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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진 Nov 08. 2015

이탈리안 잡 pt.1

이상한 나라의 사탑

참 독특한 나라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피사가 있고 전 세계 명품 브랜드의 산지이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산드로 보티첼리에서 안드레아 팔라디오까지 전통과 예술이 현대에도 살아 있는 나라. 첨단기술 또한 발달하여 유수의 슈퍼카, 모터바이크 생산업체가 있다. 사진을 하는 입장에서도 그들의 기술은 익숙하다.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삼각대의 양대 브랜드 모두가 이탈리아 회사다. 프랑스의 기관총 받침대를 만들던 회사를 인수해 1994년 세계 최초로 가볍고 튼튼한 카본 삼각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영국이 여전히 신사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독일이 모범생의 이미지, 프랑스가 고상한 미대생의 이미지라면 이탈리아는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 노는 날라리 이미지가 아닐까. 여행으로도 촬영으로도 가장 많이 접한 나라가 이탈리아라 그런지 유독 관심이 갔다. 단지 많이 다녔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의 활기와 자연스러운 삶의 단면을 가까이서 관찰하게 되면서 더욱 마음이 끌렸다. 전통의 힘을 아주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지키는 데에도 능숙한 나라.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578년 설립된 일본의 ‘곤고구미’가 꼽히며, 1530년 이전에 설립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오래된 기업이 세계적으로 15개 정도 된다. 그중 1000년에 설립된 종 만드는 회사 ‘폰데리아 폴티피시아 마리넬리’를 비롯해 이탈리아 기업만 8개가 포함되어 있다. 물론 오래되었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닐 테지만. 이탈리아는 건물 하나를 짓는 데 10년이 넘는 경우도 많고 그 건물들은 200년씩 가기가 예사다. 밀라노의 두오모는 건설 기간만 무려 400년에 달하며 그 기간 동안 삶을 마감해 바뀐 책임자가 8명이나 된다. 로마나 피렌체, 베네치아를 비롯해 팔라디오의 도시 비첸차까지 수없이 많은 문화유산으로 점철된 나라다. 도무지건드릴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지 않아 현대건축에서 이탈리아의 입지가 좁아지는 원인이 되었다. 반대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문화유산 덕분에 도시 대부분이 연합군의 폭격을 피할 수 있었지만, 밀라노만큼은 그렇지가 못했다. 처참히 무너진 지역을 복원하느라 현대건축이 발달했고, 재건의 경제성장 붐으로 현재에도 금융과 패션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또 건물의 외형은 건드리지 못하게 됐지만, 도리어 제한된 조건에서 실내를 바꾸다 보니 실내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이 고도로 발달하게 되었다.

그들의 상황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성장이 가져온 부작용이 나라 전체를 뒤덮고 있는 우리의 경우와 비교하여 여러 모로 생각할 여지를 주었다. 어디를 가나 편의성과 속도만큼은 한국이 세계 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이다. 그러다 故백남준 선생님의 작품이 수명을 다해 모니터가 꺼져가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생전 그의 진취적 성향에 맞게 LCD로 교체하거나 그대로 두겠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에서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만 한 대목이다. 책임자라면 마땅히 전 세계에 있는 부품을 최대한 확보해 원래의 모니터를 구현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선생님은 생전에 전담 마스터를 두셨고, 그중 아직 살아계신 이정성대표의 말에 따르면 수집가들에게 직접‘고장이 날 경우 최고의 부품을 구해다 고쳐라’ 하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문화유산이 도처에 널린 이탈리아는 어떨까. 피사의 사탑이 계속해서 기울자 이탈리아 일류 기술자들이 모여 중심을 잡는 작업을 해두었고,이후 정말 쓰러질 위기에 처하자 탑의 하부를 파내는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단지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1990년부터 2001년까지 12년이 걸린 보수작업에 약 2,200만 유로를 썼다. 우리 돈으로 270억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돈과 시간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전명진 포토에세이 <낯선> 발췌 - pt.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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