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기억/ 배복주의 칼럼을 읽고
4월부터 받아보는 종이 신문이 있다.
'요즘 세상에 무슨 종이 신문?'이라는 사람도 있고, '와~ 요즘도 종이 신문 읽어?'라는 사람도 있다.
글을 잘 쓰고 싶어 매일 사설을 읽으면 좀 나아질까 신청했던 신문이었다.
또 직장에 들어오는 보수성향의 신문과 함께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고.
그렇게 내게 생애 최초의 종이신문을 받아보게 됐다.
최근에 김미경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삶의 촉을 키우기 위해 종이신문을 추천했다.
미리 받아보고 있지 않았다면 '한번 받아보고 싶었는데~'라고만 하고 지났을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 나는 촉을 키우고 있었던 걸까.
김미경은 신문을 볼 때 1면을 먼저 보고 그다음 뒤로 넘어가서 오피니언을 본단다.
세상의 이야기를 다른 이의 시선으로 보면서 나와 다른 생각을 비교해보기 좋다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1면을 보고 오피니언으로 바로 넘어갔다. 칼럼과 사설은 그즈음의 이슈가 되는 이야기를 다른 이들의 눈으로 보기 참 좋다.
그렇게 여러 칼럼을 읽는 내게 눈에 띈 칼럼이 있다.
'무거운 기억/ 배복주' 글쓴이는 정의당 여성본부장이다.
99년의 그녀는 은행 콜센터 직원이었다.
장애인 고용직으로 들어간 그녀는 그곳의 ‘비정규직’이었다.
은행에는 그런 ‘비정규직’을 관리하는 ‘정규직’이 있었다.
하는 일은 같았지만 월급은 두세 배가 더 많았단다.
그런 것을 보고 그녀는 동료들과 노조를 만들어야겠다 결심했다.
장애인 동료가 부적절한 평가를 받게 되고, 그걸 항의하면서 사측에 찍힌 그녀는 노조를 만들지도 못하고 2년 만에 그곳을 그만두어야 했다.
콜센터 직원은 몇 시간을 꼼짝도 못 하며 이어지는 콜에 응대를 해야 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며 꼼짝없이 앉아서 일하는 그녀들의 뒤로 누군가가 와서 목덜미, 귓불, 머리, 어깨 등을 수시로 만져댔다. 그녀도 그 같은 일을 당했지만 고객의 응대를 받고 있는 중에 소리를 지를 수가 없었다. 그런 짓을 한 사람을 그곳에 있는 단 한 명의 남자 상급자였다.
상습적으로 그런 성추행을 당했던 10대 동료는 어느 날 일을 그만두었고, 우울증 치료를 받는다고.
글을 읽으면서 ‘위계에 의한 성폭력’에 대한 일이 떠올랐다.
대학 3학년 봄, 한 달 반 동안 우리는 실습을 나가게 됐다. 근처에 있는 큰 병원에서 실습을 하면서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쏟아지는 리포트만 해도 잘 시간이 부족했는데, 그곳에 있는 총각 선생님들은 실습생들과 매일 술을 마시고 싶어 했다.
저녁을 먹으며 반주하고 집으로 오면 다행이었다. 꼭 그들은 노래방을 2차로 가야 했고, 그곳에서 또 술을 먹었다. 우리에게도 먹지도 못하는 술을 먹이고 노래를 부르며 우리와 ‘부르스’를 꼭 춰야 했다. 우리는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어쩔 수 없이 그 시간을 견뎌야 했다.
한 달 반 동안 거의 5킬로가 빠졌다.
우리끼리는 ‘이 바닥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같은 지역에 있는 큰 병원이었고, 어떤 행사를 가던지 그들은 조직의 위원을 맡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서울에서 그 일이 벌어지고 나서도 나의 이야기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칼럼을 읽으면서 갑자기 그때가 생각났고, 그것도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잘 보여야 학점을 잘 받을 수 있었고, 그것만 아니면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그들과 연결이 될 수밖에 없는 좁은 소도시에서 2000년대 초반의 대학 실습생은 그저 그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 더 심하게 당하는 다른 동료학생들을 보면서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니.
칼럼에서 그녀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때 나는 두려웠고 방관했다.’
‘그때 부끄러웠던 방관자에서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방관자일 때도 있었고, 피해자일 때도 있었다.
용기를 낸다는 것은 마음먹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용기’라는 두 글자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 무게를 견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도 이제 부끄러운 방관자, 피해자이기보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 방관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칼럼은 그렇게 또 나의 의식을 성장시켜주고 과거의 나를 치유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