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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Jul 13. 2023

[한국의 신화] 태자귀...그거 진짜야?

<악귀>를 위한 악귀 탐구(2)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저의 전공을 소개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너... 혹시 곡성 봤어?"


묻고 싶은 것이겠지요. 영화 <곡성> 속 황정민의 연기가 정말 무당 같은지, 영화에서의 저주가 진짜인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방영 당시 의사의 리액션 영상을 많이 봤던 터라 그 마음이 무엇인지 대략 알 것도 같습니다. 최근에는 드라마 <악귀>를 보며 제 생각이 났다는 연락을 종종 받습니다. 그리곤 묻습니다.


"태자귀... 그거 진짜야?"




태자귀는 太子鬼로 어린아이 귀신이라는 뜻입니다. 구산영(김태리)에게 붙은 악귀가 어린아이의 귀신이니 그의 정체는 태자귀가 맞습니다. 그렇지만 태자귀는 어린아이 귀신을 총칭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드라마 속 악귀의 사연이 진짜냐라고 묻기 위해서는 다른 용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바로  ‘염매(魘魅)’이지요.


염매를 한 무당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조선후기에 쓰인 『성호사설』이라는 책에 기록이 남아있기에 있었을 것이라 여길 따름입니다.

이 책에 의하면 염매는 이런 방법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남의 집 아이를 도둑질해다가 굶기는데, 아주 가끔 맛있는 것을 죽지 않을 만큼 주어 먹을 것에 대한 욕망을 극대화시킨다. 아이가 바싹 마르면 대나무 통 안에 맛있는 음식을 넣어 두고 아이에게 보여준다. 굶주림에 사로잡힌 아이가 음식을 향해 달려들면 아이를 찔러 죽인다. 아이의 영혼은 음식이 있는 대나무 통 안에 들어가게 되고, 그 통을 막아 혼을 가둔다.


굶주림에 사로잡힌 아이를 죽여 그 영혼을 가둔 것이 바로 염매라는 것이지요. 흥미롭게도 일본에서도 이러한 방식으로 원혼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고양이나 개로 말입니다.


이렇게 원혼을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호사설』 은 무당이 염매를 어떻게 이용했는지도 언급합니다.


원혼이 든 죽통을 들고 부잣집에 간 다음 맛있는 음식으로 아이의 혼을 유인하여 그 집 사람들에게 병을 준다. 사람들이 병을 낫게 해달라고 청하면, 무당은 혼을 달래 부잣집 사람을 낫도록 해주고 부잣집으로부터 돈과 곡식을 얻어낸다.


결국 돈이었던 거죠. 사람들에게 돈을 얻어내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 아이의 원혼을 사용하는 겁니다.


코로나가 처음 확산될 때, 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약을 팔기 위해서 제약회사가 만들어 뿌린 것이라는 낭설이 있었단 걸 알고 계신가요? 약을 팔기 위해 바이러스를 뿌렸다는 이야기처럼, 낫게 해달라고 빌게 하기 위해서 염매로 병을 준 것이지요.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아프게 하고, 아프게 하기 위해 끔찍하게 사람을 죽여 염매를 만든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럴 때면 또다시 역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의 욕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성호사설』에서 염매를 언급하며 "요즘엔 이런 일이 있다고 듣지 못했다"라고 말하고 있어 어쩌면 염매라는 것은 사람들의 상상이 아닐까 설마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싶다가도, 지금도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끔찍하게 이용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을 떠올리며 정말 있었을 수도 있겠다고 체념하고 맙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용당하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드라마에서 보면 악귀가 사람을 죽이고 복수를 하지요. 그런데 기록 속 이야기를 보면 어쩐지 염매는 고분고분합니다. 자신을 납치해 굶긴 다음 죽이기도 한 무당의 말에 따라 병을 주었다 거두었다 합니다. 납득이 잘 가지 않지요. 악귀라면 제멋대로 사람을 죽이고 병들게 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것은 바로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원혼 중에 가장 두려워하던 것은 우리가 매체에서 많이 본 바로 그 존재 '처녀귀신'입니다. 과거에는 결혼은 인생에서 당연히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였기에, 결혼을 하지 못하고 죽은 처녀의 원한은 어마어마하게 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원한이 큰만큼 처녀귀신은 사람을 해칠 수 있어 아주 두려운 존재라 여겼지요.

아이도 인생의 통과의례를 겪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아이의 혼은 '원혼'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유아사망률이 워낙 높아 아이의 혼까지 챙기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서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이의 혼은 어른을 해치기엔 힘이 약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염매처럼 원한이 극심하지 않고서야 아이의 혼이란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힘조차 없었다 여긴 것이지요.

그렇다면 염매는 어디까지나 아이이기에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순 있어도 처녀귀신만큼 위협적인 힘을 갖긴 어렵지 않았을까요. 아이가 죽어 만들어진 '염매'도 어디까지나 아이이기에 무당을 해치지 못하고 그가 맛있는 것을 주기를 기다리며 대나무통 속에 있었던 것이지요. 살아있을 때도 좁은 곳에 갇혀 음식을 주기를 꼼짝없이 기다렸던 것처럼요.


자신을 해치지 못할 약자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것. 그리고 약자는 힘이 없어 끝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것. 벗어날 구석이 없는 힘의 관계를 생각하다 보면 슬프고 아득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드라마 <악귀>의 이야기가 믿어보고 싶은가 봅니다. 괴롭다 고통스럽다 말하며 힘의 역학을 뒤집는 것을.  "염매라는 것은 아마 있었을 거야. 그런데 이용만 당할 뿐이지 드라마 같진 않아."라고 말하기 보다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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