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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Oct 26. 2015

필요되어 지는 것(needed)에 대한  이야기

영화 <인턴>을 보고나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

영화 <인턴>을 봤다.

전반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내 취향인 영화였다.

<프린세스 다이어리>부터 <레미제라블>까지 다양한 영화에서 만났던 앤 헤서웨이와는 달리, 로버트 드 니로 아저씨는 사실 그 명성에 비하면 실제로 인상깊게 만났던 영화는 없었는데, 이 영화에서 '벤 휘태커'라는 판타지적인 인물을 눈물이 나게 잘 연기했다.

이상하게 전반부에 벤 휘태커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나올 때가 많았는데, 너무나도 맑은 눈빛으로 표현하는 노년의 쓸쓸함이 이상하게 공감되었다. 아직 30년도 안 살아본 채 공감한다는 표현을 쓰긴 그렇지만.


2.

먼저 영화를 본, 최근까지 나와 같이 일하던 실제 '인턴' 친구가 이 영화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명장면으로 벤이 다시 출근을 앞두고 구두나 옷을 챙겨놓고 잠드는 장면을 꼽았다.

'About the fit(줄여서 AFT)'의 시니어 인턴으로 출근을 준비하면서, 벤은 지원 미션인 비디오를 찍는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 안나지만, 요약하자면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전 은퇴한 인생을 나름 잘 즐겼어요. 운동, 취미생활, 여행도 다녔죠.
하지만 다시 한 번 어딘가에 필요로 되어지고(needed) 싶어요.
그래서 AFT에 지원합니다.

그렇다. 영화 <인턴>은 처음부터 <미생>과 같은, 회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인턴 친구가 말했던 대로 인생에 대한 이야기였고,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 필요되어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3.

벤은 영화 내에서 스스로 인정하는 대사가 나오기도 했지만,

자신이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는 AFT 직원들의 키다리 아저씨로,

또 자신의 직속 상사인 줄스에게는 키다리 아저씨를 넘어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존재한다.

벤에게 떨어진 첫 임무는 줄스의 옷 얼룩을 지우는 일이었고, 그 이후로는 운전기사가 되었으며 심지어 줄스 딸아이의 생일파티에도 따라가 준다.

벤은 줄스에게 업무상으로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되어 간다.

극 초반에는 벤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아무 일도 시키지 않던 줄스이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는 휴가를 내고 오랜만에 기체조를 하고 있는 벤을 굳이 찾아갈 정도로, 벤은 인턴에서 줄스의 꼭 필요한 절친(Best friend)이 된다.


4.

내가 누군가한테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

누군가에게 필요되어진다는 건, 이용되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좋을 수 있다.

필요와 이용의 경계는,

1) 누가 나를 필요로 하는가 = 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움직일 수 있나

2) 얼마나 나를 필요로 하는가 = 내 기준에서 스스로 호구라는 느낌을 받지 않나

가 아닐까.


5.

대부분의 사람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니지만,

어떤 경우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기도 한다.

사실 벤 역시, 줄스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꽤나 선을 분명히 긋고 사는 사람이었다.

사정이 딱해 잠시 자기 집에 머무는 것을 허락한 인턴 친구의 경우 분명한 선을 두었다.

하지만 줄스의 고민은 얼굴이 빨개지고 남몰래 눈물을 흘릴 만큼 깊이 공감하고, 열심히 고민해 주었다.

벤은 줄스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주었고,

줄스 역시 벤에게 꼭 필요하던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은,

누군가에게는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허무함을 느끼지 않고,

이 지구에 발딛고 사는데, 꼭 필요한 감정이니까.


6.

내가 필요되어지는 것,

내가 필요되어지는 사람을 만나는 것,

모두 참 노력과 운이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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