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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Aug 18. 2021

그때의 귤, 지금의 귤

겨울철 최고의 간식

주말 나들이를 위해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마트에 다녀왔다. 과자 등 주전부리할 것들을 잔뜩 사 온 중에 노오란 귤이 한 박스 있다.


"귤이 요즘에 나오나 보네?"

"응 하우스 귤 이래."


그래, 언젠가부터 '제철과일'이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딸기는 원래 여름이 제철이라던데, 겨울에 나오는 하우스 딸기가 더 맛있다. 그런 것처럼 귤도 여름에 나오는 귤이 더 맛있으려나?





겨울철 간식으로 귤만 한 것이 없었다. 엄마는 시장이나 과일 파는 트럭에서 귤을 한 박스씩 사 오셨다. 한창 먹성이 좋은 삼 남매는 귤 한 박스를 일주일 안에 모두 다 먹어치웠다. 밥도 잘 먹었지만 간식은 그야말로 간식. 어느 것을 먹어도 참 맛있는 게 간식이었다.


한 봉지로 사 오던 귤로는 성에 차지 않는 우리를 보며 엄마는  박스단위로 귤을 사다 주셨다. 귤은 크기가 다양했는데, 우리가 먹는 귤은 중간 크기에서 점점 그 크기가 커져갔다. 얼마나 귤이 컸던지, 나중에 자라서 먹어본 한라봉의 껍질이 그것보다 얇았다면 말이 될까?


언젠가 먹던 귤은 겉껍질도 오렌지마냥 두꺼웠고, 알맹이를 먹으려면 속껍질이 너무 두껍고 질겨 그것도 벗겨 진짜 알갱이만을 먹어야 할 때도 있었다.


번거롭긴 했지만, 그것도 좋다고 깔깔거리며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겨울만 되면 우리 집에 항상 떨어지지 않았던 귤. 친구들은 유난히 손바닥이 노란 내게 '귤을 많이 먹어서'라고도 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맛보게 된 부드러운 귤은 내가 지금껏 먹었던 귤의 세계를 부수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먹었던 귤은 뭐였지? 세상에 이렇게 부드럽고 맛있는 귤이 있었다니!!'

그런 귤을 맛본 날에는 꼭 퇴근길에 비슷하게 생긴 귤을 샀다. 나와 같이 항상 두껍고 질긴 귤을 먹었던 동생들에게도 이런 귤의 세계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귤을 선택하는 기준이 생겼다. 어릴 때 먹던 그 두껍고 질긴 귤 같이 생긴 것은 무조건 탈락! 작고 껍질도 얇은 귤만 고른다. 비록 까서 한 입에 톡 털어 넣을 정도로 작은 크기지만, 어릴 때 먹었던 그 두꺼운 귤에 대한 보상심리라고나 할까?


귤을 먹을 때면 항상 어릴 적 먹던 그 귤이 떠오른다. 아빠 칠순을 맞이해 가족여행을 갔던 제주에서 귤 따는 체험을 했다. 그때도 나는 어릴 적 먹었던 그 귤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동생들도 공감을 해주었지만, 나만큼 한 맺힌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엄마와 이야기를 하다 귤 이야기가 나왔다. 예전에 살던 동네 이웃 엄마 이야기 끝에

"귤도 그렇게 한 박스씩 큰 거 사라고 알려준 사람도 00이 엄마다 아니가. 그 집도 딸이 셋이라 간식비가 얼마나 들었겠노. 그래서 그 엄마가 그런 귤이 싸다고 얘기해줘 가지고 그때부터 그런 귤을 사기 시작했지."


다들 형편이 비슷했던 아파트 단지였다. 아이가 셋인 집도 많았는데, 우리 집만 그렇게 먹고살았던 건 아니었나 보다. 형편에 맞게 먹이고, 아껴가며 키우던 그 시절이 내가 엄마가 되고 아이를 키워보니 이제야 이해가 된다. 그렇게라도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여름 귤은 싱거웠다. 뭔가 새콤달콤함을 기대했는데, 좀 아쉽다. 아이들은 그것도 어찌나 잘 먹는지. 잘 먹는 모습을 보면 또 사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아마 우리 엄마도 아이 셋이 귤 박스에 둘러앉아 귤을 까먹는 그런 모습에 행복함을 느꼈으리라. 조금 질긴 게 무슨 대순가. 껍질을 벗겨 먹으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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