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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Oct 04. 2021

아침이 되면 가져오시던 남은 김밥

엄마의 김밥이 제일 맛있어

오늘 쓰는 이 기억들은 아마도 동생들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초등학생 때의 일이었으며, 그땐 나도 많이 어렸었다.


엄마가 막내 동생을 낳고 거의 죽을 뻔하다 다시 살아난 건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아주 서서히 몸을 회복했지만 허약했던 몸은 더 허약해졌다. 다들 엄마가 죽을 거라 생각했다 하고, 엄마도 그리 생각해서 그 당시 일부러 다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아마 막냇동생을 낳기 전이었나 보다. 엄마가 집에서 부업을 시작한 것은. 당시 아파트에 사는 아줌마들 사이에서 집에서 하는 부업이 유행했다. 그 유행은 때론 밤 까기나 마늘 까기 등으로 바뀌긴 했는데, 엄마가 한 부업은 제조업의 부품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마이크로미터까지 재는 도구가 있어서 신기해했었고, 나도 학교 갔다가 오면 엄마가 하는 '재미있는 놀이'에 동참하곤 했다. 학교에선 볼 수 없었던 신기한 놀이였다.


내가 3, 4학년이 되었을 때였나, 엄마는 퇴근 한 아빠에게 우리 세 남매를 맡기고 밤에 일을 하러 나갔다. 도대체 엄마가 밤에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밤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거야?'라는 의문이 들었다. 엄마는 '야식집'에 다닌다고 했다.


우리 동네에서 한 십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곳이 당시에는 번화가였다. 그곳에는 많은 유흥거리가 있었고 밤에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밥을 먹는 식당도 있었다. 엄마가 일하는 곳은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배달시키거나 포장해가는 분식집 같은 곳이었다.


현란한 밤의 문화가 사라질 때쯤 엄마는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매일 학교 가기 전에는 항상 엄마가 집에 있었으니 새벽시간에 돌아왔던 것 같다. 잠자고 일어나면 엄마가 있다는 것은 마음이 안정되는 일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언젠가부터 엄마는 그 식당에서 남은 김밥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아이들 아침을 차려줘야 하니 일석이조였을까. 엄마가 가져오는 김밥은 꼬투리들이 많았다. 판매하는 일회용 도시락 통에 담은 건 몸통 들이었을 거고, 나머지 터지거나 꼬투리 김밥은 폐기하거나 했겠지. 어떻게 싸오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매일 아침  큰 접시에 김밥을 산처럼 쌓아주셨다. 처음엔 '아침에 김밥이라니!'라며 기뻐했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김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소풍 가는 날이나 휴일에 가끔 김밥을 싸주시면 엄마 옆에서 김밥 싸는 걸 구경하길 좋아했다. 엄마는 갓 지은 뜨거운 밥을 항상 부채로 식혔다. '밥이 뜨거우면 김이 녹는다'라고 하셨다. 조금 식으면 소금과 식초로 간을 했다. 미리 만들어둔 각종 재료와 함께 김밥을 쌌다. 김의 마지막 부분은 밥알이나 물을 살짝 묻혀서 말았다. 그래야 김밥이 잘 붙어서 자르기도 쉽다고 했다.


지금 나는 김밥을 매우 잘 싼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 2주에 한 번씩 김밥을 쌌다. 입이 작은 아이들을 위해서 김밥김을 반으로 자르고 단무지 등 재료도 아주 폭이 좁게 잘라 미니 김밥을 만들곤 했다. 꾸미지는 못하지만 김밥은 잘 쌀 수 있었다. 엄마가 하시던 대로 하니까 먹어본 사람들이 다들 좋아했다.

내가 쌌던 김밥

그런데, 엄마가 야식집에서 가져온 김밥은 그 맛이 아니었다. 처음 입에 넣는 순간, 어딘가 이상했다. 밤 새 싸놓은 김밥이라 그런지 상하진 않았지만 상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상온에 오래 노출된 그런 맛. 우리 엄마의 맛이 아니었다.


맛이 이상했지만 그 김밥을 한동안 계속 먹어야 했다. 먹성이 좋았던 나는 잘 먹었다. 엄마가 아침에 계속 그 김밥을 차려주니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선택권이 없었다. 지금 우리 아이들처럼 '아침에 이거 해주세요, 이건 싫어요'라는 말을 할 줄도 몰랐다.


먹어서 배탈이 날 만큼 상한 김밥은 아니었다. 그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드는 생각은 '상해 가는' 김밥이었다. 엄마가 직접 싸주는 김밥의 맛을 생각하다가 어딘가 이상한 김밥을 먹기 시작하니 그 상황이 싫어졌다. 왜 엄마는 밤에 일을 하러 야식집에 나가야 하며, 아침마다 남은 김밥을 우리에게 먹일까.


엄마에게 '이 김밥 맛이 이상해'라고 말을 했던 것 같다. '먹어도 괜찮다'며 엄마는 대답했던 것 같다. 그렇게 얼마나 아침마다 그 김밥을 먹었는지, 엄마는 그 야식집에 나갔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얼마간 다니다가 엄마는 그만뒀지 싶다. 막냇동생이 5살쯤이었나, 매일 저녁에 과자만 많이 사주고 애들을 방치한다며 아빠에게 불만을 표시했던 엄마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 이후로 엄마는 지금까지 청소노동자로 살고 있다. 아주 오래된 엄마의 '알바'였고, '김밥'이었지만, 내게는 아직도 또렷한 맛과 냄새다.


결론은, 우리 엄마가 해준 김밥이 제일 맛있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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