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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진 Feb 11. 2016

바람의 마을 pt.2

산 너머의 새해 인사

근래에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탓에 더욱 아름답게 기억되는 카트만두. 여러 지방이 피해를 보았고 특히 귀중한 문화재가 무너져내리는 장면을 보며 가슴도 무너졌다. 네팔의 오랜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곳이면서도 외부인들의 왕래가 끊임없는 곳.

우리가 갈 곳은 히말라야의 북쪽 사면, 좀솜이라는 마을이다. 보통 히말라야 하면 많이 떠올리는 곳이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일 것이다. 네팔을 동서로 가로지를 뿐만 아니라 서아시아의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활 모양을 그리며 뻗어 내린다. 안나푸르나로 대표되는 서북지역의 무스탕히말, 에베레스트로 대표되는 동쪽 지역의 랑탕히말 이렇게 두 곳이 네팔 히말라야의 큰 축으로 꼽힌다. 그야말로 진정한 ‘양대산맥’인 셈.

카트만두에서 포카라, 다시 포카라에서 비행기를 타야 갈 수 있는 좀솜. 마을은 작지만 히말라야 트래킹의 가장 긴 코스인 안나푸르나 어라운드를 하기 위해 오는 외국인, 힌두교 성지인 묵티나트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비행기가 다닌다. 비행기라고 해도 20인승의 작고 낡은 비행기가 거대한 산맥 사이를 헤엄쳐 계류장도 없는 조그만 공항에 불시착하듯 내리는 것이 고작이다. 실제로 워낙 바람이 많이 부는 탓에 오전 11시가 넘으면 착륙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기상에 따라 비행기의 운항이 때때로 제한된다.


히말라야의 첫 관문 포카라. 워낙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곳이라 네팔의 아름다운 자연과 여러 문화의 어우러짐을 만끽할 수 있는 기막힌 곳이다. 세계 여행자들의 4대 집합소로 태국의 카오산, 이집트의 다합, 인도의 바라나시, 네팔의 카트만두를 꼽는데 오히려 여행이 주는 여유를 아는 여행자에게는 페와호수 주변을 편안하게 둘러싼 포카라를 더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도 복잡하고 시끄러운 카트만두의 타멜지역보다 조용하고 그리 크지 않은 포카라가 더욱 정이 간다.


그곳에서 다시 작은 비행기를 타고 안나푸르나의 황량한 북쪽, 무스탕 히말라야 지역으로 들어간다.


갔어야 했는데,,,,


가려고 했는데,,,,


포카라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 포카라에서 하루 머물고 이튿날 출발했어야 하지만 방송국의 송신탑 자재가 도착하지 않는 바람에 일정이 이틀 정도 늦춰지고 말았다. 자재를 인도쪽에서 주문해 히말라야를 건너는 모습을 촬영해야 하지만 연락조차 안되고 있는 상황. 사실 인도라는 나라가 정말 굉장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정도 지연은 별 일 아니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번 자재만해도 한 달 전에 주문했고, 인도 쪽에서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고 기다리는데, 그 이후로 제작사도, 자재를 싣고오는 기사도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결국 자재 운반에 대한 촬영을 나중으로 미루고 좀솜으로 들가기로 했다. 계속 연락이 안되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여전히 제작조차 완료되지 않은 상태. 그래 놓고도 출발했다고 우기는 그런 나라다.

방송팀은 상당히 당황했지만, 인도에 주문을 의뢰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속으로는 마음을 놓아버렸다. 이전 인도를 여행하면서 이미 그들의 사고방식을 체득할 수 있었다. 기차2~3시간 연착은 기본이요, 멈추지 않는 역에서도 한 시간씩 정차하고는, 기관사가 친구를 만나 차 한잔 하고 오느라 늦었다며 아무렇지 않게 운전대를 잡는 곳. 심지어는 열심히 달리던 기차가 선로를 잘못들었다며 후진을 하기도 하는 곳이 바로 인도다. 그렇지만 그런 작은 불편을 상쇄하고도 남을 매력을 가진 곳이기도 하니 미워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덕분에 포카라에서 조금 더 머물 수 있었다. 이틀 뒤, 정작 우리가 출발하려던 날 아침에는 비행기가 뜨지 못했다. 포카라에서 좀솜으로 들어가는 길은 고봉준령의 틈새를 따라 비행하는 험난한 항로. 계곡의 영향을 받아 바람이 적은 이른 아침에만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데, 비행기가 워낙 작다보니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큰 사고로 이어진다. 2013년에도 착륙 직전의 항공기가 추락해 커다란 인명피해를 입었고, 2014년에도 추락했는데 산이 깊어 그 잔해를 치우지 못하고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그래서 바람이 잦아들때까지 아침 6시부터 하염없이 공항에 앉아 기다린다. 결국 11시 무렵 비행기가 뜰 수 없으니 내일 오라는 통보를 받는다. 별 미안한 기색도 없이 통보하는 공항직원이나, 아무렇지 않게 주섬주섬 자리를 뜨는 승객이나 흔치 않은 광경이다. 이번 제주에서의 사태를 빗대어보면 더욱 생경하다.


모든일에 서두르고 예정되로 되지 않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온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가 어려울 수 있겠지만, 다른 문화권으로의 여행은 기다림과 여유를 배우는 좋은기회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

마침 그때가 네팔의 새해라 예쁘게 입고 나온 아이들, 사람들의 행사 등을 둘러볼 수 있었다. 네팔은 올해로 2072년. 우리가 음력 설을 쇠듯 그들에게는 4월14일이 새해 첫 날이다. 우리에게는 '음력 설'이라 부르는 달 기준의 새해. 세계적으로 1월 1일이 새해 첫 날임은 분명하지만 생각보다 여러 나라에서 고유의 달력에 따라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스페인 또한 1월1일을 성대하게 치른다 해도, 동방박사가 방문한 크리스마스의 12일 뒤인 1월 6일 주현절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고 있다. 유럽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아이들이 꽃단장을 하고, 길가를 장식한 소박한 네팔의 새해 또한 한 해를 되새기는 의미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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