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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Sep 04. 2021

세 모녀가 여행을 떠났다.

엄마와 딸의 여행

이번 휴가는 망했다. 코로나 때문에 길게 여행을 갈 수도 없는 상황인 데다가 남편의 휴가는 내 휴가가 시작할 때 끝난다. 아이들도 어딘가 다녀와야 긴 여름방학이 지루하지 않을 텐데. 


다행히 휴가 전 광복절 대체공휴일이 확정됐다. 주말과 대체공휴일까지 3일이라는 시간이 생겼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짧은 여행을 계획하고 나머지 휴가를 계획했다. 


지난봄. 남편이 하루 쉬는 날이 생겼다. 그때 시어머니와 둘이서 점심 한 끼 하면 좋겠다고 했더니 남해까지 드라이브 겸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고. 날씨가 안 좋아 올라갔던 보리암에서 남해 앞바다가 보이지 않았지만 사진 속의 어머니의 표정은 환했다. 그 얼굴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우리 엄마와 여행을 가야겠다.'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청소노동자인 엄마는 아직 일을 하고 계신다. 내가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했더니 금요일 하루 연차를 내어 1박 2일로 가면 좋겠다고. 잠시 후 다시 연락이 왔다. 

"일산에 사는 여동생도 부르면 좋겠다."


여동생도 금요일 연차를 내고 함께 하기로 했다. 동해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하신 엄마의 의견대로 목적지를 포항으로 잡았다. KTX를 타고 포항역으로 내려온 동생을 차에 싣고 엄마와 셋이서 처음으로 여행이라는 이름의 시간을 가졌다. 



내가 스무 살 무렵 얼굴에 정체불명의 화농성 종기 같은 게 생겼다. 그것 때문에 1시간이 넘는 진주 대학병원까지 자주 다녔었다. 그땐 GPS도 없을 때라 고속도로를 달리며 엄마는 내게 '카메라 있는지 잘 보라'고 하셨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속도 카메라는 네비가 다 알려주고, 엄마와 나의 자리도 바뀌었다. 뭔가 나도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포항 호미곶/ 우리 엄마

'포항, 호미곶'이라는 곳은 엄마가 가보고 싶다는 장소였다. 그곳을 중심으로 구룡포 일대를 도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다음날 날씨가 안 좋을 거라는 예보가 있어서 실외 위주로 다녔다. 최대한 엄마의 보폭을 맞추고 엄마의 의견대로 움직였다.  저녁도 엄마가 먹고 싶다는 대게를 먹었다. 제철은 아니었지만 포항에 갔는데 대게를 먹어줘야지. 술을 마시지 않는 우리 식구들이라 일찍 잠들었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과메기 문화관에 갔다가 비가 많이 쏟아져 그곳에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기로 했다.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그저 평범하고 좋았다. 시어머니와는 종종 명절이 아니라도 카페에 함께 가서 커피를 마신다. 지금은 거리두기 때문에 못하지만 명절에 전 부치고 오후에 커피를 마시러 같이 가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엄마와는 카페에 온 적이 있었나 싶었다. 카페 같은 곳에 가서 돈 쓰고 한가를 즐기는 일을 우리 엄마는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이틀 동안 카페를 두 번 갔다. 엄마와 가는 처음으로 기억된다. 동생도 아마 그럴 것 같다. 멀리 있으니 더 그런 시간이 없었겠지. 


돌아오는 길은 경주를 통해 내려왔다. 포항에선 먹거리나 볼거리가 그다지 많지 않아 경주에서 밥을 먹고 실내 한 곳을 둘러봤다. 엄마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여행 와서 기쁘다, 즐겁다 이런 이야기가 없으셨다.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밥을 사고 나와 동생에게 먹을 경주빵, 찰보리빵을 사주셨다. 내가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엄마를 닮은 것 같다. 


마침 다음 주가 엄마의 생신이다. 그것도 칠순. 

미리 집으로 용돈 케이크와 칠순 플래카드를 주문해두었다. 비록 포장음식이었지만, 우리 집에서 엄마와 여행의 마지막 한 끼를 먹었다. 엄마의 표정은 환했다. 


이번 추석 연휴가 5일이다. 그중 하루는 엄마와 카페에 다시 가보고 싶다. 요즘 근처에 얼마나 예쁘고 맛있는 집이 많은데. 경치 좋은 카페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엄마와의 추억은 계속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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