에 매 맞는 연기로

10만 원이라는 현지 급여에 비교했을 때

꽤 거금을 벌게 된다.

다른 시합에도 그 사람은 또 나와서 그렇게 맞고 끝낸다.

관광지이고 관광객을 상대로 한 시합이다 보니까,

대부분 그 사실을 모르지만

나같이 오래 있는 사람들만 안다.


무에타이 시합은 전 지역에서 크고 작은 시합이

매일 열린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TV 중계되는 시합은 가문의 영광까지

언급할 정도로 선수들 꿈의 링으로

자부심이 대단했다.

쌈캄팽에 있는 체육관에는 유명한 선수가 몇 명 있어서,

본의 아니게 응원하기 위해 시합을 보러 가야만 했다.


친구가 시합에서 이기면 좋지만,

지면 그날은 거기 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침통해질 수밖에 없다.

잦은 부상으로 캐나다, 덴마크 여자 친구들은

한 주 간격으로 둘 다 코뼈가 부러져서

방콕에 있는 병원에 입원해서 같이 지내며

인스타에 열심히 소식을 올리기도 했다.

둘 다 20살로 어려서 그런지, 밝았다.


져서 속상한 내 마음과 다르게, 그들은 툴툴 털어내고

방콕에서 병원 놀이를 진심 즐기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시합을 뛰었던 선수들은 중독이 된 듯

계속 시합을 하고 싶어 했다.

링에 올랐을 때 그 떨림과 순간을 즐겼고,

시합이 끝난 그날은 뇌는 진정이 되지 않은지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듯했다.


난 시합 준비를 잠깐 했지만,

어깨를 심하게 다쳐서 바로 그만뒀다.

무슨 일이든, 내 몸 상하면서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래서 어떤 분야를 특출 나게 잘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아주 건강하다. 그럼 됐다.


나는 무에타이를 하면서 살이 많이 빠졌고

결과적으로 꽤 예쁜 몸을 갖게 됐다.

지금은 다시 한국 중년 아줌마의 몸매이긴 하지만,

얼마 전에 조카가 특전사로 있어서 군인 아파트 내에 있는

마트에 물건 사러 언니랑 갔는데

카고 팬츠에 검은 티셔츠 입은 나를 군인으로 봐서 신기했다.

언니는 넓은 어깨 때문이라나.

무에타이를 하면서 다친 어깨가 비가 오면 지금도 살짝 쑤시지만,

예쁜 몸과 건강을 챙겼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외국 친구들도 많이 만나면서

영어도 늘고 사람 공부도 많이 했다.


작가의 이전글 7. 무에타이 In 치앙마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