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피님과 뽀리의 독립일기(2023.1.8)
지금 여기는 스타벅스 2층. home sweet home이라는 집에서 1분 거리이다. 하지만 집과 내 마음의 거리는 '서울에서 부산' 아니 '지구 반대편'인 것 같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준비해 이곳저곳 왔다 갔다 오후가 되어 자리 잡은 스타벅스. 하던 일도 모두 끝내고 피곤하지만 집에 들어가기는 정말 싫다. 그래서인지 노트북을 보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요즘에는 하루에도 여러 번씩 '집'만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가출을 하고 싶다' 란 생각이 든다. '엄마'도 가출하고 싶다. 며칠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어 이곳저곳 검색하는데 숙박비가 너무 비싸다. 한발 후퇴해서 '부모님이 계신 대전에 갈까?' 생각이 들었지만 혼자 있는 딸을 걱정하실까 봐 또 부모님과의 어떤 관계 맺기도 피곤하고 그냥 귀찮아서 구상을 접었다.
40 중반이 훌쩍 넘은 지금, 왜 집을 떠나기를 갈망하고, 여기 카페에 있을까?
나를 집에서 밀어내고 있는 그것은 나에게서 나온 첫 생명체 뽀리와의 관계 때문이다. 그 아이와 나의 일기도에 따라 가족은 든든한 울타리와 버팀목의 역할을 할 때와 감옥의 역할을 할 때가 있다.
지금 나에게는 감옥이다. 감정은 일방통행이 존재하지 않기에 지금 뽀리에게도 집은 감옥이 될 것 같다. 아니 '엄마와 관계 맺고 있는 무수한 실타래 중에 몇 개의 줄이 아이를 옳아 매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지금 뽀리는 물리적 공간인 본인의 방에서 밥 먹을 때, 씻을 때, 물 마실 때 빼고는 혼자 머물러 있다. 밥 먹을 때 우리와 유뷰브, 아이돌, 게임,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많이 하지만 본인의 얘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 과연 뽀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세상에 머물고 있을까 궁금하고 답답하다. '아이가 방에 있는 것이 당연한 것 아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19년 정도 우리 가족만의 서사가 있기에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나는 만리장성과 같은 뽀리의 내면의 벽, 결코 건널 수 없고 다가갈 수 없는 지점에 서서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다.
이 순간 지극히 '나'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해서 한 마디하고 싶다. 도대체 왜 가족들은 '나'란 인간의 존재감을 흔들 정도로 괴롭힐까? 나는 그들의 존재감을 뒤집을 만큼, 흔든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들은 돌아가면서 나를 힘들게 하고, 몇 년에 걸쳐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꾸준히 만들어낼까? 반문을 한다. 바닥부터 솟아오르는 원망이 끓어 올라, 내가 어찌해야 할 줄 모르게 만든다. 며칠간 안 보며 숨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다. 물론 며칠 가출을 하더라도 가족을 완전히 끊어내지도 못할 거고, 돌아와도 달라진 것은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어느덧 5시가 되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고, 마음속에서 '오늘 저녁으로 뭐 먹지?'란 습관적 물음과 걱정이 올라왔다. 이런 제길. 미친 거 아냐! 왜 가출을 떠올리던 사람이 오늘 저녁밥을 고민하고 있는 거니! 주섬주섬 노트북을 정리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남편이 일하다 6시에 들어온다고 한다.
저녁 메뉴를 고민하던 찰나에 '일요일 저녁 반찬' 마저 토스하는 남편의 일상적인 행동에 오늘따라 부화가 치밀어 오른다. 결국 침대에 누워 뽀리와 남편에 대한 어이없음과 분노에 휩싸여 핸드폰만 만지작 거린다. 저녁 반찬이 뭐냐는 둘째의 질문에도 대답을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띠링~ 6시에 들어온 남편. 마누라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채고 냉장고에서 주섬주섬 음식을 꺼내 차린다. 난 보란 듯이 컵라면에 물을 붓고 혼자 먹었다.
다시 돌아온 이 감정의 사이클에서 세상이 순간 정지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몇 년 후로 시간을 당겨 지나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란 온전한 개인적 존재 외에 내게 기대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