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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P 뽀리와 ESTJ 엄마의 20년 살기

요피님과 뽀리의 독립일기 2023.01.11

by 요피님

ESTJ 엄마와 INTP 뽀리는 햇수로 20년을 살아왔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나와 뽀리는 사고형 스타일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많이 다르다.


우리 가족이 사랑하는 최애 백과사전 나무위키. 사실 여러 한계성이 존재하지만 둘째 아이는 나무위키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는다. 나무위키에서 ESTJ는 엄격한 관리자, 경영자라고 첫 줄에 적혀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규칙적이고 계획적이고 현실적, 실용적인 사람이다. 직장에서도 첫인상이 부드럽거나 만만하게 보이는 스타일은 전혀 아니다.


뽀리가 중1일 때 초등 4학년 동생과 여자 셋이 1월에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까지 구글 오프라인지도만으로 렌트를 하고 다닌 적이 있다. '인터넷이 안 되었지만 철저한 사전 준비로 어떤 문제도 없이 다녔다'라고 하면 사람들이 용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하지만 준비하는 모든 과정을 즐겼고 딸들에게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INTP 뽀리는 나무위키 말씀하시길 논리적인 사색가라고 한다. 머리로 생각하고 직관적이며 논리적인 아이고, 계획을 세워 꾸준히 실천하고 단순 반복적인 것을 대단히 싫어하는 아이다. 구몬 연산이나 영어 단어 외우기를 끔찍이도 싫어했던 시절도 있었다. 중학교 시절 영어학원을 처음 가서 듣기, 독해는 최상위인데 영어 단어 100개를 안 외워 가서 자주 나머지 공부를 했다. 아이는 몸서리치게 괴로워했다. 결국 1달을 버티다 단어시험을 받아들였고 엄마 기준 평온한 학원생활을 했다. 창의적이고 논리적이라 오래 생각하고 푸는 수학 문제, 예체능 활동에 강점도 많은 아이다. 음미체 수업 시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학교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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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리의 아가 시절 엄마는 세상의 전부였을 거다. 한참 발달기에 엄마는 육아서를 열심히 읽으며 밥을 먹이고 책을 읽어주고 놀아줬다. 유달리 입이 짧은 아이에게 어르고 달래고 윽박지르며 밥을 먹였는데 생각해 보면 초등 4학년 본인 스스로 많이 먹기 전까지 우리는 밥 때문에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다. 아이에게 많이 미안하다. 한글을 어느 정도 읽고 난 후 6세 후반부터 시작된 영어책 읽기는 초등학교 내내 엄마표 영어로 프랜차이즈 학원 순례 시 레벨테스트 최고점을 찍었다. 창의수학에서 테스트를 하면 역시 자신만의 방법으로 답을 해설해서 선생님을 놀라게 했다. 뽀리와 엄마의 자존감은 뿜뿜 올라갔다.


뽀리는 또래보다 걸음이 빠르다. 성격이 급하고 목표지향적인 엄마와 함께 다니며 엄마에게 걷기 속도가 맞춰졌기 때문이다. 4명이 함께 걸으면 여자 셋은 걸음 속도가 맞아 2~3걸음 앞서 가며 남편이 뒤에서 따라오는 모습이 익숙하다. 그렇게 뽀리는 엄마의 학습 지도, 생활습관 형성 등 절대적인 엄마란 존재에 의해서 아이는 사회화를 하고 내면화를 했다.


계획적이고 자신에게도 엄격한 엄마와 똘똘한 초등시기를 보낸 뽀리는 중학교 시절부터 본격적인 아파함이 시작됐다. 아이의 기질적인 면들이 드러나고 강화되며 현실과 이상, 계획과 자율의 양 극단에 위치한 모녀는 본격적으로 갈등했다. 사춘기 아이와 공부량, 학원, 생활패턴, 감정적으로는 피나게 싸웠고 집은 핏빛 전쟁터로 변할 때가 많았다. 그 와중에 아이는 왕따를 당해 마음의 상처가 깊었고 우리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똘똘 뭉치며 지지하고 함께 했다. 이런 상반된 모습이 공존하는 그런 집이었다.


중고등 시절의 뽀리와의 관계를 다각도로 되짚어 보며 우리는 서로 '자신'이 되고자 노력했다. 엄마는 아이가 나 같은 유형이 되기를 바랐고, 뽀리는 엄마가 아닌 자신이 되고자 했다.


뽀리는 자신이 되고자 했으나 친구라는 관계망 안에서 신뢰, 안정, 기쁨을 경험한 적이 거의 없는 극한의 외로운 상태였다. 이 경험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가족이고 동생이었다. 뽀리는 지금도 '엄마 사랑해'라며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수시로 한다. 벗어나려고 하면서 붙어있고자 하는 자석의 N극, S극의 조합처럼 우리는 오랜 시간 사랑하며 아파했고, 아파하며 사랑하고 있다. 그렇게 뽀리와 나는 '스스로'의 '자신'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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