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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진 Oct 16. 2015

글 '짓기'의 기쁨

고난의 출간

이곳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글쓰기에 참 적합한 마당입니다. 많은 이들이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교환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른 요소 신경 쓰지 않고 글과 사진을 효율적으로 올릴 수 있어 좋아합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참 많을 텐데요, 저는 글을 쓰는 것보다는 읽는 것을 훨씬 좋아했습니다. 특히나 책을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어 더욱 그랬습니다. 고교시절, 공부에 별 관심 없던 저를 사람 구실 하면서 살아야겠다 생각하게 만든 계기는 그 어떤 일도 아닌 조정래 선생님의 <아리랑>과 <태백산맥>이었고, 삶의 기쁨과 여행의 행복을 알게 만든 수 많은 책이 있었습니다.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주변에서 "그 정도 여행하면 책도 하나쯤 만드는 거 아냐?"하고 물으면 저의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책은 읽는 것이지 쓰는 게 아니다.'라고요.


그러다 당시 스물일곱의 저는 '88만 원' 짜리가 된 것도 서러운데, 이젠 '아프다'고 까지 표현당한 저희 세대에 대한 자기연민이 있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열정과 다양성을 가진 세대라고 생각하는데 위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보는듯했습니다. 고민해보니 40대, 50대의 선배 세대들이 저희를 그렇게 재단하는 것이지, 정작 저희 스스로는 아무 표현도 하고 있지 않더군요. 아무 말이 없으니 마음대로 재단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공기와 같아서 나뭇잎을 움직이고 파도를 일으키지 않으면 그 존재조차 인식되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저라도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시작하고 보니 온라인의 형태가 아닌 종이책이길 바라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1년 동안 여행한 내용과 배운 것들을 정리하고 사진을 추리는데 역시나 같은 만큼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정도면 되겠다 싶어 출판사를 찾아갔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백전백패. 원고를 건네지도 못하고 돌아선 출판사만도 열이 넘습니다. 종로에서 파주까지 스무 군데가 넘는 출판사를 돌아다녔는데 아무런 이름 없는, 신인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저자를 받아주는 곳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보통은 출판사에서 먼저 기획을 하고 거기에 걸맞은 저자를 섭외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만고 끝에 한 출판사에서 출간을 약속해 주셨고, 본격적인 책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뒤, 저는 다시 출판사를 찾아가야 했습니다. 준비가 다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걸 깨달아서입니다. 저는 공대생 치고는 책을 많이 읽은 편이었을 뿐, 잘 쓰지는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미식가라거나 음식을 많이 먹는다 해서 요리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독자의 입장이라면 이런 글을 돈 주고 사서 볼까?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사정을 말씀드리고 시간을 더 주시면 제대로 공부해서 다시 써 오겠다 했습니다. 그리고는 소위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학원을 찾아가 배웠습니다. 혼자서 책을 찾아 공부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었습니다. 기자나 PD 시험을 보려면 논술과 작문을 준비해야 하는데, 저는 두 가지 다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공대는 입학시험에서 논술보다는 면접을 보고 선발하니까요.     

두어 달이면 될 줄 알았지만 결국 또 1년을 꼬박 채우고 말았습니다. 열 달 정도 배우니 그나마 감을 익혔습니다. 원래의 출판사와는 이미 너무 지체되어 진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1년 동안 원고를 갈아 엎었습니다.  고쳤다기보다는 새로 썼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뼈대만 남긴 채 전부 바꿨습니다.


글쓰기가 참 재미있다 느꼈던 것이, 아무것도 없이 그저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도 어떤 과정이 진행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지하철을 타든, 길을 걷든, 쓰고 싶은 주제가 있으면 그 내용을 진전시킬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구상이 되면 자판을 앞에 두고 손가락이 생각을 따라오면서, 리트머스 시험지의 색이 변하듯 어느새 한 편의 글이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그 기쁨이 역으로 독이 되어 평생 겪어보지 못했던 불면증을 몰고 오기는 했지만 말이죠. 에스토니아의 다락에서 쥐들이 뛰어다녀도, 극심한 사막의 일교차에도 잘만 자던 저에게 처음으로 불면의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자려고 누워도 이야기가 머릿속을 돌아다니고, 까먹지 않으려고 메모를 하다 보면 다시 정신이 맑아지는 악순환에 식은 땀을 흘리며 누워있다가 동이 터오는 고충. 그거 생각보다 괴롭더군요. 다음날 하루를 망치는 후폭풍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그런 과정을 거쳐서 3년 하고도 3개월 만에 책 한 권이 탄생했습니다. 새로 쓴 원고를 들고 다시 돌아다니다 운이 좋게도 큰 출판사를 만났고 덕분에 정말로 '꿈의 스펙트럼'이라는 종이책이 손에 잡히게 되었죠. 저자에게 증정하는 열 권을 들고 지하철을 탔는데, 불현듯 눈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급히 내리는 경험을 하게도 만들었던 이 첫 책은, 출간 직후 안타깝게도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너무나 이름이 없는 저자였던게 문제였습니다. 아직 김중만선생님 스튜디오에서 스태프로 일을 할 때였고, 인터넷이나 이런 곳에서 활동도 하지 않았던, 그야말로 무명(無名)의 저자에게 세상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습니다. 교보문고에서 아주 잠시 이달의 신간으로 소개가 되긴 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책에게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책을 쓴다는 것은 경험과 영혼을 있는대로 짜 내어 다시 다글다글 갈아서 그중 고르고 고른 것을 엄선해 담아내는 귀한 결과물입니다. 그것이 세상에 있는지조차 아무도 알지 못한다면 얼마나 속상할까요. 다행히 1년  뒤쯤 부터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알려지고, 제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여행수다'가 인기를 얻고 하면서 독자분들의 관심을 받게 되어 소생할 수 있었습니다.




