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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Mar 24. 2023

위내시경 검사 in 동네 의원

동네 단상 2

1일 1 버드와이저 마시면서 부수적으로 생긴 병을

팔았던 이야기를 적었다.

식중독으로 고생했던 태국과 말레이시아에서

기억은 깡그리 잊은 채 정말 잘 먹고 잘 마셨다.

그러다 또! 탈이 났다.

그래서 5년 동안 하지 않았던 내시경 검사를

하기로 충동적으로 결정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순서 기다리며

난 짝수해에 태어나서 작년이

건강검진 해당 년도였다.

건강보험공단에 전화하니 ARS로 연결돼서

올해 받을 수 있게 재등록했다.

병원에 가서 자꾸 토하고 속이 쓰려서

자다가 새벽에 깬다고 했다.

검색했을 때는 전형적인 위산과다 증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호전된다는 글을 봐서

1주를 버티다 왔다고 했다.

위내시경 검사를 하고 싶다고 하니 수면으로 할지 

비수면으로 할지 물어봤다.


5년 전에 비수면으로 잘 받았다.

참을 만했고 바로 집에 가서 좋았다.

10년 전에 수면 내시경을 받았을 때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수면 내시경이 끝나고 회복실에 있다가

눈을 떴는데 정말 눈앞에 남자. 그것도 아저씨

얼굴이 떡! 하니 보이는 게 아닌가. 헉...

너무 놀라기도 했고, 마취제 영향인지 어지러워서

이게 꿈인지 헛것인지 살짝 헷갈릴 때

눈 뜬 아저씨가 내 얼굴을 보고 소리 질렀다.

나도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간호사 두 명이 들어왔다.

소리를 질러도 내가 질렀어야 했는데.

아저씨 다음으로 비명을 질러서 억울했다.

아니 왜! 나를 보고 놀라는데. 분했다.ㅋㅋㅋ


여자 회복실에 사람이 많아서 남자 회복실에

늦게 끝난 나를 잠깐 둔다는 게

환자가 많아서 깜빡했단다.

미안하다고 고개를 꾸벅대는 간호사한테

화낼 수도 없었지만

우선 이 아저씨가 너무 기분이 나빴다.

사실 놀랄 수도 있는데.

당시에는 왜 그렇게 까칠했는지


그 이후 내시경은 비수면으로 했다.

통증은 있었지만 의사 쌤의 설명을

바로 들을 수 있었고,

간호사 언니가 손을 지긋이 잡아주는 게 좋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비수면으로 한다고 했는데.

목에 들어가는 호스가 굵어졌는지

나이가 들어 내 목구멍이 쪼그라들었는지

통증이 어마어마했다.

이렇게 힘들었다고?


아이 많이 낳은 언니가

출산할 때마다 죽을 것 같은데도

또 낳는 자신이 멍청하다고

자책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렇게 아팠는데 시간이 약이었나?

아니면 망각이 축복이라고.

고통이 간호사 언니의 따뜻한 손에 희석이

되었는지 왜 힘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이번 내시경은 진심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벌떡 일어나서 목에 들어간 호스를 내 손으로

꺼내 들고 여전사처럼 의사 안면을

후려 갈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때

나보다 2-3살 많아 보이는

간호사 언니가 손을 꼭 잡아줬다.

(이건 아마도 호스를 손으로 치는 환자가

많아서 그런 듯)


애정결핍도 아닌데 요즘 손만 잡아주면 좋단다.ㅋ

안는 건 노노. 싫음.

손에서 느껴지는 체온이 그렇게 좋다.

침을 삼키지 말라는 소리에 옆으로 흘려보냈다.

잠시 후 십이지장에서부터 올라오는

트림 소리가 고요한 검사실의 적막을 깰 때


-거의 다 끝났습니다. 이제 식도만 보면 됩니다.


그렇게 검사가 끝났다.


영혼이 다 빠져나간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에 의사가 불러서 진료실에 들어가서

사진을 보여주는데

위 내부가 창백했다.


너무 힘들어서 얘도 주인 따라 하얗게 질렸나?

아니면 의사 쌤이 내 트림 소리에 놀라서

사진 찍을 때 초점이 나갔나?

싶었는데 위축성위염이 있다고 했다.

