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전탑 답사 모음
경주에서 통일신라 시대 석탑을 답사한 뒤, 그동안 직접 보지 못했던 전탑을 보기 위해 안동으로 방향을 돌렸다.
전탑에 대해서는 그동안 자주 언급하지 않았는데 전탑은 쉽게 말하자면 흙을 구워 만든 벽돌을 층층이 쌓아 올린 탑이다. 돌 대신 벽돌을 사용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우리나라에는 전탑이 많지 않다. 벽돌을 쌓는 방식은 조형적으로는 세련된 인상을 주지만, 재료 특성상 충격에 약하고 보수도 쉽지 않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질 좋은 화강암이 풍부했다. 가공은 어렵지만 한 번 세우면 오랜 세월을 견디는 재료다. 자연스럽게 석탑 중심의 전통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 결과 전탑은 한국 탑의 역사에서 주류가 되지는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남아 있는 전탑은 더욱 낯설고, 더 눈에 띈다.
현재까지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전탑은 모두 다섯 기다. 경상도에 네 기, 경기도에 한 기가 남아 있다. 그중 세 기가 안동에 모여 있다. 법흥사지 칠층전탑, 운흥동 오층전탑, 그리고 조탑리 오층전탑이다.
이번 답사에서는 이 가운데 두 곳을 찾았다. 아쉽게도 조탑리 오층전탑은 현재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직접 볼 수 없었다. 올해 12월에 공사가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한다.
제작시기: 통일신라 시대
소재지: 경북 안동시 임청각길 103
답사일: 2026년 2월 9일
법흥사지 칠층전탑은 낙동강과 반변천이 합류하는 강변에 자리한다. 수량이 풍부한 만큼 예로부터 수해가 잦았던 곳이다. 안동의 사찰들이 유독 강변을 따라 세워진 까닭을 거친 물길을 다스리고 재해를 막기 위한 ‘비보사탑(裨補寺塔)’의 기능에서 찾기도 한다. 법흥사지 칠층전탑 역시 그 맥락에서 해석된다.
그러나 자연을 막기 위해 세워진 탑도 근현대사의 변화는 피해 가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탑 바로 앞을 지나던 철길은 80년 넘게 진동을 전했다. 열차가 오갈 때마다 축적된 흔들림은 탑을 서서히 기울게 했고, 한때는 ‘한국의 피사의 사탑’이라 불리기도 했다.
기단부에는 또 다른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과거 보수를 위해 덧씌운 시멘트가 여전히 표면을 덮고 있어, 창건 당시의 원형을 온전히 짐작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 탑은 규모에서부터 시선을 끈다. 높이 17m. 통일신라의 대표적 석탑인 감은사지 삼층석탑보다도 크다. 벽돌로 쌓은 구조가 이 정도 높이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기단 면석에는 팔부신중상이 새겨져 있다. 한 면에 여섯 구씩 배치되어 있고, 정면에는 계단이 놓여 있다. 보통 여덟 구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금 다른 모습이다. 처음부터 여섯 구였는지, 아니면 일부가 사라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차이만으로도 이 탑의 독특함이 느껴진다.
탑신에는 감실이 마련되어 있다. 지금은 나무 문으로 닫혀 있지만, 안에는 약 3m 정도의 공간이 남아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곳에 불상이 모셔져 있었을 것이다.
옥개 받침은 아홉 단으로 층층이 이어지고, 그 위로 열 단의 옥개석이 올라가 있다. 중간에는 벽돌 두 줄로 만든 처마가 수평선을 분명히 그어 각 층을 또렷하게 나눈다. 탑신보다 양옆으로 살짝 튀어나온 한 줄의 벽돌은 받침 역할을 하며 전체 구조에 리듬을 만든다.

이 전탑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요소는 2층과 3층, 4층 일부에 남아 있는 기와다.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에서도 기와가 확인되는 것을 보면, 적어도 이 지역 전탑에서는 기와를 덧씌우는 방식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탑의 지붕 형식을 의식한 것인지, 단순한 보강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벽돌 구조 위에 다른 재료가 더해지면서 인상이 조금 달라진다. 개인적으로는 벽돌만으로 정돈된 모습이 더 단단하고 깔끔하게 느껴졌다.
화강암 석탑의 나라에서 만난 이 거대한 벽돌탑은, 켜켜이 쌓인 시간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기차가 지나가던 소음은 잦아들었지만, 강물을 바라보며 홀로 선 전탑의 뒷모습은 답사를 마친 뒤에도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았다.
강변의 넓은 풍경 속에 서 있던 전탑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안동 시내 한복판에서 또 다른 전탑을 만나기 위해 차를 몰았다.
운흥동 오층전탑은 안동 시내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는 상가와 주택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강변에 홀로 서 있던 법흥사지 전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주차장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전탑은 생각보다 아담한 규모였다. 방금 전까지 17m 높이의 법흥사지 칠층전탑을 보고 온 터라, 상대적으로 훨씬 더 소박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운흥동 오층전탑은 8.35m다.
제작시기: 통일신라 시대
소재지: 경북 안동시 경동로 684
답사일: 2026년 2월 9일
운흥동 오층전탑은 여러 장의 장대석으로 이루어진 3단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법흥사지 전탑과 마찬가지로 1층 탑신에는 감실이 마련되어 있다.
한참 사진을 찍으며 탑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전탑을 살피고 있던 한 스님이 다가와 예전에는 이 감실 안에 불상이 모셔져 있었는데, 세월이 흐르며 도굴로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감실 위에 남아 있는 화강암의 금강역사상 부조 역시 원래는 네 면에 모두 있었지만, 지금은 한 면만 남아 있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해주고 스님은 자리를 떠나셨다. 짧은 설명이었지만, 그 한마디 덕분에 눈앞의 전탑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답사를 하다 보면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 답사를 더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금강역사상은 사리를 수호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 전탑 내부에도 사리를 봉안하는 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은 확인된 유물이 없지만, 남아 있는 부조만으로도 이 탑이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운흥동 오층전탑의 또 다른 특징은 매 층 옥개석 위에 기와가 올려져 있다는 점이다. 법흥사지 전탑과 달리 이곳의 기와는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전탑이 본래 목탑의 지붕 형식을 반영했을 가능성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안동의 전탑들은 서로 닮은 점을 공유하면서도 각기 다른 표정을 지니고 있다. 강을 배경으로 선 전탑, 도심 속에 자리한 전탑. 재료는 같지만 공간과 시간이 만들어낸 분위기는 다르다. 전탑이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이 두 기는 그 자체로 소중한 사례다.
그동안 주로 화강암 석탑을 답사해 왔기에, 벽돌로 쌓은 전탑은 여러모로 낯설고 새롭게 다가왔다. 같은 탑이지만 재료가 달라지니 구조와 인상도 달라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운흥동에서 우연히 만난 스님과의 짧은 대화 역시 이번 답사를 더 기억에 남게 만들었다. 기록으로만 남았을 이야기가 현장에서 전해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조탑리 오층전탑의 보수가 마무리되면, 다시 안동을 찾고 싶다. 그때는 세 기의 전탑을 한 자리에서 함께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