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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진 Feb 18. 2016

바람의 마을 pt.3

지혜의 건축

어렵사리 건너간 좀솜. 상황을 보니 그들의 연이은 결항이 이해가 되었다. 해발 2,700m에 있는 공항은 워낙에 계곡이 깊어 심한 경우 시속 80km의 강풍이 몰아친다. 때문에 실제로 한해에 한 번씩 추락사고가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낯선 곳에서의 시간은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고 기다림을 배우게 해준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닐기리 봉의 위엄이 눈에 들어온다. 7,000m급의 봉우리는 예사고, 8,000m 이상의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로 둘러싸인 좀솜은 황량하면서도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이런 곳에 방송국이라니.

워낙 작업환경이 거칠고 어려워 겨울을 나는 동안은 공사가 멈추기를 반복하던 그런 곳이다. 그 와중에 현지의 인부들이 떠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경우도 있을 정도로 척박하고 힘든 현장이었다. 김인철 교수님은 현지인들이 집을 짓는 방식에서 거친 환경을 견디는 건축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들은 창을 내지 않은 단단한 돌집을 지어서 바람과 추위를 막는다. 펭귄의 허들링처럼 집들이 서로를 둘러싸 바람이 지나가게 하였다. 해서 교수님은 제주의 돌집처럼 돌을 성글게 쌓아서 바람을 약화시키는 방법을 떠올린 것. 거기에 더해 중앙정원의 방식을 도입해 내부로 창을 내서 빛을 받아들인다.

“해외에서 건물을 지을 땐 현지 재료와 현지 시공자가 쓸 수 있는 기술만을 이용합니다. 풍토에 맞게 수 천 년간 축적해 온 지혜를 존중하면서 현대건축 기술을 가미해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내는 거죠. 기술적인 지식은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넘어서지 못해요.”

교수님이 어느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이다. 기실 그들은 집 한 채를 100년도 넘도록 대를 이어 사용하고 있었다. 워낙 바람이 많은곳이라 집 내부 1층에는 가축을 기르고 2층에 사람이 사는 독특한 구조의 집도 그들 고유의 지혜 이리라.

처음 현장을 방문했을 때에는 등산 브랜드의 촬영이었기 때문에 주변의 마을을 둘러보고 명소등을 찾아 사진에 담았다. 교수님은 건물의 중간 점검과 다큐멘터리 출연을 겸해 우리와 며칠 간격을 두고 현장에 오셨다. 워낙 들고 나기가 어려운 오지라 일정이 바쁜 교수님은 단 하룻밤을 머물다가셨고, 그 날 저녁 식사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다 건축사진도 하느냐 물으셨다. 건물을 담아본 적은 있지만 전문적으로 해본 적은 없다 말씀드렸는데, 도리어 새로운 시선으로 담아줄 사람을 찾는 중이라고 하셨다. 한국에 돌아오면 포트폴리오를 들고 한 번 찾아오라셨다. 금세 마음이 갔다. 여러 번 네팔을 다녔지만 한국의 건축이 그곳에서 쌓아져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관심이 생겼고, 공학을 전공했으니 그 구조와 역학적인 이해는 누구보다 빨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축은 가장 큰 예술의 형태라는 생각을 했다. 단지 감상만을 위한 예술이 아닌 직접 사람이 들어가 살고 경험하는 그러한 예술 말이다.


귀국과 동시에 교수님을 찾아뵈었고, 포트폴리오를 보여드렸다. 교수님이 찾는 사진은 자못 어려운 조건이었다. 단지 건물의 입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건축가의 의도와 마음이 담긴 사진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가져온 사진에 담긴 감성이라면 가능하리라 말씀해주셨다. 기둥이나 창문 하나만으로도 그 건물이 가진 정서를 담아줄 것을 당부하셨다. 즉 형태가 아닌 공간을 담아달라 하신 것. 해본적은 없지만 해볼만 하겠다 싶었다.


김중만 선생님과 첫 촬영을 갔던 때가 떠올랐다. 남해 금산의 보리암. 종일 경내와 주변 풍경을 촬영하고 나오는데, 문득 발걸음을 멈춘 선생님은 문에 달린 문고리를 하염없이 찍고 계셨다. 그저 다른 암자의 문에도 있을 법한 문고리인데 해가 질 때 까지 긴시간 촬영을 했다. 쉽게 넘길만한 장면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것 또한 사진가의 자질이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그 한 시간여의 경험이 이후 사진을 하는 자세를 만들어주었다.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하는가에 따라 전문 건축사진가와는 다른 장면을 만들어내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한국 건축의 수장으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교수님이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는 사진가를 선택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다행히 건축에 대한 지식은 일천했지만 구조에 대한 공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완공될 때까지 예정보다 늦춰진 탓에 더 오래 기다려야 했지만, 덕분에 다양한 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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