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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Jul 04. 2023

[한국의 신화] 악귀는 신이 아니니까

<악귀>를 위한 악귀 탐구

드라마 <악귀>가 시작되었습니다. 민속학자가 주인공이라니. 제가 공부하는 분야가 드라마로 다뤄진다는 것에 방영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런데 긴장되고 무서운 것을 잘 못 보는 편이라 생각만 해도 (다른 의미로) 가슴이 두근거려 조금씩 끊어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증의 차원에서 시청한다면 과몰입을 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악귀에 대한 자료를 들추어 보았습니다.


<악귀>의 시나리오를 본 친구가 말했습니다.

"네 브런치 글에서 신은 인간이 제대로 기도를 안 하거나 소홀히 하면 벌주는 거라 이야기하지 않았어? 그냥 이유 없이 사람을 괴롭히기도 해?"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상대가 '신'일 경우에 한합니다. 악귀는 신이 아니니까.


놀랍게도 귀신의 세계에도 위계가 있습니다. 저 위에부터 저 아래까지. 재미있는 건 저 아래에 있는 존재들은 그냥 묶어 "잡귀잡신"이라 부른다는 겁니다. 하나하나 부르자면 이름이 있지만 너무 많으니까 묶어서 칭해버리는 것이죠.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악귀는 바로 여기에 속합니다. 잡귀잡신.

(처음부터 악귀인 귀신은 없습니다. 잡귀잡신이 사람에게 해로운 짓을 한다면 그때 그들을 악귀라 부르는 것이지요. 그래서 민속학에서는 이들을 '잡귀'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편의상 이 글에서는 악귀라 칭하겠습니다.)

 

이들은 신이 아니기에 대하는 법이 조금 다릅니다.


지금은 아프면 병원에 갑니다. 증상을 종합하여 진단을 받죠. "감기네요."

감기와 증상이 유사한 코로나는 코를 콕하고 쑤셔 키트에 검사를 했었죠. 그럼 그 두 줄을 보고 진단했죠. "코로나네요"

그런데 지금처럼 의학이 보급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잡귀나 신 혹은 길에 떠돌아다니는 살이나 부정 같은 것 때문에 병이 걸린다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면 무당과 같은 사제자를 찾아가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냈습니다. 병에 따라 약을 다르게 먹듯, 원인이 무엇이냐에 따라 해결 방법이 다릅니다.


살을 맞은 것이라면? 풀어냅니다. 부정 때문이라면 걷어내고요.


신이 노하였을 때는 빕니다.

어느 신 때문인지 알아내고, 그 신에게 음식을 올리며 기도했습니다.

"소홀히 하여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정성을 다 하겠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누군가는 무속은 맺힘과 풀림의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가슴에 맺힌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것에 공감하고 위로해, 마음을 풀어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무속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신이 서운해하면 왜인지 이유를 알아내고, 그것을 해결하려 애씁니다. 정성스럽게 먹을 것을 올리고 흥겨운 음악과 춤으로 즐겁게 해 줍니다.

죽은 사람을 떠나보낼 때에도 그렇습니다. 씻김굿에서 죽은 사람은 살면서 괴로웠던 점을 토로하고, 유가족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득 남기죠. 가슴에 맺힌 것을 훌훌 털어내고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무속에는 세상의 많은 일이 우리 마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속 맺힘을 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굿에서는 충분히 말하게 하고 충분히 듣습니다. 모든 게 나이지기를 바라며.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도 있는 법이지요. 악귀가 그렇습니다.

악귀는 어르고 달래지 않습니다. 다만 정체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뿐이지요.


사람에게 붙은 악귀가 무엇인지 정체를 확인합니다. 그냥 쫓아버리면 그만일 것 같지만 그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원인을 알아야 그에 맞는 해결책을 쓸 수 있기 때문이죠. 누구라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뱀을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뱀을 가져다 보이면 도망가듯 악귀도 그러합니다. 칼, 소금, 소머리, 부적 등등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것도 가지가지입니다. 그러니 악귀를 쫓을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그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드라마 <악귀>에서도 악귀의 정체가 무엇인지 계속 추적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무엇인지 알아야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요.


약한 귀신이라면 칼을 휘두르거나 복숭아 가지로 때린다거나, 간단하게 경을 읽어 쫓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힘이 센 놈이라면 판이 커집니다. 쉽게 말해 굿을 해야 하는 거죠.

지금은 거의 하지 않지만 과거엔 귀신이 붙어 걸린 병을 낫게 하기 위한 '치병굿'을 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대개 굿은 신을 모시고(청신請神)-즐겁게 하여(娛神오신)-보내는(送神송신)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치병굿은 다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악귀는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요.


"나는 원래 싸움하는 것도 싫어하고 욕도 할 줄 모르는데, 이 귀신은 옛날부터 욕을 많이 해야 가지. 욕 안 하면 안 간다 하거든." (광인굿, 2017)


악귀가 붙은 병자에게 욕을 합니다. 칼로 위협합니다. 또 괴로워할 만큼 복숭아가지로 때립니다.

악귀 앞에서는 소통을 통한 화합은 없습니다. 폭력을 통해 쫓아낼 뿐이지요.



악귀에 대한 자료를 이리저리 들추어보다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악귀의 이야기는 왜 들어주지 않는 것일까요. 달래고 위로하여 천도하지 않고, 네가 뭔지 알았으니 썩 나가라며 고함칠까요. 조금 무책임하지만 지금으로선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의 사례를 보다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정신질환자를 소의 안장에 엎드리게 하여 묶어놓고 무녀가 기도하면서 복숭아가지로 병자의 둔부를 때리고 이후에도 여전히 미친 행동을 할 테냐 물어 환자가 이제부터 절대로 하지 않을 테니 용서해 달라하면 치료된 것이다." (『조선의 귀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말은 악귀가 뱉은 말이었을까요? 아니면 폭력을 견디지 못한 사람이 뱉은 말이었을까요? 정말 말이 통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혹 사람들이 '광인'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정신질환이 사람을 억압하기 위해 쓰여왔던 역사를 떠올려본다면 마음 한편이 찜찜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악귀>는 조금 특별합니다. 악귀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들어보기로 한 것 같아서요. 자신이 무엇인지 알아주기를 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바라는 악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걸 통해 '악귀'같은 끔찍한 인간들의 행위를 들추어내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억압되었던 약자이었을지도 모를 악귀를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가 참 흥미진진합니다.


무서움을 많이 타 남들보다 더딘 속도로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요. 다음에도 <악귀>를 보며 함께 이야기해 보면 좋을 점을 가져와보도록 하겠습니다. 혹 드라마를 보면서 궁금한 점이 있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가능하다면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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