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 두 번째 이야기
원형 다층석탑을 뒤로하고 대웅전으로 향했다.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석탑 2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중 대웅전 정면에 위치한 석탑은, 지난번 경주에서 답사했던 모전석탑 모방형 석탑과 닮아있었다.
전라남도 유형유산
제작시기: 고려시대
소재지: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답사일: 2026년 2월 28일
옥개석은 일부 파손되어 있으나, 옥개석 위아래로 표현된 층단형 구조가 비교적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다만 이 석탑은 탑신이 자연석 단층 기단 위에 올려져 있다는 점에서 경주의 석탑과 다르다.
대웅전을 지나 언덕을 올랐다. 언덕 위에 오르자 양옆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타났다. 먼저 왼쪽 길로 향하니 산신각 옆으로 두 기의 석탑이 눈에 들어왔다.
‘천불천탑’이라는 말처럼, 시선을 옮길 때마다 석탑과 불상이 계속 모습을 드러냈다.
완만한 언덕 위에 놓인 석탑은 지금까지 보아 온 석탑들과는 다른, 낯선 조형 방식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전라남도 유형유산
제작시기: 고려시대
소재지: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답사일: 2026년 2월 28일
안내판에 적혀 있는 명칭은 원반형 석탑과 사층석탑이었다. 여러 장의 판석으로 이루어진 사각형 탑신 위로 원기둥 형태의 탑신석이 세 단 놓이고, 그 위에 원반형 옥개석이 세 층으로 올려져 있었다.
특히 2층과 3층 원기둥 탑신의 지름에 비해 마지막에 올려진 원기둥의 지름이 크게 줄어들어 있어, 그 사이에 또 다른 층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대웅전 앞으로 이어진 산골짜기를 따라 석탑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다른 사찰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풍경이라 한동안 눈길을 떼기 어려웠다.
언덕을 내려와 발걸음을 재촉해 오른쪽 길로 향했다. 새로운 길에 들어서자 한 줄로 늘어선 석불들과 한기의 석탑이 보였다. 이번에는 항아리 4개가 겹쳐져있는 조형의 독특한 석탑 한기가 나타났다.
전라남도 유형유산
제작시기: 고려시대
소재지: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답사일: 2026년 2월 28일
층단이 표현된 기단 위에 세 장의 판석으로 이루어진 탑신이 놓여 있고, 그 위로 원형의 갑석으로 보이는 부재와 구형의 탑신으로 추정되는 석재 네 개가 중첩되어 올려져 있다.
일반적인 석탑에서 보기 어려운 매우 이례적인 형식이다. 이처럼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정형화된 조형 양식과는 다른 모습의 석탑들이 등장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언덕을 내려와 또 다른 전설이 전해지는 공간, 와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와불로 향하는 길을 따라 다시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걷다 보니 길가에 거북의 등처럼 둥글게 솟아 있는 바위가 나타났다. 이른바 ‘거북바위’라 불리는 곳이다.
이 바위 위에는 두 기의 석탑이 있는데, 자연 암반 위에 탑이 세워져 있는 모습이 운주사 특유의 조성 방식을 잘 보여 준다.
전라남도 유형유산
제작 시기: 고려시대
소재지: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답사일: 2026년 2월 28일
거북바위에 세워진 두 석탑 가운데 하나는 교차문이 표현된 칠층석탑이다. 탑신에는 선을 교차시켜 만든 X자 형태의 문양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운주사 석탑에서 자주 확인되는 특징적인 장식 요소이다.
일반적인 고려시대 석탑에서 볼 수 있는 문비 형식이나 우주 표현과는 다른 방식으로,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상징적인 문양이 강조되어 있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장식이라기보다 선을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어 간결하면서도 독특한 인상을 준다.
전라남도 유형유산
제작 시기: 고려시대
소재지: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답사일: 2026년 2월 28일
오층석탑은 거북바위 꼬리 쪽에 위치해 있는데 역시 자연 암반 위에 세워져 있다. 층을 이루며 위로 갈수록 줄어드는 기본적인 석탑의 형식은 유지하고 있으나, 각 부재의 비례가 엄격하게 맞춰져 있다기보다는 비교적 자유로운 형태를 보인다.
거북바위 위에 놓인 두 기의 석탑은 주변 지형과 어우러져 하나의 장면처럼 보였다. 마치 거북이가 탑을 받치고 있는 듯한 모습이어서, 이곳 역시 운주사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 가운데 하나로 느껴졌다.
이 거북바위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이번 답사의 마지막 지점인 와불이 모습을 드러낸다. 와불에도 도선국사와 관련된 전설이 하나 있다.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완성하고자 기도를 올리자, 하늘에서 천여 명의 선동선녀가 내려와 도선국사를 도와 불상과 석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을 돕던 동자승이 지쳐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자, 이를 새벽이 온 것으로 착각한 선동선녀들이 모두 하늘로 돌아가 버렸고 불사는 끝내 중단되고 말았다. 그 결과 마지막으로 완성되지 못한 채 남겨진 존재가 바로 이 와불이라고 전해진다.
이러한 전설은 운주사에 남아 있는 독특한 석탑과 불상들의 모습과도 어딘가 맞닿아 있는 듯하다. 완결된 질서라기보다, 만들어지는 과정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흐릿한 날씨 속에서 바라본 운주사는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지금은 많은 세월이 흘러 그 시절의 아주 단편적인 모습만 남아 있지만, 천 년 전의 운주사는 얼마나 더 신비로운 곳이었을까. 화순까지 4시간을 달려온 길이 아깝지 않을 만큼 의미 있는 답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