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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Mar 17. 2023

먹고 살기 힘들다

밥벌이 단상 2

근무 한지 1주일이 지난 지금,

나한테 배정된 모든 학생들을 만났다.

다행히 좋은 분들이 많았다.

이전에 일했던 회사는 학부모들이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는 문제가 많아선지

개인 핸드폰 번호를 오픈하지 못하게 했다.

모든 통화가 녹음이 되는 회사 어플로만

연락하게 했다.

그래서 가끔 내 개인 번호를 물어보는

학부모한테 회사 규정을 언급하면서

내 번호를 지킬 수 있었다.

이렇게 정리정돈하고 싶다

반면, 이번 입사한 회사는 핸드폰 문자로

회원들한테 인사를 하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카톡 프사나

상태메시지에  자신의 심경을 드러내는

사진과 글을 올리기 때문에,

상대별 다른 카톡 프사가 뜨는 방법을

검색해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상대한테

내 카톡이 뜨지 않는지도 알려주셨다.


난 5년 이상 한 사진만 쓰고 있다.

상태 메시지도 한 단어로 적어서

학생들이 본다고 해도 별로 걸릴 게 없었다.


한 주가 끝난 그날은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나다니.

 So lucky를 외쳤다.

그러다 학생 한 명한테

장문의 메시지를 받았다.


우선 내가 하는 학습지는 많이 쉽다.

그래서 신규 회원 경우에는 교재를 받고

너무 쉬워서 당황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맛이 독특했던 카페라떼

이전 회사는 공부하는 단계 이외에는

볼 수가 없었는데 지금 회사는 교사가

전체 과정을 다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학생한테 상위 단계를 하나씩

보여주면서 이걸로 할까요?

물어봐서 상의 후에 교재를 바꿔줬다.

첫 달인데 Advanced level(상위 레벨) 중

2-3달만 더 하면 영어 과정이

완전히 끝나는 그런 레벨의 학생을

나한테 배정했다.

미리 공부하라고 택배로 받은 교재는

생각보다 많았다.

연구용 교재를 받아서 공부했는데

초급, 중급은 훑어보면서

가르칠 포인트만 표시했다.


문제는 상위 단계 교재였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공부가 필요했다.

쭉 읽는다면 뜻이야 알겠지만 소리 내서

해석하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았다.

뭐라고 둘러 말해도

결국에는 내 실력 부족이었다.

변명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요즘 열공 중이다.


문장을 읽을 때 구성 생각 안 했다.

읽다가 모르는 단어는 검색해서

의미 파악에 중점을 뒀는데

지금은 문장 구성 속 문법 포인트를

잡아서 설명하고 학생들한테

해당 문법을 이용해 문장을

만들어 보라고 해야 한다.


상위 단계 학생 수업도 본문을 읽고,

해석, 그리고 빈칸 채우기를 예습 후에 만났다.

학생은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등록했다고 했다.

우선 이 학생 예의 바르고 착했다.


다른 학생들처럼 예습한 대로 하려고 했는데,

해석은 예습해서 이미 된다며

궁금한 내용을 물어봤다.

문장 구성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일부는 내가 알고 일부는 몰랐다.


-왜 문장이 이러죠? 좀 이상해요.

-분사 구문이라 그래요.


그리고  다른 질문을 했는데,

모르는 부분은 모른다고 했다.

학습지 특성상 초급자들이 많이 공부하다 보니

내가 advanced level은 잘 모른다고

나 역시 공부해서 오겠다고 했다.

솔직하게 이야기했고 훈훈하게 끝났다.


며칠 후 받은 장문에 메시지에는

학생이 짧은 시간 동안 받고 싶은 수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적었다.

그 글을 읽고 또 읽었지만 눈만 껌뻑거렸다.

한 달에 적은 돈으로 공부하는 학습지를 풀고,

학습 진도를 체크하고 궁금한 내용 묻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내가 오래전 회사 다니면서 받았던

한 시간에 7만 원 했던 과외에서나

요구했던 내용을 적었다.

장문의 메시지는 요구사항이

확실했지만 정중했다.


그래서 고민 후에 본사담당한테

이번 달에 입사한 사람으로

가르치기 힘들다고 했다.

짧은 시간에 교재를 공부하고

다른 단계인 여러 학생들을

만나면서 수업하고 있지만

어드밴스 레벨의 학생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에 난 능력이 안된다고 했다.

경험이 많은 교사한테 이관을 부탁했다.

신호가  길다

본사담당은 내일 출근해서

내가 수업했던 영상을 보고,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리고 연락이 왔는데

학생이 질문을 하고 내가 대답하는 수업이라

교사인 내가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며

기선제압을 하고,

해석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라고 했다.


학생이 원하는 게 많긴 했지만,

학생이 원하는 수업을 해주는 게 맞다 생각하는데 기선제압이라.

그리고 해석은 이미 혼자 가능한데

뭘 다시 해석하라는 건지.

서로 상생하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다며

학생이 원하는 수업 중에 일부는 우리 수업에

부합하지 않다며 거절하라고 했다.


내가 충분히 가르칠 능력이 되었다면

딱 잘라 거절할 건 하고 아닌 건 들어줬겠지만

문장이 왜 이렇게 만들어졌냐며

하나하나 열의를 갖고 묻는 학생한테

대답할 능력이 안 됐다.


이 회사에 수십 명의 교사가 있는데,

무례한 학생이 아니라 학습에 열의가 있는 학생을

이제 들어오고 능력이 부족한 내가

굳이 해야 되나 싶었다.

그래서 다시 장문의 글로

담당의 말을 반박했다.

수업을 해보니 내가 역량 부족이라

이 학생 한 명만 교사변경을 부탁했다.


