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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Aug 07. 2021

엄마, 그냥 백신 안 맞으면 안 돼?

엄마, 제발 그만 좀...

'하, 엄마 그냥 백신 안 맞으면 안 돼?'

내 마음속에서 이 말을 수십 번 소리쳤다.





지난 토요일, 신문을 보다가 백신 접종 계획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60세~75세의 미접종자는 8월 2일 월요일 오후 8시에 접종 예약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백신 접종을 시작한 초반, 엄마는 기저질환이 있어 혹시나 부작용이 있을까 봐 접종을 미루기로 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다들 맞기 시작하면서 '언니는 언제 맞노?'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단다. 혼자만 안 맞고 있으니 좀 그렇다며 기회가 되면 맞아야겠다고 한번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이 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예약해달라고 하셨다.

근처에 사는 막냇동생에게 예약해달라고 했더니, 예약이 어렵다고 둘째 누나에게 부탁해보라고 했다며 역정을 내신다.

나)"00 이가 한다고 예약이 쉽나 어디, 일단 내가 월요일에 해볼게. 엄마 날짜는 언제가 괜찮지?"

엄마)"금요일날 하면 좋겠는데, 최대한 빨리"

나)"알았어, 정확한 날짜를 나중에 문자로 넣어줘."


친구분을 만나고 있다고 하셔서 통화를 길게 하진 못했다.

나도 까먹지 않게 알람을 설정해두고, 예약해드리면 되겠다 싶었다.


저녁쯤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엄마) "딸, 쉽지 않겠지만 8월은 6일이나 20일, 9월은 3일이 좋겠다."

나)"응 알았어. 월요일 저녁에 예약이니까 그때 가서 해볼게."


아직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엄마는 최대한 금요일에 백신을 맞고 주말에 쉬는 쪽으로 날을 잡고 싶어 하셨다. '금요일 쪽으로 알아봐야겠네.'


다음 날 아침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 "딸, 9월에는 금요일 다 맞을 수 있을 것 같아."

나)"9월 3일까지 접종 마감이라서 그전에 맞아야 해."

엄마)"빠르면 더 좋고"


밤새 생각을 하셨나 보다. 아침 일찍 연락이 온 걸 보니.


월요일 아침, 출근 후 업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딸, 8월 19일 오후 4시가 좋겠지만,

맘대로 안되제?"

나) "19일이면 우리 놀러 가기 전날인데 괜찮겠나?"

엄마) "그래도 해야 안될까, 9월 3일도 하나가 2차라고 날 찜했다네(같이 일하시는 분 한 명이 2차 접종이 잡혀있어서 그날 쉰다고 하셨나 보다) 안 그러면 8월 5일 오후나 6일 오전은 되고."


계속 말을 바꾸는 엄마에게 약간 부아가 났다.

나)"정확하게 언제로 하란 말이고?"

엄마)"8월 5일은 다음날이 휴가라서 오후에 되고, 6일은 오전에 되고."

나)"어제 얘기한 거 상관없이 5,6일로 할까?"

엄마)"어, 그게 안되면 19일 오후나 20일로 해야지."

나) "퇴근 후 몇 시쯤 되지? 접종 가능한 시간?"

엄마) "씻고 다섯 시 반에서 여섯 시까지."

엄마) "아니다 다섯 시에서 여섯 시까지."

나) "그렇게까지 늦게 안 하지 싶은데, 일단 알겠다."


자꾸 말을 바꾸는 엄마 때문에 내 신경도 곤두섰다. 속에서는   '엄마, 차라리 백신 맞지 마, 그냥 나중에 순서 돼서 그냥 맞으면 되지, 왜 이렇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건데? 이렇게 하니까 애들도(동생들) 안 해주려고 하는 거 아니가.' 이런 말이 쏟아지고 있었다.



코로나19 백신 사전예약

백신 접종 예약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문제는 일반 병원에서는 접종하지 않고 보건소에서만 이뤄진다는 점을 내가 몰라서 헤맸고, 그것도 우리 지역 보건소에서는 예약조차 할 수 없었다. 인근에 있는 군 보건소는 예약이 가능했지만, 엄마가 가능한 날짜와 시간에는 할 수 없었다.


결국, 친구가 일하는 병원에 잔여백신이 있는지 급하게 알아보고 그 병원에서 접종을 하기로 했다. 엄마가 원하는 '6일 오전'에. 보건소에서 맞는 아스트라제네카가 아닌 화이자 백신으로.


동생들과의 단톡방에서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결혼 전에 살이 찌지 않았던 것은 이런 엄마의 성격도 한 몫한다면서. 그 얘기를 들은 막냇동생은 사실은 이렇다며 얘기해준다.


막) 엄마가 나보고 백신 예약을 해라고 했었거든. 잔여백신이라도. 근데 일하면서 어떻게  계속 그걸 쳐다보고 있냐고. 그래서 나중에 천천히 맞아도 된다고 했더니, 엄마가 '다른 사람들은 다 자식들이 해준다던데, 그런 것도 하나 못하나!'하고 씅질을 내더라고.


그걸 듣던 여동생이 톡을 남긴다.

여) 가을부터 순차적으로 다 맞을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조바심을 내는지 모르겠네. 나 고등학교 갈 때도 엄마가 그랬거든. 여기 가라고 했다가, 아니다 저기 가라고 했다가. 말 바꾸는 거 하루 이틀이 아니다.


90년생에 가까운 여동생과 90년대생 남동생은 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보다 더 엄마와 다툼이 잦았다. 어쨌거나 4일간 백신 예약 때문에 엄마에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동기간 이야기를 하니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었다.




엄마는 접종 후 팔만 조금 아프다고 하셨다.

이제 한시름 놓으셨는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엄) "이제 속이 다 시원하다. 이거 못 맞아서 어찌나 불안하던지."

나) "잔여백신 맞을 것 같았으면 진작에 내가 알아봤을 텐데. 미리 나한테 얘기를 하지 그랬노."

엄) "고마 내 혼자 알아서 해볼라고 그랬다 아이가."


엄마가 속이 시원하시다니 이제 됐다.

2차 접종 때도 신경이 쓰이겠지만, 분명한 건 엄마의 불안감이 많이 해소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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