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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진 Nov 14. 2015

이탈리안 잡 pt.2

우주인과 카사노바의 커피

 


사실 지금 이탈리아는 경제적으로 사정이 좋지 않다. 경제성장은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며, 방만한 경영으로 위기에 처한 국영기업들, 이른 산업화 덕에 부유한 북부와 상대적으로 부족한 남부의 갈등, 여전히 존재하는 마피아와 탈세, 40%에 육박하는 청년실업률 등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실제로 보면 집시와 부랑자들도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그들이 부랑자를 대하는 태도에는 차이가 있다. 그 예로 커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탈리아 사람은 커피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역사를 갖고 있다. 나폴리는 1600년대에 이미 커피를 받아들였고, 에스프레소 머신의 첫 개발자 역시 밀라노의 루이지 베제라이다.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선보인 스팀 압력을 이용해 커피를 추출하는 구조가 선보인 후 6년 만의 일이다. 에스프레소라는 말 자체가 이탈리아어로 빠른, 특급을 뜻하는 영어의 익스프레스Express다. 그들의 커피에 대한 사랑과 기술의 발달은 여전히 진행형으로 2015년 5월에는 최초로 우주 정거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개발했을 정도이다. 이탈리아 사람에게 커피는 삶의 일부와도 같은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나폴리의 한 카페에 부랑자가 들어와 “Caffe sospeso. Per favore.”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리스타는 갓 내린 커피 한 잔을 내민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몇몇 카페에서 운영하고 있는 서스펜디드 커피의 기원이다. 손님들은 평소 커피를 마실 때 미리 커피 값을 더 지불하고, 돈이 없는 사람들이 커피를 무료로 마실 수 있게 하는 개념이다. 또한 누구나 부담 없이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카페들은 담합 아닌 담합을 했다. 테이블 자리에 앉지 않고, 바에 서서 먹는 커피의 가격은 이탈리아 전역 어디에서나 2유로를 넘지 않는다. 그들에게 커피는 돈으로 가치를 매기는 개념이 아니다. 부랑자든 우주인이든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할 문화인 것이다.

현존하는 카페 중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카페의 하나로 손꼽히는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의 카페 플로리안. 1720년대 바이런, 괴테, 루소에서 나폴레옹까지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들르던 유서깊은카페다. 당시 유일하게 여성의 출입이 가능한 공공장소 였던 탓에 카사노바가 즐겨찾던 곳으로도 명성을 떨쳤다. 이 카페는 여전히 성업중이며 고가의 메뉴가 많다. 그렇지만 바 자리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그리 부담스럽지가 않다. 베네치아에 간다면 한 번 쯤 들러볼 만하다.

이탈리아의 레스토랑에서는 중년의 남성들이 서빙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오랜 연륜에서 묻어나는 능숙함이 느껴진다. 젊은 날의 아르바이트로 서빙을 하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피렌체의 어느 골목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레스토랑 밖에 나와 잠시 쉬고 있던 한 노년의 남성이 자신의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며 말을 걸었다. 제법 근사하게 차려입은 신사의 모습을 담고, 궁금한 내용을 몇 가지 물어보았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이 일을 오래해도  먹고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31년간 이 일을 했고, 아들 둘을 모두 대학에 보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이런 부분을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모습은 우리나 그들이나 비슷했다.



이탈리아는 독일이나 덴마크, 스웨덴 등과 같이 최저임금제도가 없다. 그럼에도 숙련공에 대한 대우가 확실하고 인건비와 창작에 대한 보상이 적절히 이루어지는 덕분에 어떤 일을 하든 그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없다. 특정 국가를 찬양하며 사대할 마음은 없다. 다만 오래된 것의 가치를 알고 보존하는 그들의 자세,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분위기, 개인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사람을 배경이나 학벌, 직업과 같은 잣대로 평가하지 않는 태도를 본받고 싶을 따름이다. 그것이 개인이건 국가이건 관계없다. 특히나 모방을 싫어하고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는 국민성이 르네상스의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는 부분은 창작에 가까운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늘 염두에 두고 싶다.


전명진 포토에세이 <낯선>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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