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장메이트신화라 Jul 24. 2021

엄마는 어떻게 견뎌냈을까

아프고 보니

일요일 오후부터 소화가 안되고 속이 더부룩했다. 이튿날 새벽 장이 꼬이는 듯 아프더니 화장실에서 물을 세번이나 내려야했다. 어찌어찌 바쁜 월요일을 보내고 퇴근 후 몸살기운도 돌았다. 퇴근길에 들른 병원에서 급성장염이라는 처방을 받았다. 다음날이면 낫겠지, 장염은 보통 하루 반나절만에 나았으니까.


화요일에도 느낌이 쎄했다. 그래도 좀 쉬면 낫겠지 약을 먹고  일했다. 퇴근 후 복통에 잠을 자다가도 여러번 깨야했다. 수요일 퇴근 후 다시 병원에 들러 다시 처방을 받았다. '이번엔 좀 오래가네' 싶었다.


목요일에는 복통이 계속 이어졌다. 간헐적인 복통을 참아가며 일을 했다. 하루 연차를 내고 할만한 일터가 아니기에 그랬다. 금요일,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복통에 염증을 가라앉히는 링거를 맞기로 했다. 링거를 맞는건 굉장히 오랫만이었다.


급성장염으로 링거

링거를 맞고 와도 드라마틱하게 호전되는 느낌은 없었으나 일주일가량 앓았으니 이제 나을때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아직도 간헐적으로 있는 복통은 죽이라도 먹으면 생기는터라 견딜만 한 정도가 되었다.



한참 아프기 시작한 주초반, 저녁으로 먹을 죽을 하루, 이틀에 걸쳐 남편은 사다주었다. 약먹고 계속 누워있을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나가고, 숙제를 봐주고, 빨래를 해주는 등 평소 나와 분담했던 것들을 혼자서 감당하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문득 엄마가 생각났다.

우리 엄마는 자주 아팠다. 아파서 누워있는 모습도 많이 봤다. 아빠는 그렇게 살갑지 못한 사람이다. 밖에서만 호인인 아빠는 엄마가 아플때 어떻게 했는지 내 기억에는 없다.


세 남매를 키우면서 일하는 워킹맘이었던 우리 엄마는 아플 때도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차려놓았다. 맏이인 나보고 동생들이랑 챙겨먹으라고 당부하셨던 게 생각난다.


그렇게 차려놓은 음식을 동생들이랑 먹고 각자 놀다가 잠들고 했다. 우리에게는 아픈 엄마는 그다지 불편한 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느낄만큼 엄마는 다 해놓고 아파야했다.


어느 추석때인가, 엄마가 많이 아팠다. 엄마의 동생인 이모와 삼촌이 명절이라고 왔다. 안방에선 엄마가 누워있었는데, 아무도 엄마가 먹을 미음도 쑤어주지 않았다. 끼니때가 되자 아빠는 엄마에게 '식구들 밥을 어떻게 할건지'를 물어보셨던 것 같다. 엄마가 아픈 와중에 화를 많이 내셨던 기억도 난다.


나도 그리 살갑지 않은 딸이다. 엄마는 평소에 '집안 살림은 시집가면 많이 할거니 평소에는 하지마라'고 하셔서 간단한 청소 이외에는 내게 시키는게 없으셨다. 그래서 나는 당연하게 아무것도 할 줄 아는게 없었다.


엄마가 며칠 계속 아프자, 나는 대형 마트로 갔다. 아플 때 곰국을 끓여먹은 적이 많아서 곰국을 끓일 수 있는 뼈를 사왔다. 그걸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채 엄마에게 내밀었다. 곰국을 끓여서 밥상을 차려줘야 할판에... 그걸 보고 엄마는 '어디서 이런 안좋은 뼈를 사왔냐'며 '다음에는 사오지마라'고 하셨다. 나중에 그걸로 뭔가를 해먹었는지는 모르겠다.



결혼 초반에 엄마는 늘 당부했다.

"아프면 지만 고생인기라. 처음에는 신경써줘도 자꾸 아프다~아프다하면, 신랑도 싫어하는기라. 니 몸은 니가 잘 챙기라."


당신이 많이 아파보셨고, 그 서러움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자주 당부하셨다는걸 안다.


그래도 나는 죽 사다주는 남편과 '엄마 아직 아파?'라고 신경써주는 아이들이 있다. 어린 나는 아픈 엄마에게 '엄마 아직 아파?'라고 말을 한번도 해본 기억이 없다. 엄마가 아프면 죽을까봐 혼자 숨어서 울기만 했지, 옆에서 위로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엄마는 이제 나이가 들어 겪는 병도 많이 가졌다. 지금이야 엄마가 어디 안좋다고 하면 좋은 영양제도 보내드리고, 한약이라도 먹을까? 묻기도 한다.


사고치고 다니는 남편과 무뚝뚝한 세남매들을 건사하기 위해 일하고, 과한 에너지 소비로 몸이 탈이나고, 혼자서 아픔까지도 감당해야했던 우리 엄마.


내가 아프면서 받는 사랑을 느껴보니 그걸 충분히 받지 못했던 엄마가 유난히 생각났다.


아니 내가 아파서 그냥 엄마를 찾은건지.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엄마 민주 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