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피님과 뽀리의 독립일기 2023.01.23(3년 전 어느 날)
<지금부터 3년 전에 이 글을 쓰고 브런치 서랍에 넣어 두고 잊고 있었다. 지난날을 꺼내봅니다.>
뽀리의 동생이자, 중 1이었던 둘째가 본인 방에 있던 인형을 꺼내와서 건네주었다.
"엄마 분노 인형이에요. 화가 날 때는 언니에게 큰 소리 치지 말고, 인형에게 말해요."
먹먹한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내가 엄마인 것이 한없이 부끄럽고, 자녀를 통해 이렇게 깨우침을 주는구나'라며 아이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3살 터울의 언니인 뽀리와 나의 갈등은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 전운이 감돌게 했다. 목소리가 크고 때론 불같은 성격의 계획적인 엄마와 수학과 과학, 예술을 좋아하고 집에만 있는 아이. 약자인 뽀리는 어릴 때는 무조건 순종하였지만 초6, 중1을 거치면서 눈을 흘기기 시작했고, 중2 후반부터는 말로 대들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생각에 본인의 의사를 표현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매일 다툼이 시작됐다.
갈등의 원인은 천재도 아니고 영재도 아니지만 머리 좋고 과학과 예술 감수성이 뛰어난 아이가 엄마의 기대만큼 공부를 안 해서이다. 직업상 중학교 때 공부를 잘해도 좋은 대학 가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더욱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이의 머리가 비상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중3 때 공부의 당위성에 대해서 주야장천 얘기하고 나니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말이 정답인 것은 알지만 엄마가 말하면 하기 싫어요" 엄마의 힘과 돈이라는 권력을 앞세운 푸시를 이제는 따르고 싶지 않다. 아니 엄마 말은 그냥 싫다고 전했다.
중3 시작, 우리는 이전에도 싸웠지만 이후에는 더 싸웠다. 사춘기의 반항일까? 나의 기대가 문제일까? 그 줄다리기에서 뽀리와 나는 하루하루 서로 꼴 보기 싫을 정도로 냉랭했다. 하지만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법, 둘째 아이의 속이 곪기 시작했다.
고1이 되고 새로운 학교, 낯선 교실, 낯선 아이들 사이에서 큰 아이의 불안, 나름 좋은 학교에 진학하며 나온 성적은 생각보다 낮았다. 대화라는 이름으로 공부 계획 및 시간관리에 대해 얘기했고 엄마의 푸시는 뽀리에게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큰 아이와 나는 1주일간 얘기를 하지 않았다. 아이와 아무리 다투어도 몇 시간이 지나면 얘기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큰 아이는 보란 듯이 나를 제외하고 아빠와 동생과는 웃으며 얘기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며 '아이가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부질없구나, 받아들여야 하는구나!'를 자연스럽게 알게되었고, 모두가 불편한 이 상황을 내가 정리해야 한다는 것을 분위기로 깨달았다.
"뽀리야, 네가 스스로 네 삶을 이끌어 가. 너도 너만의 생각이 있겠지. 엄마가 그동안 네 생각을 인정하지 못하고 믿어주지 못해 미안해"라고 사과했다. 그리고 1주일간의 냉전이 종료가 되었다.
그 순간 둘째 아이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정말 서럽게 본인이 엄마에게 크게 혼난 것처럼, 억울한 일이 있었던 것처럼.
"왜 울어?"
"엄마랑 언니가 싸우면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1주일 동안 너무 걱정하며 숨 졸이고 살았어요" 라며 제대로 말도 못 잇고 울고 있었다. 이 말에 내 마음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뽀리만 아파한 게 아니었구나! 둘째는 언니처럼 표현하지도 못하고 속으로 앓고 곪고 있었구나!
"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내가 아무리 울어도 둘째에 대한 미안함과 엄마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잘못이 너무 컸다. 집에서 큰 소리가 나면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른인 남편도 싫었을 텐데 어린 둘째는 속이 병들어 가고 있었다. '엄마'라는 단어 속에 있는 무수한 의미 중 일부를 잘못된 권력과 힘으로 사용한 참 어리석은 사람이 나였다.
큰 아이에게도 잘못했지만 둘째 아이에게 정말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서럽게 울며 용서를 구했다. 동생이 우는 소리를 듣고 뽀리가 나왔고, 뽀리 역시 동생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둘째는 그렇게 나와 언니를 용서해 줬다.
마음이 진정된 둘째가 전에 내가 준 걱정 인형을 꺼내왔다.
"엄마,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 때 이 인형에게 말하세요. 분노 인형이에요" 그리고 침대 머리맡에 놓고 갔다. 분노 인형은 3개월 이상 내 머리맡에 있었다. 화가 날 때 분노 인형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분노 인형을 볼 때마다 나의 비뚤어진 욕심과 기대가 사랑하는 두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분노 인형을 다시 둘째에게 주는 날...
"엄마 이젠 분노 인형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예전처럼 화 안내잖아"
안심해... 이제 엄마 쓸데없는 화내지 않을 거야.
엄마는 너희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어."
그해 가을부터 뽀리가 안방침대에 다시 왔다. 자기 방에서 문 걸어 놓고 나오지 않던 아이였는데, 이게 몇 년 만인가 싶다. 냉랭했던 아이의 얼굴에 조금씩 미소도 생겨냈다.
욕심과 기대를 버리니 사랑스러웠던 큰 아이가 내 품에 돌아오고 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얻으려고 움켜쥐려 하고 있을까?'
-3년이 지난 지금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자식에게 무엇을 바라기에, 조바심을 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