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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진 Mar 02. 2016

바람의 마을 pt.4

다시 찾은 좀솜

건물은 마치 바위산에 엎드린 순한 들짐승마냥 올라서 있다. 축조되는 과정을 보아와서인지 마치 새 생명의 탄생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워낙에 풍부한 석재를 다양하게 활용한 덕에 주변 환경과 아주 잘 어울려 들었다. 긴 시간 많은 사람의 노력이 들어간 보람을 찾는 순간이었다.

이제부터는 나만의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교수님은 건축 사진의 중요성을 몇 번 말씀하셨는데, 무엇보다도 건축은 직접 가보지 않으면 볼 수가 없고, 그렇다고 떠다가 이동을 할 수 없으니 사진이 가장 중요하다 하셨다. 적잖은 부담감에 매일 해가 뜨는 시간을 기다려 해가 질 때까지 촬영을 이어갔다. 조명이라 할 것이 없으니 전적으로 해의 움직임에 따라야 했다.


좀솜에서의 작업은 사진가로서 놀라운 경험을 하게 했다. 건물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이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육중한 바위와 같은 대상이 말을 알아듣는 것도, 움직임을 바꾸는 것도 아닌데 찍고 돌아서면 그 표정을 달리한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비단 해의 움직임에 따른 빛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 시간의 바람, 주변의 그림자, 내부와 외부를 잇는 공간의 경험은 차라리 움직이는 고래를 담는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보낸 한 주간의 시간은 건축에 대한 전혀 다른 생각을 길러냈다. 무엇보다 함께 다니며 건물의 곳곳을 설명해주신 교수님의 덕으로 더욱 빠르게 건물에 다가갈 수 있었다.


한 주 동안 어느 도시를 여행한다 했을 때, 누군가는 너무 길지 않은가 할 지 모른다. 더구나 거의 아무런 명소가 없는 도시라면 더 그럴것이다. 처음 좀솜을 찾아 2주 동안 주변마을까지 다니며 촬영했던 시간보다도 건물 하나만을 찍는 데 보낸 시간이 더욱 바쁘고 깊었다. 이틀 내내 비가 내려 작업을 할 수 없어 마음 졸이기도 했지만, 하늘이 열리고부터는 해가 뜨기도 전에 건물을 찾아 담고, 한 시도 쉬지 않고 담아도 못내 아쉬울 지경이었다. 사람도 아닌 대상을 그토록 깊이 들여다보며 담아낸 경험은 새로운 시각을 부여했다.

또 한 가지, 사진을 중시한 교수님의 덕으로 과외 아닌 과외를 받아가며 작업을 이어갔다. 교수님은 내가 작업하는 대부분 시간을 함께 보냈음에도 사진을 미리 보자고 하지 않으셨다. 디지털카메라의 장점은 즉각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를 리 없는 교수님은 네팔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한 번도 보자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 어떤 것보다도 사진가를 믿어주신 부분에 가장 감사를 드린다.


도리어 당연하다 할 정도로 요즘의 촬영 현장은 매우 즉각적이다. 특히 스튜디오 촬영의 경우는 카메라와 컴퓨터를 케이블로 연결하여 촬영되는 컷 하나하나를 담당자가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때로 사진가의 생각이나 창의성이 발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교수님은 전혀 내색하지 않으시고 건축사진 초보인 내가 하는 대로 두셨다. 물론 그 덕에 부담은 배가 되었다. 한 대상을 그토록 치열하게 찍음으로써 건축이 단지 건물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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