책 한 권을 만드는데 얼마나 고생스러운지를 알게 된 저는 이후 드물게 들어오는 출간 제안을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그러다 한 출판사에서 파격적이게도 아무런 제약 없이 제가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자 했습니다. 꿈의 스펙트럼이 한 젊은이의 절절한 외침이라면, 새 책은 어느 젊은 사진가의 감성수첩 정도면 어떨까 하고 구상했습니다.   

그렇게 1년 5개월을 준비하고 비로소 책의 막바지 준비를 하던 중, 출판사와 의견이 크게 갈리게 되었습니다. 제목에서 말이죠. 꿈의 스펙트럼을 지을 때에도 제목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꿈, 청춘, 젊음과 같은 식상한 단어를 빼고 싶었지만 결국 처음부터 생각했던 '스펙트럼'을 끝까지 고수하는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이번 책 <낯선>은 진작부터 간결한 단어로 제목을 정하고 싶었지만 출판사에서는 친절하지 못하고 차가운 느낌의 단어이기 때문에 어렵다는 답을 주셨습니다. 전문가분들의 의견이라 수긍하고 대안을 받아왔지만 도무지 이 강렬하고 낯 설은 단어의 어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군요. 결국 한 주 동안의 간곡한 설득 끝에 최종적으로 <낯선>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난관은 또 있었습니다. 추천사를 받아야 하는데, 다른 두 분 -손미나 작가, 김태훈 칼럼니스트-은 기한보다도 먼저 보내주셨지만 정작 스승이신 김중만 선생님은 회신이 없었습니다. 파리에서 대규모의 전시에 초청받아 곧 떠나셔야 하는 터라 준비가 매우 바쁜 와중이었거든요. 기한을 이틀 넘기고 출판사에서는 두 개의 추천사만으로 가기로 정했다 했습니다.

다급해진 저는 선생님 댁으로 찾아갔습니다. 전날 전시 준비로 밤을 지새운 선생님은 그날 밤이나 되어야 써 줄 수 있다며 기다리라셨죠.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선생님의 책 외에는 김중만 선생님의 추천사를 받은 책은 이전까지 꿈의 스펙트럼이 유일했습니다. 그만큼 받기가 어려운 추천사였죠. 이미 부탁을 드려놓았고 저녁이면 받을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인쇄소의 일정과 맞추느라 출판사에서는 진행을 시키기로 했답니다. 많이 속상했습니다. 부탁을 드리지 말걸 하는 후회도 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

선생님은 모든 작업을 멈춰두고 쓰신 내용을 한 자 한 자 전화로 불러주셨습니다. 육성으로 들으려니 참 민망하다 싶었는데, 마지막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감사의 인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저는 길 모퉁이에 숨어 한참을 훌쩍거리고 나서야 급히 출판사에 내용을 타전했습니다. 다행히도 세이프.

선생님이 불러주신 전문을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세상을 향한 여행을 떠났다. 일 년이 넘도록.. 세상이 궁금했나 보다. 그와의 첫 대화가 생각난다. ‘세상에 없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세상에 없는 사진? 그게 뭘까? 아무튼 그가 궁금해졌다. 며칠 뒤 스튜디오에 그가 찾아왔다. 그의 긍정의 시각으로 아주 유머러스한 사진을 들고서 나를 찾았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 없는 한 아름다운 사진을 보고 웃고 말았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사막 한가운데 데드블라이 Dead  Vlei라는 곳에 가서 300년 된 죽은 나무들 사이에 한복을 입고 뛰며 찍은 사진. (나는 그곳에 가서 몇 날 며칠을 50도가 넘는 날에 그림자도 없는 사막을 찍느라 죽을 고생을 했는데 말이다) 사진을 가르쳐주고 싶어 졌다. 열심히 배우는 모습이다.

그리고 또 다른 세상을 향한 길을 떠났다. 아직 그에겐 그 아름다운 목마름이 있나 보다. 시간이 지나 그는 가끔 해맑은 모습으로 나를 찾아온다. 세상에 없는 사진을 찍던 그가 세상에 있는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명쾌하고 명료하다. 여행을 하고, 고생을 하고, 가끔씩 웃는 즐거움으로 그의 삶은 그렇게 지속된다. 우리의 내일. 어느 날 가서 볼 세상을 그는 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가 본 사람들의 따뜻한 웃음과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은 멀었다. 그래도 그는 뭔가를 해낼 것 같다. 우리가  꿈꿀 수 있게... 우리가 슬플 때 아픈 마음 달래 줄 수 있는 명진이는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청년이자 작가이다.

2015 가을, 사진가 김중만


이렇게 참 많은 곡절과, 많은 분들의 땀이 섞여 한 권의 책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쓰는 것이 아닌, 하나의 건물과 같이 지어 올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3년이 넘는 시간을 책 한 권에 매달려 벽돌 한 장 한 장 쌓아 올리듯 만들어낸 책이 <꿈의 스펙트럼>이라면, 이번  <낯선>은 그간 담아둔 사진으로 기초를 다지고 주춧돌을 놓은 위에, 길에서 배운 생각들로 기둥을 세웠습니다. 거기다 감상을 담은 짧은 글들로 벽을 막았습니다. 전보다 결코 쉬웠다고 할 수는 없지만, 더 낫다고도 단언할 수 없지만, 더 아늑하고 단단한 책을 지었습니다.

이제 창을 내고, 문을 열고 들어와 낯선 시선을 만나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5846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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