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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Jul 19. 2023

[한국의 신화] 현실에 오정세 같은 민속학자는 없어

<악귀>를 위한 악귀탐구(3)

*본 글은 드라마 <악귀>에 대한 스포일러가 전혀 없습니다.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은 분도 마음 편히 읽으실 수 있습니다.


드라마 <악귀>의 주인공이 민속학자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촤르르 몇몇 선생님들이 지나갔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저는 민속학자는 아니고, 민속학자의 세계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국문학자입니다. 제가 모든 민속학자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제가 현장에서 만난 민속학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지닌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파워 E라는 점입니다.


왜 파워 E여야만 할까요?

민속학이란 무엇인지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민속은 민간의 생활과 관련된 신앙은 물론이고 놀이나 생활문화, 기술 같은 것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연구할 대상을 조사하고 정리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실험할 재료를 갖추는 것처럼 말이에요! 민속의 연구대상은 일반 사람들의 생활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민속학자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쉽게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하는 친화력도 매우 중요한 자질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낯선 사람을 만나고 말을 거는 것이 어려우면 연구를 이어가기가 어렵습니다. 그건 마치 피를 못 보는 사람이 의사를 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달까요.


며칠 전 민속학자인 선생님과 길을 걷다가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분명 나란히 길을 걷고 있었는데 어느새 동네 주민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게 아니겠어요? 주민의 고향은 물론이고 이 동네에서 산지 몇 년이 되었는지 같은 기본적인 호구조사를 마친 상황이었습니다. 현장조사에 있어 아직 병아리인 저로서는 감탄만 흘러나왔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했지요. 민속학자의 MBTI는 다른 건 몰라도 무조건 E로 시작할 거라고. 그리고 저 선생님은 무조건 ENFP다.


드라마 <악귀>의 예고편을 보면서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라고요. 민속학자의 캐릭터를 어떻게 그려낼까? 예고편 분위기랑 ENFP는 영 안 어울리는데.



드라마를 보니 아주 댄디한 민속학자가 등장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것도 둘이나!


이미지 출처: 드라마 <악귀>


두 사람은 댄디하다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리더군요. 특히 오정세 씨가 연기하는 염해상은 특히 나요! 차분한 분위기는 물론이고 언제 어디서든 재킷을 걸치고 어두운 색 옷을 입고 있지요. 잘 갖춘 옷과 잘 다듬어진 머리로 이곳저곳에 나타나는 염해상(오정세)과 구강모(진선규)의 모습은 교수님의 이미지에 꼭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민속학은 무엇이다? 삶의 현장 곳곳을 찾아가 조사해야 합니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매우 덥고 추운 날은 물론이고 눈, 비, 바람도 많은 한국 날씨를 종횡무진하기에 양복은 조금 불편하지 않을까요?

그래서일까요. 제가 아는 민속학자 선생님들이 사랑하는 옷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등 산 복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바로 '고프코어룩'* 그 자체입니다.

*고프코어: 아웃도어를 일상복으로 입는 패션 스타일


그러니까 민속학자의 실제는 염해상이나 구강모보다는 김은희 작가의 전작인 드라마 <지리산> 속 인물들과 닮아있다는 거죠.


사진 출처: 드라마 <지리산>


아웃도어는 그야말로 야외 활동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저도 30도가 넘는 날씨에도 야외에 하루종일 앉아 있어야 하고, 영하의 추위 속에서 몇 시간을 대기해야 하는 일들이 부지기수로 있던 현장을 다닐 때에는 등산복 브랜드를 제법 기웃거렸습니다. 패딩을 입고도 덜덜 떠는 저는 아웃도어 브랜드의 얇은 외투를 입고 있는 선생님들이 참 부러웠거든요. 가볍지만 외부의 날씨로부터 날 보호해 줄 보호막이 절실했습니다.


거친 환경에 자주 나가야 하니까 민속학자에게 고프코어룩은 아주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선택인 거죠.


물론 모든 민속학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멋쟁이 선생님 몇 분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거든요. 또 모두가 '깨발랄' E인 것도 아닙니다. 말수가 적고 근엄한 분도 계십니다. 그렇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사람을 어려워하지 않고 잘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연구하고 사람 속에 파고들어야 하는 학문이니까요.


민속학자에 대한 환상을 깨고 싶어서 이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옷을 통해 '민속학자'가 무엇인가에 대해 조금이나 말해보고 싶었습니다. 현장을 누비는 민속학자를 설명하기에 양복보다는 아웃도어룩이 적합하다고, 그만큼 사람들의 생활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이곳저곳 뛰어다니는 것이 바로 민속학자라고요. 드라마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아 등산복을 입힐 수는 없었겠지만요.

그럼에도 오정세님 같은 선생님이 있다면 그 현장이 참 즐겁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너무 멋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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