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탑을 이해하는 첫걸음

석탑의 유래

by 제이미


여행을 다니다 보면, 사찰이 사라진 곳에 혼자 남아있는 탑을 종종 만난다. 절의 건물은 무너지고 사람들의 발길은 오래전에 끊겼어도, 석탑만은 세상의 풍파를 묵묵히 견디며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킨다.


그렇다면 이런 석탑은

어디에서 왔을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석탑의 모습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것이 아니다. 아주 먼 지역에서 시작된 불탑이 오랜 시간동안 여러 지역과 문화를 거치며 모습이 달라졌고, 그 변화의 흐름이 한반도에서 다시 한번 새롭게 다듬어지며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탑이 처음에 어떤 모양이었고, 어떻게 우리나라에 들어와 어떤 방식으로 변해 왔는지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의 석탑이 단순히 돌 몇 개를 쌓아 올린 형태가 아니라 수천 년의 시간과 문화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먼 옛날, 석탑의 출발점이 된 불탑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모든 석탑은 인도의 스투파(Stupa)에서부터 시작된다.








석탑의 기원은 멀고도 뜨거운 땅, 인도에서 시작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층층의 탑 형태와는 전혀 다른, 둥근 흙무덤 모양의 구조물 스투파(Stupa)가 그 출발점이다.


스투파는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한 뒤, 그의 사리(유골)를 모시기 위해 만들어진 초기 불교의 무덤 구조물이다. 부처의 사리는 여덟 부족에게 고루 나누어졌고, 각 부족은 그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스투파를 세웠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스투파, 산치 스투파 (사진출처: Ameena Tasneem)

스투파는 아쇼카 왕 시대에 크게 확장된다. 아쇼카 왕은 기존 스투파를 다시 열어 사리를 더 세분화한 뒤, 8만 4천 개의 스투파를 세웠다. 전해지는 숫자 ‘8만 4천’은 실제 수량이라기보다 불법(佛法)이 널리 퍼졌음을 상징하는 표현에 가깝지만, 그만큼 스투파가 인도 전역으로 확산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기록이다.



스투파는 단순히 불탑의 시초일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탑(塔)’이라는 말의 뿌리이기도 하다. 산스크리트어 Stupa는 중국에 들어오며 ‘탑파(塔婆)’라는 한자로 음역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글자 중 ‘탑(塔)’만 남아 불탑을 가리키는 말로 정착했고, 이 표현이 그대로 한반도로 들어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탑’의 어원이 되었다.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진 스투파는 이후 불교의 확산과 함께 여러 지역으로 전해지면서 그 형태가 점차 달라졌다.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로 전해지는 과정에서는 흙과 벽돌 대신 돌을 사용한 스투파가 등장했고, 지역 환경과 건축 기술, 기후, 사용 가능한 재료에 따라 다양한 양식이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중국에 이르러서는 스투파가 현지의 목조 건축 문화와 결합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누각(樓閣), 문루(門樓)와 같은 층층이 쌓아 올리는 목조 건축이 발달해 있었기 때문에, 불탑 역시 자연스럽게 여러 층을 이루는 목탑(木塔) 형태로 재구성 되었다. 둥근 흙무덤에서 출발한 스투파가 중국을 지나면서 비로소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탑’의 이미지에 가까운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당나라시대 전탑, 서안 대연탑

이 과정에서 목탑의 구조를 흙과 벽돌로 재현한 전탑(塼塔, 벽돌탑)이 등장한다. 전탑은 목탑의 비례와 구성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중국 북방 지역의 건축 재료와 환경에 맞게 벽돌을 사용해 안정성을 높인 형태였다.


이러한 전탑은 이후 불교 건축의 양식의 한 축을 이루며 퍼져 나갔고, 훗날 한반도에 전해져 모전석탑(模塼石塔)과 같은 과도기적 석탑 양식이 탄생하는 바탕이 된다.



이번 글에서는 인도의 스투파에서 시작된 석가모니 사리 신앙이 중국으로 전해지며, 목탑과 전탑이라는 형식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온 뒤, 우리나라에서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변화해 갔는지를 이야기해 보려 한다.

작가의 이전글<우리나라 석탑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