40년 이상 썼으니 조금씩 문제가 생기는데

내 나이치고는 심한 편이 아니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데 혹시라도

많이 불편하면 병원에 오라고 했다.


사진 상으로는 암이 의심되지 않지만

어느 부위를 보여주면 염증이 있어서

조직검사를 했다고 했다.


의사 쌤은 내 또래로 보였다.

친절했고 우선 이야기를 정말 잘 들어줬다.

다음에도 아프면 여기로 와야겠다 싶을 정도로

자상해서 속은 쓰렸지만 마음은 편했다.


이 날 소변, 피검사하고 키, 몸무게등

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하는 검사는 다했다.

대장은 사는데 1도 불편한 게 없다고 하니까

굳이 내시경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그것만 패스했다.


그렇게 검사받고 1주일이 지났다.


오늘 병원에 가서 검사결과지를 받았다.

조직검사를 하기도 했고,

3만 원 더 내고 다양한 혈액검사도 했던지라

혹시라도 지속적으로 병원을 다닐 증상이 있으면

어쩌지 긴장됐다.

이제 일 시작하기도 했지만,

이번에 일을 하면서 돈을 떠나 오래 쉬었더니

사회 부적응자 플러스(+) 바보가 된 느낌에

소소한 일이라도 끊임없이 하자고 결심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더 신경이 쓰였다.


의사 쌤은 검사지에 정말 자세히 적어주셨다.

알부민, 프로테인 등 검사항목 옆에 검사 결과 수치하고

옆에 참고치를 보고 내가 괜찮은지

추가 검사를 해야 하는지 하나씩 대조해 봐야 했는데

미리 적어주셔서 이해하게 쉬웠다.

그리고 설명을 해주시는데 이해가 잘 됐다.

내 건강상태는 양호했다.

가장 좋았던 건 심혈관 나이가 39세로

 내 실제 나이보다 어렸다. 오~예!!

다만 나쁜 콜레스테롤이 조금 높아서

식단을 조절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동안 대신 어린 혈관. 오예~

B형 간염 주사를 맞은 적이 없는데 항체가 있었고

C형 간염, 빈혈, 당뇨 없고,

혈압도 좋았다.


검사지를 받고 오면서 우선은 기분이 좋았다.

건강하다니까.

콜레스테롤을 잡기 위해서 녹즙을

꾸준히 마시자 싶어 집에 도착해서 구석에

박아뒀던 녹즙기도 꺼냈다.



경력 관리가 너무 안돼서 요즘 적은 돈을

받고 일해야 하는 직종에만 일하는

현실이 슬프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이지만 가족들이 내가

20대에 일했던 MD 나 해외영업 쪽에 꾸준히

있었으면 연봉이 진짜 높지 않았겠냐고.

그게 아쉽다는 말을 하곤 한다.

나라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런데 당시 일할 때 매일 야근에

사내정치에 휘말려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사장 딸이 저지른 사고에

내가 경위서를 쓰기도 하고,

임원들한테 불려 가서 혼났다.

당시에 얼마나 억울했는지.

경위서에서 내 잘못이 무엇인지 적는 부분에

"아빠가 사장이 아닌 죄"라고 적었다가

다시 불려 가서 혼났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스트레스

받으면 먹는 대로 토한다.

마지막 회사도 1달을 토하다

죽을 거 같아서 그만뒀다.


라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지내는

지금이 아마도 일 안 하고 스트레스

안 받는 상황을 만들기 위한

내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엄마가 아프셔서 대학을 휴학하고

지냈던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많은 환자들이 하는 말은

교과서 위주로 공부해서

서울대 간 애들처럼 비슷했다.


-조금 더 나한테 잘해 줄 걸.

-조금 더 쉴걸

-조금 더 애들하고 시간 보낼걸.


그랬다.

다들 정말 열심히 사셨고 돈도 많았지만 아팠다.

시한부 판정받은 분도 계셨고

계속 재발돼서 재입원하는 분들도 계셨고,

상복 입은 보호자를 통해 죽음을 듣기도 했다.

20대 초에 그런 분들이 많이 만나서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경력을 이렇게 말아먹을 줄은 몰랐다.ㅋ

과거는 과거고,

건강해서 기분 좋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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