돌아오는 답을 보고

벽을 보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무슨 말을 공손하게

자세히 이야기하건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미 시작된 학생교사변경이

  규정상 안됩니다"


그래서 알았다고.

내가 회원하고 이야기하겠다고 하니

담당은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바로 학생한테

이런 모든 이야기를 적었다.

이번 달 2일에 입사한 교사로

많은 단계를 공부하면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데

신입인 나한테 어드밴스 레벨 학생을

배정해서 놀랬다.

예습하고 수업에 임했는데도 부족해서

경험 많은 선배 교사로 부탁했는데

알아서 하라고 답이 왔다.

학생이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교사 변경을 해 달라고.

이런 부탁해서 미안하다고.


본사 담당한테 그랬다.

개인 과외였다면 내 능력이 이러니

돈을 전액 환불했을 텐데 회사니까 말하는 거라고.


내가 말하기 어려워서 부탁했던 게 아니었다.

회사 소속이라, 내가 멋대로 말하는 게

맞지 않아 말했던였는데

알아서 하라니.

그래서 알아서 했다.


괘씸죄에 걸려 학생을 안 줄지 아니면

이제 입사한 교사가 말 듣지 않으니

나가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모든 대화를 개인 문자가 아닌

회사 어플을 이용해서 보냈다.

본사 담당은 볼 수 있다고 들었는데

자세히 모르겠다.


이전 회사에서는

가끔 학부모들이 교사를 고소했다.

아이한테 짜증 냈다고.

숙제 안 해왔냐고 닦달해서 아이가

스트레스 받아 밤에 오줌 쌌다며

명백한 아동학대라고.

짧은 시간, 태블릿에서 만나는

교사의 닦달에 아이가 갑자기

이불에 오줌을 쌀 지 모르겠지만

그런 걸로 소송이 걸렸다.

그래서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모든 대화를

회사 담당자들이 볼 수 있었다.

적막해서 좋았다

돈이 필요해서 일을 시작했다.

대단한 사명감 따위는 없다.

그럼에도 내가 학생이라면?

이라는 생각을 갖고 수업한다.

여러 명의 학생들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아직은 버벅대고 공부할 게 많지만

이런 말에 힘이 나곤 한다.

'덕분에 이해했습니다. 잘 가르치시네요"라는 말을

듣기 위해 게으른 일상에

"공부""공부"가 머리에 박혀 있다.

스터디카페도 끊어서 일정 시간 머물면서

공부하고 있는데 너무 늦었나?

싶기도 하지만 별 생각이 없다.


코 앞에 닥친 수업이나 잘해나가고 싶다는 생각.


누군가 그랬다.


"우리는 돈을 벌면서 배워"


내가 그렇다. 이번 회사에서 적응 못하더라도

절대 일은 손에 놓지 말자 다짐하는 요즘이다.



이 글을 쓰고 며칠이 지났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내가 느낀 큰 감정은

오래 못 다니겠구나였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폐쇄된 조직이었다.


학생은 잘 알겠다며 고객센터에 연락을 하겠는데,

오늘 바쁘니 일정을 미뤄 달라고 했다.

그래서 금요일 밤 9시로 연기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학생 하고는 끝났다.


그리고 본사 담당한테 연락이 왔다.

"제가 중간에 변경은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에 "전 못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

서로 반복되는 말에 나중에 통화하자.

그러며 그날 대화를 끝냈다.


그리고 전화하겠다는

시간이 조금 지나 걸려왔다.

우선 자신의 말만 주~욱하면서

변경이 안되는지 문자로 했던

이야기를 또 설명했다.

새로운 내용은 나한테 실망했다는 말과,

금요일은 시간 가능한 교사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금요일은 내가 임의로

정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했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도 열심히 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입사한 지 얼마 안 되고  

계속 다닐 생각에 참을성 있게

다리 떨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들으면서 숨이 막혔다.


학생도 고객센터를 통해

교사 변경을 요청했는데

뭘 또 잘 마무리하라는 말을 하는지.

다음 달에 변경해 준다고 해서

벌써 인사말 다 했고 바닥 다 드러냈는데

또 수업을 하냐고 싫다고 했다.

나 역시 강경했다.


그제야 교사 변경을 해주겠다며

나한테 학생 시간이 원하는 시간을 알아오는데

수, 목요일 오전 10-14 시 사이로 알아보라고 한다.

그래서 전화를 끊고

회원한테 어플 내 메시지로 물어봤다.


그러자 내 메시지를 보는지 바로 문자가 왔다.

"10시에서 15시로 말하세요"라고


학생이 고객센터에 전화했으니

자신이 전화해서 상의 후에 바꿔도 될 일을

왜 굳이 나한테 또 시키는지 모를 일이었다.


본사 담당이 학생과 주고받는

 메시지 내용을 읽고 있는 듯해서,


"학생이 고객센터에 전화까지 했는데

왜 나한테 이렇게 시간대를

묻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학생 귀찮게 말고

그만둬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일처리 방식이네요"라고 적었다.  


그리고 시간대를 알려줘서

본사 담당한테 보내면서.

이 말을 그대로 적었다.

회원하고 메시지를 이미 봐서 알겠지만

혹시나 못 봤을 거 같아 다시 보냈다.

다음에도 이런 일 있으면 학생 학습 만족도를 떠나

시간만 때워서 학생이 질려 교사 바꾸게 만들거나

아니면 그만둘 거 같으니 이런 일은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고.

그리고 나 역시 이 회사에 많이 실망했다고.


긴 장문의 글에 딱 줄 답변이 왔다.


-교사 변경되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 역시 한 줄 보냈다.


-ㅇㅇㅇ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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