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탑에서 석탑으로
중국에서 정착한 목탑 형식의 불탑은 삼국시대에 불교와 함께 한반도로 전해졌다. 초기 사찰들에서는 인도 스투파의 원형에 가까운 모습보다는, 이미 중국에서 정착한 목탑 양식의 탑이 먼저 받아들여졌다. 경주 황룡사 9층 목탑은 이러한 전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한반도의 자연환경에서 목재 건축은 여러 한계를 지녔다. 목재는 습도와 기후 변화에 민감하고, 화재에도 취약해 오랜 세월 원형을 보존하기 어려웠다.
이와 다르게 한반도 일대에서는 화강암이 풍부하게 산출되었고, 이미 돌을 다루는 장인 기술도 발달해 있었다. 이러한 재료적, 기술적 조건은 불탑의 재료가 목재에서 석재로 옮겨가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즉, 중국식 목탑을 그대로 모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반도의 건축 환경과 석공 기술에 맞게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한국의 석탑이 점차 독자적인 형식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한반도에서 석탑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백제에서였다. 초기에는 중국에서 전해진 목탑 구조를 따랐으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한반도에서는 비교적 양질의 목재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쉽지 않았다.
백제 장인들은 이런 제약 속에서 목탑의 구조와 비례를 ‘석재’로 옮겨 담는 실험을 시작했고, 이 시도가 한국 석탑의 첫 형태를 만들어 내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 과도기적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다. 목탑의 기둥, 보, 층 구조를 돌로 옮겨 놓은 듯 정교하게 재현한 이 석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전환되는 중간 단계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 준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목탑의 구성을 보다 간결하고 안정적인 비례로 정리하면서, 백제 특유의 단정한 조형 감각을 드러낸다.
이처럼 백제는 목탑의 구조를 돌이라는 새로운 재료로 재해석하며 한국 석탑의 기초를 다진 시대였다. 특히 미륵사지 석탑과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한국 석탑 양식의 시원(始源)으로 평가되고 있다.
신라에서는 중국의 벽돌탑(전탑)을 연상시키는 모전석탑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등장했다. 삼국 통일 이후에는 이러한 여러 조형적 흐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신라의 석탑 양식은 이전보다 훨씬 안정되고 체계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다만 최근에 읽은 『통일신라 석조미술사』*에서는 분황사 모전석탑을 단순히 중국 전탑의 모방으로 보기보다는, 신라에서 창안된 독자적인 석탑 조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 통일신라 석조미술사, 이서현지음, 역사산책
그 근거로는 중국의 최초 석탑인 신통사 사문탑과 분황사 모전석탑 사이에 석재 크기와 가공 방식이 다르고, 중국이 대체로 단층 또는 2층 구조인 데 비해 분황사 모전석탑은 9층으로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층수 구성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아울러 분황사 모전석탑이 조성된 시기가 선덕여왕 집권 초기라는 점에 주목하며, 흔들리던 왕권을 시각적으로 강화하고 국가적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상징적 건축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분황사 모전석탑은 외래 양식의 단순한 수용이 아니라, 신라 사회의 정치적, 사상적 요구 속에서 탄생한 새로운 석탑 형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곧바로 분황사 모전석탑과 중국 전탑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중국의 사문탑은 중국 최초의 석탑으로 평가되지만, 중국에서는 이미 북위 시대인 523년경부터 전탑이 꾸준히 건립되고 있었다. 따라서 사문탑 역시 이러한 전탑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자유로웠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 사문탑과 분황사 모전석탑의 석재 크기나 층수 차이만을 근거로, 분황사 모전석탑이 중국 전탑과 무관하게 성립한 조형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다소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오히려 분황사 모전석탑은 중국 전탑이라는 외래 조형 요소를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도, 이를 신라의 정치적 상황과 조형 감각에 맞게 재구성한 결과물로 이해하는 편이 보다 설득력 있어 보인다.
분황사 모전석탑 이후 신라 석탑에서는 여러 조형적 실험이 동시에 나타난다. 목탑의 구조를 석재로 옮기려는 시도, 중국 전탑에서 비롯된 조형 요소의 수용, 그리고 석재 건축에 적합한 비례와 구조를 모색하는 과정이 복합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이 시기의 석탑들은 아직 통일신라 석탑의 정형이 완전히 확립되기 이전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이후 양식으로 수렴해 가는 중요한 중간 단계라 할 수 있다.
주요 특징으로는 다수의 석재 부재를 조합해 쌓은 구조, 목탑을 연상시키는 가구식 구성, 비교적 크고 높은 기단, 그리고 아직 단순화되지 않은 탑신 비례 등을 들 수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석탑으로는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이나 고선사지 삼층석탑이 있다.
이러한 과도기적 시도를 거쳐, 통일신라 석탑은 점차 하나의 정형으로 정리되기 시작한다. 통일신라 석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간결하면서도 엄격한 비례, 그리고 기단부–탑신부–상륜부로 이어지는 구조의 명확한 구분이다.
이 점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이다. 석가탑은 전체 비례가 엄격한 규칙 안에서 구성되어 있으며, 장식 없이 완성된 구조적 미감은 통일신라 석탑의 정수를 보여준다.
반면 같은 절 안에 있는 다보탑은 그와 대비되는 화려함을 갖추고 있는데, 이렇게 서로 다른 두 탑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통일신라 조형 감각이 단순한 규격화가 아니라 다양한 양식의 공존 속에서 완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의 석탑은 예술성과 기술적 완성도가 동시에 최고조에 달했고, 이후 고려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기본적인 틀은 그대로 유지될 만큼 강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한반도 석탑의 발전 과정 가운데, 백제와 신라 시대 석탑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고려와 조선 시대로 이어지는 석탑의 흐름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