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건축
촬영을 마치고 카트만두 공항으로의 일정도 역시나 쉽지 않았다. 다시 기상이 나빠져 좀솜에 발이 묶인 것. 일정이 바쁜 김인철 교수님은 강수를 두셨고, 헬리콥터를 섭외해 마을을 떠나기로 했다. 그 김에 항공촬영도 겸할수 있었다. 기상이 좋지 않아 조그만 4인승 헬리콥터는 끝없이 덜덜거리며 높은 산등성이를 가까스로 넘었다.
건너온 카트만두 공항에서 교수님은 바로 작업비를 건네셨다. 그동안 사진일을 해왔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교수님의 배려에 감사한 마음으로 후반작업에 열중할 수 있었다.
일주일 뒤, 인터넷으로 전하고 싶지 않아 직접 사진 파일을 들고 교수님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뜻하지 않게 열명 남짓한 직원분들이 회의실로 모여들었다. 모두가 사진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 열과 성을 다해 촬영하고 가져올 때만 해도 자신 있었는데 전문가들 앞에서 보이려니 발가벗겨지는 기분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책을 만드신다기에 컷 수를 넉넉히 골라왔다.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인사치레인지 정말인지 뜻을 알 수 없는 반응들. 다행히 그간의 건축 사진과는 다른 분위기라 말해주었다.
사진은 좋고 나쁨이 매우 주관적이라 단지 ‘좋다’는 표현보다는 ‘다르다’는 표현이 더 반갑다. 그래도 처음 하는 일이고 이전에 찾아 본 건축사진과는 달라 교수님이 어떻게 보실지 알 수가 없었다. 특히나 몇몇 장면은 건축사진이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건물 자체보다 그 지역의 아름다움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를 표현하고 있어 더 고민스러웠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교수님이 누군가를 불러 준비한 뭔가를 가져오라신다. 조그만 선물을 주시려는 줄 알았다. 직원이 가져온 것은 봉투였다. “사진을 이래저래 많이 쓰기도 하고 책에도 쓸건데 수고비가 적은듯해서 넣었네”하시는 게 아닌가. 촬영 비용을 깎이는 일이야 수없이 겪어 봤지만 이렇게 더 주시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더구나 봉투에는 처음 받은 만큼이 그대로 더 들어있었다.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절대 주지 않으셨을 테다. 어떻게 일을 믿고 맡기는지, 또 더욱 책임감을 갖고 매진하도록 하는지를 직접 겪으면서 배우게 되었다. 현장에서 여러 사람의 노고를 지켜보고 어려운 환경에서 건축을 일으켜 세워내는 과정을 배운 것은 덤이다. 덕분에 다양한 곳에서 네팔의 방송국 사진을 요청했고, 전시까지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건축에 깊은 관심이 생겨 이후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게 한 기초가 되었다. 건축사진이라는 분야에 발을 들이게된 계기가 되어 현재 김인철 교수님의 다양한 작업을 담고 있다. 아직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운이 좋게도 지난 해에는 송도의 POSCO타워까지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좀솜에서 고락을 함께한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