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명진 Apr 11. 2016

공존의 땅 싱가포르 pt.1

여행의 시작은 숙소에서부터

지난 2월 생일날 저녁, 놀라운 전화를 받았다.

영국의 항공권 검색 사이트인 스카이스캐너에서 아시아 태평양 국가의 여행자를 초청해 컨퍼런스를 열 예정인데 참석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세상에. 스카이스캐너라니?! 그들의 표현은 더 멋졌다. Travel Influencer. 그렇게 거창한 타이틀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의 대표 여행충() 같은 느낌? 한국에서는 단 두 명. 온라인 최대의 여행 커뮤니티인 '여행에 미치다'의 조준기 대표와 함께 한국 여행자의 대표 격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에든버러에서 작게 시작한 조그만 회사가 순식간에 전 세계 여행자들의 필수 사이트가 되기까지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만들어왔는지도 궁금했다.


어느 때에 어디를 가든, 일종의 의식처럼 행하는 일이 있다.

처음 숙소에 들어 짐을 풀자마자 우선 동네 한 바퀴. 근처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며 맥주 한 잔 곁들이는 것도 좋겠지만,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몸을 씻으며 여독을 벗겨낸다. 그리고 침대에 앉아 마시는 맥주 한 잔. 욕조에 몸을 담그고 마시면 효과가 더욱 좋다. 아직 일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숙소에 몸이 스미고, 그 나라의 문화에 금세 젖어들게 하는 즐거움이 있다.

역시나 같은 과정으로 이번에는 타이거 비어였다. 싱가포르니까 말이다. 마침 숙소는 번화가인 부기스에서 가까운 이비스 벤 쿨렌. 이런 숙소라면 도착과 동시에 어서 나가보고 싶은 마음이 달음질친다. 저녁에 도착했지만 멀리까지 걸어서 주욱 다녀왔다. 멋진 도서관이 있고, 바로 문을 열고 나가면 보이는 사원이 인상적인 곳이다.


아침에 나가보니 사원 앞에는 늘상 장이 선다. 과일을 파는 가게, 마사지를 해주는 사람 등등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 관음당이라는 불교 사원은(Kwan Im Thong Hood Cho Temple) 역사가 오래되었을뿐더러 도심에 있어 지나는 사람들이 절을 올리고 기도를 하는 곳이다. 더구나 바로 옆에 위치한 힌두 사원에도 사람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아시아에서 유독 다양한 문화가 섞여 살아가는 싱가포르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대단히 유명한 명소라거나, 누구나 가야 할 맛집도 좋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삶의 단면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곳을 더 좋아한다. 그들의 입맛, 그들의 대화를 엿볼 수 있는 그런 곳들 말이다.

싱가포르는 말레이반도 남쪽 끝에 위치한, 온난 다습한 열대기후를 연중 유지하는 곳이다. 도시적인 공간이 많기 때문에 어디든 실내에만 들어가면 그리 덥지는 않다. 걸어서 다니는 것도 좋지만 지상철(MRT)이 잘 발달되어 있으니 공항을 오고 가는 것도, 시내의 명소를 가는 것도 편리하다. 내가 머물던 ibis에서는 자전거를 대여해준다. 그냥 자전거가 아니라 대나무로 만든 자전거다. 안장과 바퀴를 제외한 대부분이 대나무를 이용해 만들었다. 자전거를 빌려주는 것부터 환경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이야긴데, 그걸 친환경 소재를 이용해 만든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더구나 비가 올 경우 손님들에게 대여하는 우산 역시 대나무로 만들었다. 이 호텔의 자연 사랑은 남다른 구석이 있다. 특히 처음에는 오해로 시작했지만 귀여운 아이디어에 찬성하게 된 물병이 그렇다.




먼 길을 왔으니 도착과 동시에 시원한 물을 들이켜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들 텐데, 이 호텔, 물이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무슨 이런 곳이 다 있나. 조그만 호텔도 물 한두 병은 비치되어있기 마련인데 여긴 없었다. 대신 안내문이 보였다. 플라스틱 물병을 사용하지 않고, 유리병을 사용하며, 원하는 때에 물을 채워주는 시스템을 운영한다는 내용. 거기다 물병을 받는 것은 사용하는 객실의 시트와 비품을 갈지 않는다는 조건에 동의한다는 뜻이라 했다. 사실 객실의 어매니티를 너무 자주 갈아주는 게 아깝다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예를 들면 한두 번 사용한 비누를 수거해가고 새 걸로 바꿔주는 등의 일들 말이다. 물론 청소와 수건 교체는 해준다. 별 것 아니라 생각할 수 있지만 큰 호텔 체인이 수백 개의 객실에 들이는 양은 어마어마할 테니 분명 효과가 있겠다 싶었다.





더구나 물을 받으러 가니 예쁘게 생긴 물병에 물을 담아준다. 애주가의 입장에서 탄산수를 부탁하면 맥주가 나올 것처럼 생긴 탭에서 물을 따라주는 장면은 더욱 뿌듯할 수밖에 없다. 가까운 부기스에서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 음악을 튼다. 휴대가 간편하고 다양한 블루투스 스피커가 많이 나왔지만 개인적으로는 독(Dock) 형 스피커를 애용한다. 음질의 차이는 그렇다 쳐도 즐겨 듣는 음악을 새로운 침실에 설치할 때의 조그만 기쁨을 아직 즐기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 이튿날부터 우리는 전 세계에서 모인 Travel Influencer들과 함께 다양한 세미나를 진행했다. 스카이스캐너 APAC본부는 우리가 생각하는 최신 IT회사의 그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귀여운 핑거푸드와 바리스타 직원이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내려주는 커피 한 잔으로 시작된 토론은, 자유로우면서도 사뭇 진지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앞으로 항공 검색뿐만 아니라 여행 콘텐츠의 트렌드 리더로 발전하고 싶은 뜻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우리들과의 대화를 통해 사람들이 어떤 여행을 원하고, 여행에서 나온 콘텐츠를 어떻게 나눌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그것이 이런 큰 비용을 들여 세계 각지에서 여행가들을 불러 모은 이유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의견도 정말 다양했다.

특히 한국의 여행자들에게 굉장히 관심을 많이 보였는데, 최근 2,3년 사이에 가장 빠른 속도로 이용자가 늘고 있는 국가가 바로 한국이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여행수다'라던가 여행 잡지 등에서 꾸준히 스카이스캐너 등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여행을 하면서도, 지금 사진 일을 하면서도 항공권이 필요할 때는 늘 그들의 사이트부터 참고했으니까. 더구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꼭 그 도시에 갈 일이 없더라도 그저 심심풀이로 항공권을 검색해 보고는 한다. 그런 설렘을 준 항공 검색 사이트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덕분에 저렴한 항공권을 구한 적도 많고 말이다.


자유로운 회사의 직원이라면 프레젠테이션에서 요정도 복장은 입어줘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