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완성된 아름다움, 백제 석탑
석탑은 시대를 건너갈 때마다 그 시대의 아름다움과 기술을 고스란히 품으며 변화해 왔다.
고구려는 온전히 남아 있는 탑이 드물어 그 양식을 추적하기 어렵지만, 삼국시대 후반의 백제와 신라, 그리고 고려 시대로 이어지는 흐름은 우리 석탑의 조형의 흐름을 아주 잘 보여준다.
이번 글에서는 백제의 절제된 단정함에서 출발해 보려 한다. 백제 석탑은 한국 석탑사의 뿌리이자, 가장 세련된 조형 감각을 보여주는 양식이다.
백제 석탑은 한국 석탑사의 '출발점'이다. 백제는 중국에서 전해진 목탑 구조를 단순히 모방하지 않고 한반도의 환경에 맞게 다시 풀어냈다. 나무로 만들던 탑의 비례를 돌로 옮긴 것이다.
백제 석탑을 멀리서 바라보면 날카롭거나 과장된 요소가 없다. 전체적인 선은 부드럽고 비례는 단정하다. 화려한 장식보다 안정된 균형과 온화한 인상이 먼저 다가오는 것, 이것이 흔히 말하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백제의 정제된 조형미다. 후대 통일신라 석탑의 엄격한 구조미와 비교했을 때 더욱 두드러지는 백제 특유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백제 시대 석탑 중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뿐이다.
(1) 미륵사지 석탑: 돌로 만든 목탑
한국 석탑의 출발점이자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대표한다.
목탑의 기둥, 보, 층 구조를 거의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각 층 탑신부에 네 개의 기둥이 서 있는 형식을 취한다.
전체 비례가 목탑과 매우 유사하여 정교한 건축물처럼 보인다.
(2) 정림사지 오층석탑: 백제 미학의 완성본
미륵사지에서 보이던 과도기적 요소가 정리되며 백제만의 조형 원리가 완성된 단계다.
전체 비례가 매우 단정하고 균형 잡혀 있다.
기단과 탑신의 선이 단단한 돌이지만 부드러운 곡선의 느낌을 준다.
백제 석탑의 중심은 장식이 아니라 비례에 있다. 기단, 몸돌, 지붕돌의 높이가 과하지 않게 조화를 이룬다.
또한, 백제의 석탑에는 목탑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목조 건물의 배흘림 기법이 떠오르는 우주나 얇게 퍼지다 끝에서만 살짝 들리는 지붕선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백제의 돌 다듬기(치석)는 힘을 과시하지 않는다. 표면의 모서리를 살짝 죽여 전체적으로 온화한 인상을 준다. 이는 통일신라의 정밀함이나 고려의 화려함과는 다른, '백제만의 부드러운 손맛'이다. 그래서 그런지 백제의 석탑은, 오래 보아도 피로하지 않다.
요약 — 백제 석탑의 특징
• 한국 석탑사의 출발점이자, 이후 모든 석탑 양식의 뿌리가 되는 시기
• 목탑 구조를 돌로 옮기는 ‘석탑 조형 전환기’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
• 장식보다 비례와 균형을 중시한, 과장되지 않고 온화한 조형 감각
• 통일신라 석탑 양식이 형성되는 데 직접적인 기준이 된 기초 모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