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마다 설렘이 가득한 나라
수많은 나라를 여행했는데, 정작 싱가포르는 처음이었다. 물론 창이 국제공항은 환승을 위해 여러 번 지나가 봤지만 말이다. 새로운 나라에 가는 것만큼 설레고 또 낯선 일이 있을까?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과 일본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의 영향을 받는 역사의 부침이 있었지만 작은 어촌에 불과하던 나라가 아시아의 허브로 성장하기까지, 어떤 모습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아무것도 없는 바닷가의 작은 지역을 메우고 가꾸어서 그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을 갖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법적으로 같은 디자인의 건물을 지을 수 없게 해 놓은 것. 워낙 도시계획이 잘 되어있다 보니 새로 건물이 들어설 때에 색상이나 조경 등, 주변 건물과의 조화까지 따져서 허가를 해 준다고 한다. 다른 작업도 하지만 건축사진을 하다 보니 그들의 그런 생각에 관심이 갔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 워낙 독특한 외관에다 하늘에 있는듯한 수영장까지 갖추고 있어 여행자의 관심을 끈다. 싱가포르 시내의 몇몇 명소가 있는데, 이 호텔 주변으로 가볼만한 곳이 많다. MRT 베이프런트 역으로 나오면 웅장한 모습의 건물을 볼 수가 있고, 호텔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인간이 만든 거대 정원 가든스바이더베이가 나온다. 작은 땅을 끝없이 간척하고 메워 지금은 서울보다도 큰 면적을 갖게 된 나라. 내게는 바로 이곳이 그러한 노력의 결정체로 보였다. 돔 안에 세계에서 가장 큰 실내 인공폭포를 들여놓았고, 25~50m에 달하는 나무 모양 조형물을 1,000여 종 이상의 식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가는 길의 전망대에서 보면 마치 어느 미래 영화에 나올법한 그런 모습이다. 인간이 참 다양한 구조물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가지만, 이렇듯 자연과 함께하는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모습이 아닐까.
바다로 둘러싸인 섬과 같다지만 사실 싱가포르 남부에 흐르는 싱가포르 강가의 매력이 참 좋았다. 더운 날씨 탓에 사람들은 강 주변 곳곳에서 저녁식사를 즐기거나 애인이나 친구,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낸다. 특히나 과거와 현대가 만나는 공간인 클락 키(Clarke Quay)는 그들이 전통을 어떻게 오늘날에 살려놓는지 보여주는 좋은 장소다. 과거 작은 배가 드나들던 무역 항구는 지금 화려한 조명으로 치장된 나이트 라이프의 중심지가 되었다. 곡물과 향신료를 보관하던 창고는 다섯 구획으로 나뉘어 상점과 레스토랑, 분위기 있는 노천카페 등으로 변신했다. 직접 맥주를 만드는 제법 큰 규모의 브루어리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마시는 맥주 한 잔은 여정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줄 것이다.
강을 따라가 보면 나오는 싱가포르의 또 다른 명소, 바로 멀라이언 파크다.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으로 독립한 싱가포르였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연방에서 다시 독립하면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만든 그들의 상징. 인어(Mermaid)와 사자(Lion)의 합성어인 멀라이언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이다. 이는 싱가포르라는 나라의 이름에도 관련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고대의 왕자가 폭풍에 조난당할 위기에 처하자 인어의 몸에 사자의 머리를 단 동물이 그들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 말로 사자를 뜻하는 ‘싱가’와 언덕을 뜻하는 ‘푸르’가 합쳐저 싱가포르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상징을 조형물로 만들어 강가의 공원에 세워두었다. 주변의 높은 건물들과 도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강 건너편의 야경을 보며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작지만 매력 넘치는 나라 싱가포르. 면요리에서 칠리크랩까지 다양한 음식과 차 문화, 흥미로운 건물들과 그 사이를 다니는 여러 문화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는 곳. 짧은 시간이었지만 공간에서 공간으로의 이동이 매 번 설레던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