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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Oct 26. 2023

여행 같은 출근길.

세 도시를 건너는 여정

동생 매장에서 일하던 직원이

다른 매장 매니저로 갔다.

위축된 소비 심리로 인해 작년 대비

반토막 난 매출에 구인하기 그렇다며

나한테 일주일에 한 번이나

한 달에 2~3일 정도 근무해 달라고 했다.

판매직이라면 질색이었지만,

고객이 정말 없으니 매장 한 구석에

앉아서 책 읽어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 매주 화요일에 매장에 간다.


집이 멀어서 보통은 전날에

동생 집에서 하루 자고 매장에 나온다.

그런데 오늘은 새벽에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오전에 움직여야 했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국철로 또 갈아타야 한다.


KTX를 탄다면 부산도 갈 수 있는

그 시간을 오롯이 길에서 보낸다.

그럼에도 2호선 밖으로 보이는 한강에

시야가 확 트이고,

국철 밖으로 보이는 산에서 계절을 느낀다.

집순이 모드에 사람 많은 곳을 극도로 피하는

 요즘 내 생활에 출근길 2호선은 공포였다.

무슨 일 있어도 출퇴근길 2호선은 피하리라.

그런데 오늘 오전에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사람이 조금 빠진 타임이었고,

지하철 1대를 일부러 보내면서

맨 처음과 맨 끝 칸의 사람 수를 봤다.

(중간은 항상 많다)

8호선 환승 구간 영향으로 맨 앞보다는

끝 칸에 사람이 적었다.

그렇게 다음 지하철 끝에 탔더니

앉아서 올 수 있었다.


국철로 갈아타니 산이 보였다.

사람도 적어 다리를 꼰 채,

매장에서 마시려고 챙겨 온 커피를 마시면서

창밖을 멍~하니 쳐다봤다.

가끔 기차를 보내야 해서

출발이 늦어진다는 방송이 들렸고,

그 옆으로 빠르게 치고 지나가는 기차를 보니

여행 온 느낌까지 들었다.

그렇게 지하철역에 도착해서, 25분 걸어서 도착!




내가 일하는 건물에 직원식당이 있다.

요즘 물가 대비 저렴한 5천 원.

그런데 편의점에서 먹는

김밥, 컵라면 보다 못했다.


주변에 먹을 곳이 너무 없다 보니

여기서 밖에 먹을 수 없다.

메인 반찬이 맛있을 때가 있는데,

직원이 개수를 세서 준다.

맛도 없는데 양까지 조절하니

본의 아니게 맥도널드에 자주 갔다.


그러다 매장 바로 앞에서 행사하던

이 지역 토박이 언니하고 친해졌다.


-점심은 어디서 드세요?


앞 건물 직원식당이요.


 - 회사가 다른데 먹을 수 있어요?


그럼요. 다 돈인데 왜 안 되겠어요...



그래서 앞 건물의 직원식당에 갔다.

6,500원인데 음식이 푸짐하고

훨씬 맛있었다.

( 내 입에는 약간 짜긴 했지만

가성비 좋다고 생각함)


나름 괜찮은 백반

앞 건물 직원에 우리 건물 사람까지 해서

사람이 항상 많다.

11시 30분부터 2시 30분까지 점심시간인데

사람이 빠지는 시간인 2시에 간다.

오늘은 많이 한산했다.

식당 직원들이 내가 앉은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들 주변에는 나를 비롯해서

손님 10명 정도가 있었음에도

진상이라고 해야 되나

이상한 고객들한테 받은 스트레스를

수다로 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직원이 아닌

손님으로 밥을 먹고 있어서

듣기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손님이 트집을 잡기도 했지만,

그렇게 손님이 다 해주면 당신들은요?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일로 흉을 봤다.


사람 없는 시간대를 피해서 갔는데

식당 직원 회식에서 술에 취해서나 할 만한

거침없는 험담에 후다닥 먹고 돌아왔다.


내가 요일에 매장을 오는 이유는 하나다.

동생한테 1주일 중에 어느 요일에

가장 손님이 적냐고 물었을 때,

그날이 요일이라 오게 되었다.


그런데..

손님이 자꾸 들어온다.

사지도 않고.

이것저것 달라고 하고 설명해 달라고 하고

둘러보고 올게요 하고 사라진다.

나가면서 핸드폰으로 제품 검색한다.


오늘은 그런 손님들이 많아서 점점 지쳤다.

힘은 드는데 매출은 바닥인.ㅠㅜ

원래 계획은 매장 구석에 앉아서

독서대에 책을 두고 매장에

손님이 들어오는지 보는 척하면서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독서대 위에 가져온 책도 두지 못했다.

독서대가 안 보이게

가림막까지 조절했단 말여요!!


거기에 행사 매장을 전문으로 하는

토박이 언니가 말을 걸고,

그 옆에 있는 키 큰 언니가 말을 보태고,

그 언니 옆에 있는 풀 메이크업을 한

언니가 이어 말했다


아...... 오늘은 수다의 날이구나.

독서대 접어서 구석에 뒀다.


어릴 적 여사님들을 이제 언니라고 부른다.

이제 언니가 적합해진 나이..

뭔가 많이 싸 온다.

고구마.. 빵.. 떡..

매장에서 먹으면 안 되니

다들 손님 없을 때 입에 넣고 오물오물..


그러다 눈 마주치면 식혜 주신다ㅋ


일터는 일하러 오는 곳이지만

일만 하면 지루하다.

그래서 요즘 낯가리던 언니들하고

조금씩 친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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