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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Jun 07. 2021

우리 엄마 민주 씨

맛있는 음식보다 더 맛있는 시간

"집에 백숙해놨으니 집에서 먹자."


또 집에서 먹자고 하신다.

주말에 친정 근처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다.

오후 6시까지 예정되어 있는 교육이라 마치고 혼자 지내는 엄마와 밥을 먹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미리 연락을 드렸다.


"엄마, 뭐 먹을지 생각해놔~ 요즘 근처에 맛있는 집 많이 생겼더라."

"그래 그건 천천히 생각해보지 뭐"


요즘 그쪽에 재개발이 되어 새로 생긴 아파트가 많다 보니 새로운 가게들이 많이 생겼다. '엄마랑 초밥집은 가본 기억이 없는데, 초밥 먹으러 가자고 할까, 아니면 엄마가 좋아하는 팥칼국수나 샤부샤부 먹을까?' 혼자 생각을 하며 후보지를 선정하고 있던 차였다.


예상 시간보다 교육이 일찍 끝났다.

엄마에게 전화를 드려 어디 갈까 물어보니 대뜸 그러시는 거다.

"집에 백숙해놔서 집에서 먹자. 삼촌이 수탉을 한 마리 보냈는데 어찌나 큰지, 혼자서 다 먹지도 못하고 삶아놨다. 맛은 없을지 몰라도 대충 먹자."


살짝 부아가 났다.

어버이날에도 못 찾아뵈었고, 남편과 아이들 없이 엄마와 밥을 먹는 일이 잘 없다. 모처럼 나는 엄마와 데이트를 할 생각에 약간 들뜬 마음이었는데, 집에서 먹자니.

(그러면서 외식하자고 하면 바로 오케이 하시는 시어머니도 떠올랐다)


엄마가 꼭! 시장에서 사 오라는 수박과 빛깔이 예뻐 보여서 산 수박보다 비싼 체리를 들고 집으로 가는데 팔이 너무 아팠다. 보통은 남편이 무거운 걸 들어주니 수박이 이렇게 무거운지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무거운걸 나보고 사 오라고 하다니, 그것도 싣기 편한 마트에 가지 말고 꼭 시장에서 사 오라고...'

게다가 수박은 시장이라도 우리 지역보다 훨씬 비쌌다. 역시 창원은 창원이다.


그렇게 들고 집에 갔더니 엄마는 진공 쌀통과 씨름하고 계셨다. 진공 쌀통이 진공이 되질 않는다고, 불이 안 들어온다고 바꿔야겠다고 하신다. 지난번에도 그랬는데 이번에 또 그런다면서.


내가 QR코드를 찍어 사용법 동영상을 보면서 작동을 시켜보았다. 엄마는 옆에서 "거 내가 다 해봤다, 안된다니까, 괜히 하지 마라 반품시킬 거다"라고 하고 계시고. 내가 전원을 길게 꾹 누르니 불어 들어오고, 진공버튼도 잘 작동되었다. 조금 후에 진공을 푸는 버튼도 잘 들었다. 진공 쌀통은 정상이었다.


"엄마 이거 작동된다, 안 바꿔도 되겠다."

"그라모 다행이고."


삼촌이 보내주었다는 수탉은 생각보다 부드럽고 맛있었다. 얼마나 큰지 지난번에 엄마가 삶아준 오리보다 더 다리뼈가 긴 것 같았다. 닭 목이 그렇게 긴 것도 오랜만이었다. 닭 반 마리를 먹고 닭죽도 먹었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닭죽은 언제나 맛있다. 탄수화물류를 좋아하는 엄마는 참 맛있게 죽을 끓인다. 어릴 적 내가 '나는 엄마가 하는 음식은 다 입에 잘 맞고 맛있더라'라고 했더니 '그럼 태어날 때부터 쭉 먹은 입맛인데, 안 맞을 리가 있나'라고 투박을 주셨다. 그때는 참말 무안했는데, 커서 생각해보면 엄마가 칭찬에 대처하는 법을 잘 몰라서 그런 거라 싶다.


엄마도 생각보다 닭이 부드럽고 맛있으니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생각보다 부드럽다 그쟈" 연신 말씀하시며 드신다. 오랜만에 엄마와 둘이서만 밥을 먹으니 이야기도 술술 나온다. 엄마는 밥 먹고 바로 하시던 설거지도 미루고 나와 이야기에 빠졌다.


매번 하는 외할아버지의 가정폭력 이야기, 외할머니의 무능함, 그래서 결혼을 안 하려고 하다가 늦게 결혼해서 우리를 낳았다 등등 늘 같은 레퍼토리다. 듣고 있으면 참 어릴 적 사랑받지 못했던 어린아이가 아직도 엄마의 마음속에 있는 것 같다.


계획대로 좋은 식당에서 밥을 먹진 못했지만, 그 이상의 시간을 보내고 온 것 같다. 어느덧 날이 어둑어둑해져서야 집으로 향했다. 조금만 시간을 내면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을 텐데, 40분 거리가 멀다고 잘 안 가게 된다. 엄마는 점점 할머니가 되어가고 있고, 이야기가 고플 텐데 말이다. 전화라도 자주 해야지. 또 한 번 다짐하고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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