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 첫 번째 이야기
운주사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일렬로 늘어선 석불들이었다.
보통 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대웅전이 시야에 들어오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대웅전은 바로 보이지 않았고, 골짜기를 따라 이어진 길 위로 석탑과 석불이 위아래로 줄지어 놓여 있었다.
이번에 답사한 곳은 전라남도 화순에 위치한 사찰, 운주사이다. 산골짜기를 따라 현재 석탑 21기, 석불 93구가 남아 있다.
두 수를 합치면, 이곳에는 무려 100여 점이 넘는 석조 유물이 남아 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예전에는 이곳에 천 개의 석불과 천 개의 석탑이 있었다고 전해진다는 점이다.
‘천불천탑’.
운주사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다.
이 ‘천불천탑’에는 도선국사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신라 말기의 승려 도선국사는 우리나라 지형이 마치 바다로 나아가는 배의 형국을 하고 있는데, 동쪽은 산이 높고 서쪽은 평야가 넓어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이곳에 천 개의 탑과 천 개의 불상을 세우려 했다고 한다.
이러한 해석 때문에 운주사는 흔히 ‘비보사찰’로 이야기된다. 지형의 기운을 보완하고 흐름을 바로잡기 위해 조성된 사찰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탑과 불상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배치된 다른 사찰들과 달리, 넓은 지형을 따라 이곳저곳 흩어져 있다.
줄지어 선 석불들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큰 자연석 위에 올려진 구층석탑이었다.
보물
제작 시기: 고려시대
소재지: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답사일: 2026년 2월 28일
구층석탑은 통일신라 석탑처럼 섬세한 아름다움도, 백제 석탑처럼 부드러운 인상도 아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거대하고 투박하다.
자연석 기단 위로 올려진 탑신에는 양쪽에 우주가, 가운데에는 탱주대신에 특이하게도 또 다른 우주가 새겨져 있다.
그 위로 2층에서 4층까지의 탑신석은 세 개의 석재로 이루어져 있고, 마름모꼴 안에 꽃무늬가 부조되어 있다.
5층에서 9층으로 올라갈수록 하나의 석재로 단순화되며, 장식 역시 점차 줄어들어 상부에는 십자 형태의 문양만 남는다.
특이하게도 옥개석에는 옥개받침이 보이지 않고, 대신 대각선의 줄이 새겨져 있다.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가 함께 담긴 석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구층석탑을 지나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에는 여러 기의 석탑과 석불이 이어진다. 그 사이를 따라 걷다 보면 마치 박물관 야외 전시장을 둘러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뒤에 놓인 풍경이 계속 바뀌며 새로운 경치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걸어가는 길 중간에도 석탑 한 기가 놓여 있다. 단층기단 위에 별석으로 우주를 만든 초층 탑신이 놓여 있고, 그 위로는 마름모꼴과 X자 문양이 새겨진 탑신들이 이어진다.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장식이다.
뒤를 몇 번이나 돌아보았을까.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곳의 또 다른 보물, 석조불감이 모습을 드러낸다.
불감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작은 공간을 뜻한다. 운주사 석조불감은 목조 건축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내부에는 등을 맞댄 두 불상이 남북 방향으로 등을 맞댄 채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형식은 우리나라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사례라고 한다.
석조불감 뒤편으로는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 답사의 목적이기도 했던 탑이다.
보물
제작 시기: 고려시대
소재지: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답사일: 2026년 2월 28일
일반적인 석탑이 직선 위주의 구조를 가지는 것과 달리, 이 탑은 전체적으로 둥근 형태를 띠고 있다.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라 문득 빵빠레 아이스크림이 떠오르기도 했다.
원형의 지대석 위에 다섯 개의 면석이 원기둥 형태를 이루고, 그 위에는 연꽃 모양의 돌이 갑석으로 놓여 있다.
그 위로 여섯 단의 옥개석과 옥신석이 이어지는데, 모두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옥신석에는 두 줄의 선이 표현되어 있고, 옥개석은 위아래 길이의 차이 때문에 아래로 넓게 퍼지는 인상을 준다.
사실 이곳의 석탑들은 이전 시대의 보물들처럼 구조나 가공 수법이 정교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장인의 치밀한 손길로 완성된 전형적인 석탑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양식이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원형석탑 뒤로도 대웅전과 그 주변의 석탑들이 이어지고, 언덕을 올라 와불을 찾아가는 길에는 거북바위와 그 위의 석탑들, 그리고 수많은 석불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 자세한 이야기는 2편에서 계속된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